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3월 2일 발사된 로제타는 10년 5개월 4일간 총 64억km를 비행한 끝에 67P 혜성을 만났습니다. 로제타는 현재 시속 5만5000km(초속 약 15.3km)의 혜성 주위를 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3톤 규모에 불과한 로제타가 한정된 연료로 현재 이 정도의 속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자체 추력만이 아니라 외부의 도움이 컸다고 합니다. 바로 지구와 화성의 중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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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면에 들어가기 전 로제타는 자체 연료소비 없이 속도를 얻기 위해 행성의 중력권(중력이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공간)에 살짝 들어갔다 다시 나오는 ‘행성궤도 접근통과’를 했습니다. 우주선이 행성의 중력권 안으로 들어가면 행성 중력(인력)을 받아 속도가 더 붙은 뒤 마치 튕기듯 바깥으로 나가게 됩니다. 자체 추력이 없어도 가속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중력 도움’(gravity-assist)이라고 하는데요. 이 때 우주선은 속도는 물론 방향(궤도) 변화도 겪게 됩니다.
로제타는 실제로 지구의 중력도움을 3번, 화성의 중력도움은 1번 받았습니다.
로제타는 발사된 지 1년째인 2005년 3월 4일 지구 중력권을 통과한 뒤 2007년 2월 25일 화성 중력권을 지나갔습니다. 이어 같은 해 11월 13일 지구 중력권을 지났고 정확히 2년 뒤인 2009년 11월 13일 지구 중력권을 다시 통과했습니다.
다만 우주선이 중력권에 너무 깊숙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기에 ‘살짝’ 지나쳐야 합니다. 로제타는 2007년 화성 중력도움 때 지표면에서 약 250km 상공을, 2009년 지구 중력도움 때는 지표면 약 2500km 상공을 각각 통과했다고 합니다.
중력도움을 받을 때마다 속도는 계속 올라갑니다. ESA에 따르면 로제타는 총 4번의 중력 도움을 받은 후 초속 13.3km 가량의 속도를 냈습니다.
로제타는 이처럼 혜성으로의 본격 비행을 위해 우주공간에서 오랜 준비과정을 거쳤습니다. 실제 로제타는 혜성 도착 전 태양 주위를 5번 돌았습니다.
이 기법을 이용하는 것도 동면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비행’을 위해서입니다. 김해동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우주선의 한정된 몸통에 과학 관측장비와 탐사장비 등을 실으려면 연료를 줄여야 하는데 이 방법으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기법은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모든 우주선에서 사용한다고 합니다. 연료를 무한정 싣지 않는 한 자체 추력만으로 빠른속도를 내며 엄청난 거리를 가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973년 발사된 미국의 수성 및 화성 탐사선 ‘마리너 10’이 이 기법을 처음 이용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태양계를 벗어난 ‘보이저 1호’도 목성과 토성의 중력을 이용해 속도를 얻었습니다.
우주선들은 특히 태양계에서 질량이 가장 큰 행성인 목성의 중력을 자주 이용합니다. 그래서 목성은 ‘장거리 우주여행의 주유소’로 불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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