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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가석방으로 출소한 이후 서초사옥 등을 오가며 주요 사업 현황 파악·점검에 매진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재수감 207일 만인 지난 13일 오전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출소 직후 고(故) 이건희 회장이 잠든 수원 선영을 찾거나 휴식을 위해 자택으로 향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으나 이 부회장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서초사옥이었다. 반도체·스마트폰·가전사업 등 주력 사업 부문과 사업지원 TF 등 핵심 경영진을 만나 현안을 우선 보고 받았다.
이 부회장이 예상보다 발빠른 행보를 보이자 수일 내로 반도체 사업장이나 삼성바이오로직의 모더나 백신 위탁생산 현장 방문 등 본격적인 외부 행보를 이어나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특히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삼성물산 합병 및 회계부정’ 재판보단 현장 경영을 통해 출소 후 첫 모습을 드러낼 것이란 예상도 있었다.
하지만 출소 열흘째를 맞은 현재까지도 이 부회장의 공개적인 대외 행보는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취업제한’ 논란이 이 부회장의 행보에 제동을 걸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 부회장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에 따라 형 집행이 종료되는 날부터 5년간 취업제한 규정을 적용 받는다. 이에 일부 시민단체는 이 부회장의 경영 참여를 강하게 반발하며 논란이 커졌다.
하지만 법 집행 책임부처인 법무부가 이 부회장의 경영 참여에 대해 “규정 위반이 아니다”라고 거듭 선을 그으면서 논란은 일단락 되고 있는 모습이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 19일 “주식회사는 이사회·주주총회를 통해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데, 무보수 비상임·미등기 임원인 이 부회장은 이사회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가 없다. 취업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20일에는 법무부가 취업제한 처분을 받고 행정소송까지 벌였던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건과 달리 이 부회장에게는 위법 사항이 없다는 식의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취업제한 논란’ 일단락 수순에도 즉각 공개 행보 없을 듯
경영 행보 압박에선 보다 자유로워졌으나 이 부회장이 즉각 공개적으로 현장 경영에 나서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 입장에선 굳이 공개적인 광폭 행보를 해봤자 취업제한 논란이 더 커지는 등 긁어 부스럼만 만들 수 있어서다.
또 다양한 사업 부문에 걸쳐 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는 만큼 현안 파악·점검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지난 2018년 3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을 당시에는 한 달 넘게 정중동 행보를 하다 45일 만에 첫 공식 일정으로 유럽 출장을 떠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 현안 점검이 어느 정도 일단락 돼야 현장 행보에 나설 것”이라며 “사업 분야가 워낙 다양한 데다 재판까지 준비해야 해 현안 점검에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청와대까지 나서 이 부회장의 가석방이 ‘국익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밝힌 만큼 머지않아 외부 행보에 나설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첫 행보는 이 부회장 사면론의 시발점이 된 ‘반도체’로 향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세계 반도체 시장은 TSMC·인텔 등 글로벌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이어나가며 날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패권 경쟁까지 벌어지며 ‘3차 세계대전’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 부회장이 반도체 사업장을 찾을 경우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이 ‘K-반도체 벨트’ 조성계획을 발표할 당시 찾았던 평택캠퍼스의 P3 건설현장을 찾아 생산라인 등을 둘러볼 것으로 점쳐진다. 또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공식화한 170억달러(약 20조원) 규모의 미국 내 제2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부지 결정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처럼 차분하게 경영 행보를 이어가며 차근차근 보폭을 넓혀나갈 것으로 보인다”며 “글로벌 반도체 경쟁 격화와 함께 이 부회장의 사면 여론이 커진 만큼 반도체 부문과 관련해선 머지않아 공개적인 행보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