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닷컴 제공] 밴드 ‘부활’은 보컬리스트의 산실이다. 데뷔 음반을 발표하기 직전의 보컬리스트는 김종서였고, 이후 이승철(1~2집)이 밴드의 목소리를 책임졌다. 계보는 고 김재기(3집), 그의 친동생 김재희(4집)를 거쳐 박완규(5집), 김기연(6집), 이성욱(7집), 이승철(8집), 정단(9집) 등으로 이어졌다. 현재 부활의 보컬을 맡고 있는 정동하까지 9명은 모두 ‘대한민국 대표 보컬리스트’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보컬리스트 개인들에겐 잔인한 비교이지만 9명 중 누가 최고인가를 두고 팬들이 설왕설래하는 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리더 김태원의 왕성한 활동(?)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부활은 최근 들어 역대 보컬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데 스스럼이 없다. 지난 1월에는 박완규를 내세워 ‘비밀’을 내놨고, 최근엔 박완규, 이성욱, 정단, 정동하 등 전·현 보컬리스트 4명이 참여한 ‘누구나 사랑한다’를 냈다. 김태원(기타), 서재혁(베이스), 채제민(드럼)의 연주와 더불어 4인4색의 보컬이 번갈아가며 뿜어내는 가창이 눈부시다. 요즘 인기를 누리는 MBC <나는 가수다>의 또 다른 버전 같다. 박완규, 이성욱, 정단, 정동하가 경향신문을 찾았다. 인터뷰는 부활 시절의일화, 숨은 역사, 가요계 이야기로 계획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네 명이 한 무대에 오르는 게 아직도 신기하기만 하다”는 이성욱은 “우린 부활에 들어가기 전부터 풍문으로 서로의 소식을 듣곤 했던 사이”라고 했다.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1990년대 홍대 쪽은 정단이, 휘경동 인근의 강북 지역은 이성욱이, 서울 이남의 경기 지역은 박완규가 휘젓고 다녔다. 박완규는 “록의 성지였던 부산 쪽은 특출한 사람이 제법 많았고, 서울 강남은 손무현 등 돈 많은 형들의 부드러운 음색이 지배하던 지역이었다”고 회상했다.
네 명의 보컬리스트는 서로에 대한 ‘경계’보다는 ‘칭찬’이 앞섰다. 박완규와 정단은 이성욱이 부활 전에 몸담았던 밴드 ‘신조음계’가 발표한 노래 ‘나만의 꿈’(1994년)을 처음 접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박완규는 “성욱씨가 부른 그 노래는 당시 로커들의 텍스트였다”고, 정단은 “내 마음속에 록의 불씨를 지폈다”고 치켜세웠다.
부활의 터줏대감 김태원에 대한 ‘뒷담화’도 빠질 리 없다. 김태원은 이를 우려하여 인터뷰 전 보컬 4명에게 “죽이지만 마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네 명은 김태원을 ‘도축업자’로 불렀다.
“우린 도축장에 끌려나온 소나 진배 없었어요. 실제로 우리끼리 1~4번 소라고 불렀다니까요. 한 명씩 녹음실에 들어가서 속된 말로 엄청 깨지고…. 전부 다른 데 가면 주름 좀 잡는 사람들인데 (김)태원이형 앞에만 서면 하염없이 작아져요.”(박완규) 김태원은 정단에게 “너는 일생이 슬프냐”고 쏘아붙였고, 이성욱에게는 “니 목소리는 기름기 자체야”라고 투덜댔다. 박완규에게는 “업소 그만 다니랬지. 목소리 정말 이렇게 낼 거야”라며 야단을 쳤다.
하지만 과거에 비한다면 매우 준수해졌다는 게 보컬 4인방의 설명이었다. 박완규는 “1997년 부활 5집 수록곡 ‘론리 나이트(Lonely Night)’를 녹음하는데 무려 56프로(녹음실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1프로는 통상적으로 3시간30분가량을 뜻함)가 사용됐다”며 “결혼한 내 처지를 알면서도 ‘외로운 밤의 의미도 모르는 녀석이 이 노래를 잘 부를 리가 없지’라며 한 달 이상을 들볶았다”고 털어놓았다. 이성욱은 “그런 냉혹함이 있었기에 부활 역대 보컬 모두가 어딜 가도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빛났다”고 말했다.
“우리 가요계도 전설적인 밴드 한 팀은 있어야죠. 수십년 더 유지돼 전설의 팀으로 오래 남았으면 좋겠어요. (정)동하가 부활 보컬로서는 처음으로 재계약을 했다는 게 고무적입니다.”(박완규)
Mnet <슈퍼스타K>, MBC <위대한 탄생> <나는 가수다> 등으로 가창력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요즘 이들이 노래를 잘하기 위해 썼던 제각각의 방법도 흥미로웠다. 모두가 실용음악학원이나 관련 학과를 다니지 않고 독학으로 노래를 익힌 세대들. 박완규는 “10대 시절 18개월간 매일 새벽마다 뒷산에 올라가 소리를 질러댔다”고 했다. 이성욱은 “가수 중 센 사람 하나를 타깃으로 잡아 ‘이 자식의 음색과 숨소리뿐 아니라 영혼까지 빼앗겠다’는 기분으로 노래했다”고 고백했다. 정동하는 하루 12시간씩 미리 골라놓은 노래를 만족할 때까지 부르는 방식을 썼다. 부활은 앞으로도 정규 음반 활동 외에 다양한 실험을 병행해 나갈 생각이다. 보컬 간의 듀엣곡, 바꿔 부르는 부활 히트곡 등 신선한 음원이 자주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는 별도로 박완규, 이성욱, 정단의 솔로 음원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