2일 외교부 당국자에 따르면 이도훈 본부장은 비건 특별대표와의 협의를 위해 오는 5~6일께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양측 수석대표 간 첫 회동이다.
당초 이도훈 본부장과 비건 특별대표는 지난달 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후 만나 한미 공조를 강조하는 등 북핵 협상 결과를 바탕으로 브리핑을 갖기로 예정돼 있었으나, 양 정상간 합의가 무산되면서 수석대표간 회동도 취소됐다. 비건 특별대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하노이 기자회견 직후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필리핀 방문에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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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각급 레벨서 긴밀한 소통…수석대표 이어 장관회담도
2차 북미 정상 회담 이후 한미 정상 간, 외교장관 간 전화통화에 이어 양측 수석대표간 회동도 신속히 이뤄지는 모양새다. 북한 비핵화의 주요 분수령이 될 것으로 기대됐던 이번 북미 정상회담은 ‘노딜’(no deal)로 끝났지만, 후속 회담의 불씨가 살아있는 만큼 한미간 긴밀한 공조를 이어가겠다는 양측의 의지가 읽힌다.
이도훈 본부장은 이번 방미 기간 동안 비건 특별대표를 만나 회담 내용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고, 상황을 평가하는 한편, 향후 대응 방향을 협의할 예정이다. 또 양측 수석대표는 한미 외교장관 회담 일정에 대한 협의도 할 것으로 보인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1일 전화통화에서 조속한 시일 내 직접 만나 한국의 가능한 역할 등 향후 대응 방안을 조율해 나갈 필요성에 공감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 정상회담은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의 끝이 아니라 긴 프로세스의 일부”라며 “협상이란 잘 될 때도 있고 못 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협상을 계속 끌고 나가겠다, 모멘텀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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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대화 불씨 살아 있다”…실무 협의 통해 다른 ‘셈 법’ 맞춰가야
북미간 정상회담이 공동 선언문 조차 내지 못하면서 결렬됐으나, 북미간 대화의 동력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이 우리 정부와 전문가들의 평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과 매우 생산적인 시간을 같이 보냈다고 생각한다”며 “(김 위원장과)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상당히 훌륭한 지도자고 우리 관계가 매우 돈독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도 “(이번 회담이)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더욱 두터이 하고 두 나라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도약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며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관계의 획기적 발전을 위해 생산적인 대화들을 계속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또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회담을 통해 핵심 의제에 대한 북미 양측의 입장 차가 분명하다는 점을 확인한 것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봤다. 이번 회담 결과를 토대로 서로 다른 ‘셈 법’을 다시 맞춰가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북미간 대화·협상 과정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 내겠다는 우리 정부의 의지도 강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3.1절 기념사에서 “이제 우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며 “우리 정부는 미국, 북한과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해 양국 간 대화의 완전한 타결을 반드시 성사시켜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노이 선언’ 불발에 주목받는 ‘레이캬비크 정상회담’
한편 케네스 아델만 전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1일(현지시간)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실은 기고문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을 1986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간의 ‘레이캬비크 정상회담’과 비교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군축 협의를 위해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만난 레이건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도 합의문 도출에 실패했으나, 이듬해인 1987년 워싱턴에서 열린 미소 정상회담에서 역사적인 ‘중거리핵무기 폐기협정’(IRNFT)에 서명했다. 아델만 전 대사는 고르바초프 전 서기장이 이후 늘 “레이캬비크 회담이 모든 걸 바꿨다”고 말할 정도였다며 “동틀 무렵이 가장 어두운 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아델만 전 대사는 레이캬비크 회담 이후 자신을 비롯한 미·소 협상팀 사이에 고통스러울 정도로 힘든 실무논의가 이어졌다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다시 만나기 전에 실무협상팀의 탄탄한 기초작업이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