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좌동욱기자]지난해 8월 경기도 이천 LG인화원에서 열린 LG의 글로벌 전략회의. 구본무 LG 회장(사진)의 냉랭한 목소리가 40여명의 LG그룹 CEO(최고경영자)들이 참석한 강당에 울려퍼졌다.
"단기 실적에 연연하면서 미래를 소홀히 하는 관행이 남아있다. 지금까지 고객 중심 경영을 강조했으나 여전히 공급자 중심의 생각으로 경영을 하고 있다"
당시 LG의 주력 계열사들은 실적 부진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2006년 상반기 LG전자의 영업이익은 전년비 10%, LG화학은 50%가 감소했다. LG필립스LCD는 상반기 누적적자가 4000억원대로 전년 동기비 3배 규모로 증가했다.
LG 관계자는 "2006년 전략회의는 덕담이나 격려가 오가던 과거와 달리 내부 변화와 분발이 강조되는 분위기"였다며 "특히 매출과 손익 등 눈에 드러나는 성과만 챙기던 임원들은 뜨끔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LG, 기업 체질 확 바꾼다
LG가 변하고 있다. 과거 창립 이념인 인화보다는 성과를, 현재 실적보다는 보다는 미래 성장 동력을 우선하고 있다.
구 회장은 계열사 CEO들에게 하는 주문도 단기 실적 개선보다는 고객 가치, 핵심 인재, 미래 성장 등에 집중된다. LG의 잠재능력을 높이기 위해 체질을 뜯어고치라는 요구다.
구 회장은 60돌을 맞는 올해 LG가 100년 기업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를 위해 2005년 말 이후 2년간 전자, 화학, 통신 주력 계열사 사령탑을 모두 교체했다.
이런 LG의 변화는 위기의식에서 나왔다.
2003년 LS그룹, 2005년 GS그룹이 분리되면서 LG그룹에는 경기, 환율, 유가 등 외부 경영 변수에 민감한 사업들만 남았다. 화학과 전자 등 주력 사업의 시장 경쟁이 치열하다는 점도 공통적인 고민거리다.
실제 LG그룹의 실적은 2005년 이후 급락하고 있다.
전체 그룹 매출은 2003년 85조원(GS그룹 포함), 2004년 82조원, 2005년 84조원, 2006년 80조원(예상치)으로 정체되고 있지만 주요 계열사들의 수익은 2005년부터 2년간 하락세다. (그래프 참조) 2005년 LG전자 영업 이익은 전년비 27%, LG화학은 20% 줄었다. 두 기업은 올해도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특히 2004년 1조7000억원대 영업이익을 내면서 LG의 차세대 성장사업으로 부상했던 LG필립스LCD는 올해 1조원대 영업적자를 내면서 그룹 전체 이익을 까먹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다만 과거 그룹 골치거리였던 통신사업이 약진하면서 그룹 체면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통신 사업은 여전히 내수시장 포화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LG그룹은 올해 신발끈을 조여메고 그룹 체질 개선에 나서 새로운 도약을 이룬다는 목표를 세웠다. 구 회장 역시 올해 신년사에서 "목표 달성보다는 근본적으로 어떤 악조건 하에서도 지속적인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애널리스트들 역시 LG 계열사들 실적이 지난해 바닥을 찍고 올해 턴라운드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LG전자 "모든 사업, 원점에서 재검토하라"
LG전자는 올해 새로 부임한 남용 부회장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남 부회장은 지난 98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LG텔레콤을 이끌며 회사를 정상화시킨 공로를 평가받아 LG전자 CEO로 선임됐다.
이 기간 LGT는 1000억원대 영업 손실을 내는 적자기업에서 3600억원대 영업이익을 내는 흑자기업으로 변신했다. 서비스 가입자 규모도 200만명에서 650만명 규모로 3배이상 확대됐다.
전임 김쌍수 부회장이 공장 중심의 야전사령관이었다면 남 부회장은 그룹 비서실 출신의 전략통이다. 그가 중용된 이유 역시 LG전자의 전반적인 체질이 뜯어고쳐야 한다는 요구에서 비롯됐다.
남 부회장은 3일 취임 일성으로 "LG전자는 매출 뿐 아니라 시장점유율, 수익성, 성장률, 주주 수익률에 있어 톱3가 돼야 한다"며 "모든 직원이 오로지 가치 창출에만 전념하는 조직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실제 남 부회장은 임원들에게 LG전자의 모든 사업을 재검토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LG전자의 고민은 가전 사업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취약한 휴대전화와 디스플레이 사업부에 있다. LG그룹 역시 이 같은 문제을 인식, 지난해 말 담당 사업 본부장을 교체했다.
