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몬트=이데일리 하정민특파원] 커피의 본능은 유혹 / 진한 향기는 와인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은 키스보다 황홀하다. /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나폴레옹 정권에서 프랑스 외무장관을 지냈던 샤를 모리스 탈레랑은 커피를 이렇게 예찬했지만 사실 감미로운 커피향에는 자본주의의 깊은 `죄의식`이 담겨 있다. 전통적으로 커피 회사들이 제3세계 농민의 노동력을 착취해 이윤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도덕성 논란이 오히려 `부가가치 창출`의 기회가 되고 있다.
제1부, 선진국 기업들은 지금
①사회와 기업은 하나다
②커피향의 죄책감을 씻다
③`最善`이 최고의 부가가치
④`생산활동=사회공헌`
⑤`국민기업` 발렌베리를 가다
제2부, 한국기업 새 부가가치에 눈뜨다
제3부, 기업환경이 부가가치를 만든다
미국의 경영전문지인 비지니스 에식스 매거진(BUSINESS ETHICS MAGAZINE)은 해마다 `가장 윤리적인 100대 기업`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올해 발표된 100대 기업의 꼭대기에는 그린마운틴 커피 로스터(GMCR)라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그린마운틴 커피는 미국에서도 시골 중의 시골로 유명한 버몬트 주에 위치한 전직원 600명의 중소기업이다. 이 조그만 회사가 어떻게 휴렛패커드, AMD, 모토로라 등 쟁쟁한 대기업을 2~4위로 밀어내고 미국 최고 윤리 기업으로 뽑혔을까? 더구나 `노동력 착취`로 악명이 높은 커피회사가 어떻게 `윤리`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았을까?
◇최고 윤리 기업의 비결은 공정 무역
그 비결은 바로 `공정 무역(Fair Trade)`에 있다.
`공정 무역(Fair Trade)`이란 선진국의 소비자, 유통업자가 제3세계의 농산물, 수공예품 등을 직접 수입, 판매하는 대신 그 이익을 생산자에게 제대로 돌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잘 알려진대로 콜롬비아, 과테말라, 에티오피아, 르완다 등 세계의 주요 커피 생산국은 이름만 들어도 빈곤과 내전의 고통이 묻어나는 나라가 대부분이다. 한 잔에 5000원을 넘나드는 스타벅스 커피가 날개돋친 듯 팔리는 동안 제 3세계의 커피 농민들은 하루에 1달러를 벌기 위해 피땀을 흘려야 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이 같은 비난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공정 무역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이 제도는 커피 업체나 인증 기관이 현지 생산자와 직접 협상을 통해 최저 가격을 보장하고 장기 거래 계약을 맺음으로써 최저가를 보장해주는 것이다.
현재 그린마운틴 커피가 공정무역을 통해 조달하는 커피의 비중은 27%로 미국 커피업계에서 최고를 자랑한다. 아무리 커피 원두 가격이 떨어져도 전체 구입량 중의 27%는 반드시 1파운드 당 1.6달러의 공정가격을 주고 구입하고 있다.
이 회사의 모린 마틴 IR 담당자는 "현재 스타벅스는 전체 커피 구입량 중 1%만을 공정무역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스타벅스가 워낙 큰 회사이니만큼 1%라도 절대적인 규모는 우리 회사보다 훨씬 크지만 27%라는 우리의 비율 자체는 업계 최고 수준이므로 여기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 그녀의 자랑이다.
◇"윤리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사실 2000년까지만 해도 그린마운틴 커피가 공정 무역으로 구매한 커피는 단 1그램도 없었다.
2001년부터야 공정 무역을 시작했고 당시 이를 통해 구매한 커피의 비율은 6.92%에 불과했다. 매년 이 비율을 조금씩 늘린 그린마운틴 커피는 지난해 20.37%로 20%대를 돌파한 뒤, 올해는 27%까지 비율을 높였다.
버몬트 주 워터베리 공장에서 만난 그린마운틴 커피의 프랜시스 래스키 최고 재무책임자(CFO)(왼쪽 사진)는 "내년에는 공정무역의 비율을 35%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며 장기적으로는 50%를 넘기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사실 커피회사 입장에서 공정 무역으로 비싸게 커피를 구매하면 그 만큼의 `이윤`을 포기하는 셈이다. 하지만 그린마운틴 커피는 오히려 이를 마케팅 차별화 전략으로 사용해 회사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공정 무역이 실제로 회사에 도움이 되느냐고 묻자 주저 없이 "물론이다(absolutely)"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특히 윤리적이고 친환경 회사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있어 이보다 효과적인 전략은 없다고 강조했다.
커피를 물보다 자주 마시는 대다수 미국 소비자는 자신의 기호품인 커피가 후진국 생산자에게 정당한 대가가 지불하지 않고 만들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환경 파괴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런 사실을 알면서 커피를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기는 어렵지만 `공정거래(Fair Trade)` 상표를 보면 그런 죄책감을 덜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나스닥 상장사인 그린마운틴 커피의 매출은 공정 무역 도입후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공정 무역 도입 다음해인 2002년에 매출 1억 달러를 달성한 뒤 2003년 1억1673만 달러(16.7%↑), 2004년 1억3744만 달러(17.7%↑), 2005년 1억6154만 달러(17.5%↑)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최근 3년간 연평균 17.5%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올해들어서도 지난 2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에 비해 26.5%나 늘어나는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가치가 전반적으로 향상되며 2001년 1월 12일 종가기준으로 23.06 달러였던 회사의 주가는 지난 10월 16일 기준 40.08달러로 73.8%나 올랐다. 기업 이미지가 좋아지면서 실적과 기업가치가 동시에 개선되는 효과를 톡톡이 누리고 있는 것이다.
부채 의식조차 돈으로 갚는다는 발상 자체는 굉장히 미국적이지만 `윤리적 소비 운동`은 유기농과 친환경 제품이 각광받는 선진국에서 중요 마케팅 포인트로 떠오른지 오래다. 그린마운틴 커피도 이 점에 착안, 윤리를 부가가치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