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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800원시대?)③美 "자존심 상해도 즐기자"

김윤경 기자I 2007.10.02 11:55:24
[이데일리 김윤경기자] 한동안 미국 쌍둥이 적자에 대한 우려가 비등하면서 미국 경제 경착륙 가능성을 지적하던 때가 있었다.
 
미국이 더 이상 경상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서 달러화 가치가 추락하고 금리가 급등하는 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시나리오였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위기를 계기로 다시 촉발된 이번 달러화 약세 국면에서는 오히려 "환영"의 목소리가 세력을 얻어가고 있다. 
 
세계 경제가 이머징 마켓을 중심으로 호황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달러화 약세는 곧 미국 수출과 경상수지의 호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사상최저 달러가치, "앞으로 더 하락" 예상

지난 달 27일(현지시간) 현재 6개 주요국 통화에 대해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화 지수는 77.66을 기록했다. 지난 1973년 이 지수가 공식 집계되기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낸 것이다.

1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화는 유로화 대비 사상 최저가 행진을 이어가다 증시 강세로 소폭 강세로 돌아섰지만, 유로/달러는 장중 1.4283달러까지 치솟았다. 
 
최근 엔 캐리 트레이드가 재개된 영향으로 엔화에 대해서는 소폭 올랐지만, 3분기 전체로 봐서는 6.8% 떨어졌다. 분기 기준으로 지난 2003년 3분기 이후 최대폭이다. 
  
미즈노 가즈오 미츠비시 UFJ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주택시장 침체가 확실히 전체적인 상황으로 번지고 있어 미국 경제는 아마도 내년 1분기 경기침체(recession;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것)에 빠질 것"이라면서 달러화는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달러/엔이 연말엔 105엔까지 떨어질 것으로 추정했다. 

FRB의 추가금리 인하 기대감도 달러화에 하방 압력을 넣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주 발표된 개인소비지출(PCE) 지표로 본 인플레이션은 당장은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 이같은 전망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바클레이즈 캐피탈의 데이비드 우는 "달러화는 4분기에 더 떨어질 것"이라며 "3분기보다 하락폭이 더 클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안 스태나드 BNP파리바 런던지점 수석 외환 스트래티지스트는 오는 4일 있을 유럽중앙은행(ECB)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4%)가 동결되더라도 장 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의 추후 인상 의지가 강하다는 점에서 달러화는 더 조정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달러 약세는 미국에 藥" 긍정론 급부상

이런 가운데 달러 약세와 이로 빚어질 상황에 대한 전형적인 도식 자체를 바꿔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달러화 약세는 수출 측면에선 경쟁력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이런 현상이 수치로도 확인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960년대 전체 이익의 5%에 불과했던 미국 기업들의 해외 이익 비중이 8월말 현재 25%까지 증가한 상태. 올해 1분기에도 미국 기업들의 해외 이익이 전년동기대비 16.4% 증가, 내수 이익 증가율 2.7%의 다섯 배가 넘었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 기업의 상징인 제너럴일렉트릭(GE)도 올해 사상 처음으로 해외 매출이 미국 매출을 넘어설 것이라고 밝혔고, 다우존스 편입종목 가운데 최근 주가가 가장 호조를 보인 프록터 앤 갬블(P&G)의 경우 전세계적으로 제품을 판매해 수익을 얻는 대표적인 다국적 기업이었다.
 
달러값이 떨어지더라도 해외의 기업들은 미국에 대한 수출가격을 올리기 보다는 이윤을 축소하거나 물량을 줄이는 식으로 대응하는데 그칠 것이란 분석도 우세하다. 수입물가 급등 충격 없이 미국 내수 기업들의 수혜로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WSJ은 소비의 제국인 미국의 수입액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적자 규모가 뚜렷하게 줄고 있다면서, 만약 달러 가치 하락 속도만 급격하지 않다면(이 경우 달러 자산의 투매가 세계 경제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 달러 약세가 세계 경제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달러 약세로 오히려 대미 수출에 과도하게 의존했던 아시아, 유럽의 경제 구조가 바뀔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관련기사 ☞ "弱달러가 세계 경제 불균형 해소한다"

◇이머징마켓과 맺는 新 `플라자·루브르 합의`  
 
그동안의 환율을 이용한 국제경제의 불균형 조정은 선진국간의 합의에 의해 이뤄지는 구조였다.  
 
서방 선진 5개국(G5)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여 1985년 `플라자 합의`로 달러 가치를 떨어뜨렸다가 이것이 과도하다고 판단되자 1987년 `루브르 합의`를 도출했다.
 
87년 2월 옛 루브르 왕궁에 있는 프랑스 재무성에서 열린 이 회의에서 G7 재무장관들은 "더 이상 달러가 하락(달러/엔 150엔 전후)하면 각국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는데 합의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오는 20일 G7 중앙은행 총재들의 모임이 예정돼 있어 달러 가치 하락에 대한 모종의 합의나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까 예상할 수도 있겠지만, 과거와 달리 달러화 약세를 유로와 엔화 등 여타 선진국 통화가 막아줄 여지는 적어졌다는 점에서 그닥 주목되진 않는다.
 
게다가 이제 외환시장의 주도권은 눈부신 경제 성장세와 증시 상승폭, 통화 강세 등이 가파르게 전개되고 있는 이머징 마켓이 쥐어가고 있다. 
 
그동안은 미국이 막대한 무역적자, 이로인한 경상적자를 통해 한 마디로 "그만큼 손해를 보며 다른 나를 먹여 살렸다"면 이제는 이머징 마켓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를 부양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가능해 보인다. 관련기사 ☞ "이제 세계 경제는 이머징마켓이 이끈다" 
 
물론 미국 경제가 경착륙해 버린다면 이런 주장도 허망해질 수 있다. 이들 국가의 대(對) 선진국 수출 의존도가 낮아지고 점차 내수 경기에 기대고 부분이 많아지고 있긴 하지만, 미국 경제가 경착륙한다면 글로벌 경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선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달러 가치의 점진적인, 질서있는(in order) 후퇴가 필요하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미국과 이머징 마켓은 `약 달러`로 인한 글로벌 경제의 새 질서를 창출할 수도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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