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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 지구와 화성의 힘을 빌려 혜성에 도달했다

이승현 기자I 2014.08.09 17:30:35

행성중력으로 가속받는 '중력도움'..로제타, 지구 3번·화성 1번 도움받아
자체추력 없이 가속해 경제적 비행 가능..장거리 우주선의 필수 운행기법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유럽우주국(ESA)의 혜성 탐사선인 ‘로제타’(Rosetta)호가 발사 10년만인 지난 6일(현지시간) 목표혜성인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의 궤도에 진입했습니다. 로제타는 3달 정도 혜성 주변을 돌변서 착륙지를 탐색한 뒤 오는 11월 11일 100kg 규모의 탐사로봇 ‘필레’(Philae)를 혜성 표면에 착륙시킬 예정입니다. 인류 역사상 첫 혜성 탐색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난 2004년 3월 2일 발사된 로제타는 10년 5개월 4일간 총 64억km를 비행한 끝에 67P 혜성을 만났습니다. 로제타는 현재 시속 5만5000km(초속 약 15.3km)의 혜성 주위를 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3톤 규모에 불과한 로제타가 한정된 연료로 현재 이 정도의 속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자체 추력만이 아니라 외부의 도움이 컸다고 합니다. 바로 지구와 화성의 중력입니다.

혜성 탐사선 ‘로제타’(오른쪽)의 탐사로봇 ‘필레’(왼쪽)가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 혜성의 표면에 착륙하는 장면의 모식도. 유럽우주국 제공.
로제타는 2011년 6월 8월 통신장치 등 전원 대부분을 끄는 이른바 ‘동면’에 들어갔다 올해 1월 20일 재작동했습니다. 동면을 한 것은 혜성 근처에 도착하기 전까지 전원소비를 극히 최소화해 연료를 아끼기 위해서였는데요.

동면에 들어가기 전 로제타는 자체 연료소비 없이 속도를 얻기 위해 행성의 중력권(중력이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공간)에 살짝 들어갔다 다시 나오는 ‘행성궤도 접근통과’를 했습니다. 우주선이 행성의 중력권 안으로 들어가면 행성 중력(인력)을 받아 속도가 더 붙은 뒤 마치 튕기듯 바깥으로 나가게 됩니다. 자체 추력이 없어도 가속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중력 도움’(gravity-assist)이라고 하는데요. 이 때 우주선은 속도는 물론 방향(궤도) 변화도 겪게 됩니다.

로제타는 실제로 지구의 중력도움을 3번, 화성의 중력도움은 1번 받았습니다.

로제타는 발사된 지 1년째인 2005년 3월 4일 지구 중력권을 통과한 뒤 2007년 2월 25일 화성 중력권을 지나갔습니다. 이어 같은 해 11월 13일 지구 중력권을 지났고 정확히 2년 뒤인 2009년 11월 13일 지구 중력권을 다시 통과했습니다.

다만 우주선이 중력권에 너무 깊숙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기에 ‘살짝’ 지나쳐야 합니다. 로제타는 2007년 화성 중력도움 때 지표면에서 약 250km 상공을, 2009년 지구 중력도움 때는 지표면 약 2500km 상공을 각각 통과했다고 합니다.

중력도움을 받을 때마다 속도는 계속 올라갑니다. ESA에 따르면 로제타는 총 4번의 중력 도움을 받은 후 초속 13.3km 가량의 속도를 냈습니다.

로제타는 이처럼 혜성으로의 본격 비행을 위해 우주공간에서 오랜 준비과정을 거쳤습니다. 실제 로제타는 혜성 도착 전 태양 주위를 5번 돌았습니다.

이 기법을 이용하는 것도 동면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비행’을 위해서입니다. 김해동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우주선의 한정된 몸통에 과학 관측장비와 탐사장비 등을 실으려면 연료를 줄여야 하는데 이 방법으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기법은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모든 우주선에서 사용한다고 합니다. 연료를 무한정 싣지 않는 한 자체 추력만으로 빠른속도를 내며 엄청난 거리를 가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973년 발사된 미국의 수성 및 화성 탐사선 ‘마리너 10’이 이 기법을 처음 이용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태양계를 벗어난 ‘보이저 1호’도 목성과 토성의 중력을 이용해 속도를 얻었습니다.

우주선들은 특히 태양계에서 질량이 가장 큰 행성인 목성의 중력을 자주 이용합니다. 그래서 목성은 ‘장거리 우주여행의 주유소’로 불린다고 합니다.

혜성 탐사선 ‘로제타’가 중력도움을 받기 위해 화성에 근접(지표면 24만km 상공)한 2007년 2월 24일 촬영한 화성의 모습. 위쪽의 녹색 부분은 구름이다. 유럽우주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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