이승우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과거 LG전자가 공장 생산성은 높았지만 전략·기획 능력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남용 부회장 카드는 적절한 인선으로 평가된다"며 "올해 남 부회장이 휴대전화 사업 수익성을 얼마나 끌어올릴 지 여부가 LG전자 전체 실적을 좌우할 변수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LG필립스LCD의 새로운 수장으로 부임한 권영수 사장의 과제는 경영정상화와 새로운 투자 파트너 물색 등 두가지로 요약된다. 구본무 회장은 LG필립스LCD 설립을 주도했던 친동생 구본준 부회장을 교체하면서까지 그에게 중책을 맡겼다.
LG필립스LCD는 2005년부터 수익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2005년 순이익 5조2000억원으로 2004년 대비 3분의 1수준으로 급락한 데 이어 2006년 3분기까지 8000억원 규모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주 요인은 PDP패널과 경쟁력 심화라는 구조적인 원인이다. 하지만 전체 매출 규모가 10조원 내외로 비슷한 삼성전자 LCD사업부는 지난해 3분기까지 3400억원대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어 외부 경영환경 탓만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필립스 전자를 대체할 새로운 투자처를 찾는 것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현재 필립스는 LG필립스LCD 지분을 매각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LG전자와 LG필립스는 현재 LPL 지분을 각각 37.9%, 32.9%를 보유하고 있다.
◇LG화학, 첨단 소재업체로 변신
지난해 초 LG화학 CEO로 부임한 김반석 사장은 지난 1년간 LG화학이 나가야 할 밑그림을 그렸다.
김 사장이 내린 결론은 사업 중심을 전통 굴뚝산업인 석유화학사업에서 최첨단 IT 소재사업으로 다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석유화학 경기 변동 폭이 커지면서 경영 불확실성이 확대되자 신사업인 소재 사업에서 안정적인 수익원을 찾겠다는 포석이다.
지난해 말 LG화학이 내세운 새로운 광고 슬로건은 LG전자가 변화하고자 하는 비지니스 모델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그림 참조)
실제 LG화학은 지난해 7월 중장기 전략을 발표하고 정보전자소재사업의 매출 비중을 17% 수준에서 2010년까지 3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이런 의지는 지난해 말 인사에 직접 반영됐다. 정보전자소재사업본부를 신설해 소재 관련 사업부를 한데 모았다. 또 지난해 부진했던 전지사업본부를 전지사업부로 개편해 김 사장이 직접 챙기는 구조로 바꿨다.
반면 7개 사업부로 운영되던 석유화학 사업부는 5개 사업부로 통합 재편됐다.
◇통신 3콤 `약진`..미래 성장사업을 찾아라
한때 매각설까지 돌았던 LG의 통신사업은 지난 3년간 그룹의 새로운 캐시카우로 거듭났다. 전자, 화학 등 주력 사업이 전반적인 침체 상황인 가운데 올린 성과여서 더욱 값지다.
실제 LG텔레콤의 영업이익은 2005년 3599억원으로 2004년에 비해 2.5배이상 불어났다.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도 2005년 같은기간보다 20% 증가했다. LG데이콤과 LG파워콤도 500억원 안팎의 순이익을 거두는 알짜기업으로 성장했다.
LG 통신 3사의 과제는 가입자 기반 확대와 차세대 네트워크 사업이다. 정일재 LG텔레콤 사장도 올해 신년사에서 이 두가지를 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이들 3개 기업은 모두 해당 분야의 후발 사업자로 가입자 기반이 취약하다. LG텔레콤의 경우 가입자가 700만명 수준으로 육박했지만 여전히 SKT(2000만명)나 KTF(1277만명) 등 선두기업에 못 미친다. LG파워콤의 초고속인터넷 시장 점유율도 10%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통신업계 맏형인 LG텔레콤의 경우 3세대 네트워크 사업 비전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 선두 기업인 SKT와 KTF는 현재 고속영상전화(HSDPA) 전국망 구축 등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붇고 있다.
LG그룹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LG그룹은 시장 경쟁, 환율, 고유가 등으로 수익성이 감소하면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며 "60주년을 맞는 올해 기업 체질을 강화해 100년 기업으로 도약하자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