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환율800원시대?)②당국도 추세는 거부 못해

권소현 기자I 2007.10.02 11:53:56
[이데일리 권소현기자] 환율이 끊임없이 흘러내리면서 900원선이 위협받을 지경이 되자 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당장 주요 언론들이 "수출타격" "경기회복 찬물" 등의 헤드라인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수출이 환율 하락세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은채 호황을 이어간데다, 최근의 원자재값 급등세를 감안하면 오히려 환율하락을 용인해야 할 필요성까지 있어 당국을 주저케 하고 있다.
 
외환 전문가들은 당국이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달러화 약세를 막을 힘도 없는 만큼 투기적인 쏠림현상을 막는 차원의 개입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적극적 개입의지 없는 당국..그저 `예의주시`
                         ▲6월 이후 주요국 환율 추이

이번 달러화 약세가 원화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 대부분의 통화, 특히 우리와 같은 이른바 이머징마켓 통화에 대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당국은 적극적인 개입에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한 관계자는 "달러화 낙폭이 단기간 과도하기 때문에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도 "최근 아시아 통화가 달러화에 대해 얼마나 강세를 보였는지를 원화와 비교해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달러 약세에 편승해 달러/원 시장에서 특히나 지나친 쏠림현상이 나타났는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정경제부는 극도로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이럴때일수록 아무말 안 하는 것이 내 스타일"이라고 언급하는데 그쳤다.
 
이에 앞서 김석동 재경부 제1차관은 지난달 20일 가진 정례 브리핑에서 "시장 상황이 전반적으로 안정돼 있어 달러/원 환율 움직임에 대해 특별하게 우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당국의 움직임이 급박하지 않은 것은 원화가 나홀로 강세를 나타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른 위기를 막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9월 금리를 50bp 대폭 인하하자 달러화는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유로화에 대해서는 사상 최저치를 연일 갈아치워 유로/달러는 1.42달러를 넘어섰고 아시아 통화에 대해서도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였다.

지난달 한은의 스왑시장 개입 이후 현물환율이 떨어지자 재경부는 "현물환 시장에서도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밝혔으나, "지나친 심리적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라고 조건을 달았다.
 
한 시중은행 외환딜러는 "당국이 강력한 개입의지를 갖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판단했다.

◇원화강세 수출 타격 `예전 같지 않다`

일각에서는 당국이 무리하게 외환시장 개입에 나설 필요가 없다고 보고 있다.
                     ▲주요국 수출금액 변화(자료: 한국은행)

과거처럼 수출이 미국 일변도가 아니라 상당히 다변화됐기 때문에 달러화 대비 원화 강세에 따른 경제타격이 크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미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29.8%에 달했지만 작년에는 13.3%로 급감했고 올들어 7월까지는 12.9%에 불과했다.

반면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91년 1.4% 수준이었지만 작년 14.9%에 이어 올들어 7월까지는 15.4%로 증가하는 등 수출에서 이머징 마켓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환율이 지난 2002년 4월(1300원대)부터 추락을 거듭해 왔지만, 우리 수출은 급증세를 이어가며 경기를 끌어온 것이 사실이다.
 
◇ 원자재값을 봐서는 환율하락이 바람직한 측면도

최근 유가가 80달러를 돌파하는 등 원자재 가격 급등하면서 물가 압력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 역시 당국의 개입을 억제하는 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환율하락을 억제할 경우 국내 경제가 원자재를 중심으로 한 수입물가 급등 충격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굿모닝신한증권 이성권 이코노미스트는 "원화 강세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두자릿수 성장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수출지역이 다변화됐기 때문"이라며 "여기에 원화 강세가 수입물가를 누그러뜨리고 있어 환율 하락이 반드시 우리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만은 없다"고 분석했다.
 
◇외환시장 개입에 따른 유동성 증가 부담도 고민

한 시중은행 외환딜러는 "재경부는 좀 다르겠지만 한은 입장에서는 물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외환시장에 개입하면 그만큼 원화 유동성이 풀리는데 그동안 유동성을 잡기 위해 노력해왔던 한은으로서는 고민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달러화 약세가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만큼 선진국들이 달러화의 급격한 약세를 그냥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당국이 어느정도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이유다. 당장 오는 10월 열리는 선진7개국(G7) 회담에서의 주요 화두는 달러화 경착륙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당국도 추세를 바꿀 힘은 없어"..쏠림방지 주력 예상 

이에 따라 당국이 적극 개입에 나서기 보다는 속도조절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 높다. 특히 과거처럼 달러/원 일정 수준을 막아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기 보다는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을 막는 정도로 만족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금리 인하 이후에 달러가 약세 기조로 흐르고 있기 때문에 당국이 개입해도 추세 자체를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당국도 이런 기조를 용인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개입한다고 해도 시간벌기나 910원이 무너졌을때를 대비한 명분쌓기 용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외환딜러 역시 "정부가 무리하게 나서서 환율 하락을 막기 보다는 속도를 조절하는 수준에서 그칠 것"이라며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을 기대했다.

다른 외환딜러는 "환율 하한선을 정해좋고 이를 사수해야 한다는 식 보다는 심리적으로 외환시장이 한방향으로 쏠릴 경우 시장이 제기능을 하도록 미세조정하는 선에서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당국이 달러 약세가 조만간 진정될 것이라는 기대를 어느정도 갖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달 G7를 계기로 달러화 급락은 진정될 가능성이 있다"며 "당국도 이같은 변수를 감안해 긴박하게 개입을 고려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환율800원시대?

- (긴급 외환폴)"이달중 800원대 후반 진입" - (환율급락)③당국 개입은 고가매도 기회? - (환율급락)②당국은 소극적 `수용`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