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김홍기기자] 미국의 경제주간지인 비즈니스 위크는 최근호에서 땅에 떨어진 ‘주식회사 미국’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기업 지배구조를 개혁해야 하나 이를 이끌어 나가야 할 대기업 경영진들이 오히려 개혁 움직임에 대해 조직적으로 반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반대로비는 시작됐다. 미국 대기업체 사장 모임인 ‘비즈니스 원탁회의(Business Roundtable)’는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기업지배구조 기준 개선안을 발표하기도 전에, NYSE 이사장인 리처드 그라소에게 항의 편지를 보냈다.
이 항의편지 소동은 파니 매의 최고경영자(CEO)인 프랭클린 레인즈는 지난달 하순 원탁회의 멤버들에게 모든 스톡옵션 계획을 주주총회에서 결정하려는 NYSE의 계획에 반대하자는 캠페인을 벌임으로써 시작됐다. 제너럴 밀즈의 회장인 스티븐 생거는 편지에서 NYSE의 계획을 반생산적이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반발 때문인지) NYSE는 이 안을 훨씬 완화된 안으로 바꿨다. 원탁회의 멤버 전원으로부터 항의 편지를 받았던 그라소 이사장은 “회사 경영진들은 일반인들이 그들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해 인식해야만 한다”면서 “솔직히 말하면 시장은 불쾌감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비판론자들은 주식회사 미국의 리더들이 놀라우리만치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고 말한다. 자유시장 시스템이 붕괴될 수도 있는데 이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 CEO만 하더라도 기소당한 타이코 인터내셔널의 데니스 코즐로프스키, 권한 남용과 신의성실 원칙 파기로 고소당한 아임클론 시스템스의 사무엘 와크살 등 부지기수다. 엔론의 케네스 레이, 월드콤의 베르나르 에베르, 아델피아의 존 리가스 등은 권한 남용과 무능 등으로 사임한 CEO다. 이들 외의 다수 CEO들은 주가 폭락 직전에 주식을 매도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제임스 베이커 전 재무장관은 최근 미시간대학의 한 연설에서 “자본주의의 천재성은 파괴적인 인간 본성이 갖고 있는 탐욕을 인센티브라는 것으로 바꾼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폭발적 성장기인1990년대에 탐욕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제압해 버렸다. 체크할 만한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경영진의 탐욕을 체크해야 하는 회계법인, 외부 변호사, 이사회가 한통속이 됐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까지 개혁을 추진하려는 힘이 주식회사 미국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투자자의 감정에 민감한 월스트리트와 시장에서 나왔다. 타율에 의한 개혁 움직임인 셈이다. 처음 개혁을 주창한 골드만삭스의 CEO인 헨리 폴슨은 그가 살아오는 동안 주식회사 미국(의 CEO들)이 이같은 조사를 받았던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CEO들의 탐욕을 줄이기 위해 스톡옵션은 기업체의 손익계산서에서 비용으로 처리되어야만 하며 기업 내부자들은 부도나기 1년 이내에 주식을 팔아서 번 이득을 게워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만약 비즈니스 엘리트들이 신뢰 상실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비즈니스 공동체가 진정코 원하는 것인 자유시장 경제 시스템이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과도한 규제나 중앙정부의 개입을 불러올 수 있다. 전 백악관 비서실장인 레온 파네타는 “궁극적으로 개혁은 민간부문이 자체적으로 해내야만 한다”고 밝혔다.
CEO들이 꺼려하는 이유로는 얼마나 번질 지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엔론이나 글로벌 크로싱, 아더 앤더슨, 타이코, 월드콤은 수면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일 지 모른다. IBM이 사업부문 매각으로 유입된 2억 9000만 달러를 손익계산서에 포함시켰다는 일이 밝혀졌을 때, 그러한 문제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러한 일은 합법적이다. 그러나 사기와 다름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 제록스 등 많은 기업들이 실적을 다시 발표해야만 했다. 1995년부터 2001년까지 실적 수정 건수는 연간 50건에서 150건 이상으로 급증했다. 올 1분기에만 60건이나 됐다. 이러한 추세라면 올해에 실적 수정 발표는 240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도대체 기업윤리가 왜 이렇게 악화됐는가. 그 뿌리는 전례없는 번영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CEO들이 컬트적인 영웅이 됐던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많은 미국인들이 초효율적인 일본에 압도당할 것이라고 우려했던 그 때부터 미국 비즈니스 리더들은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생산적인 경제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혁신과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비즈니스 기본으로의 회귀는 기업 총수에 대한 찬사로 이어졌다. 신뢰, 안정성, 투명성, 그리고 균형과 견제 덕분에 주식시장이 누구에게나 공정한 시장이 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인해 돈이 자유롭게 금융 시스템으로 흘러들었다. 결국 막대한 스톡옵션으로 인해 새로운 난공불락인 CEO들의 지갑이 두툼해졌다. 이는 CEO의 성공이 얼마나 많이 주가를 끌어올리느냐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설적이게도 지난 20년간의 주주혁명은 CEO들의 권력과 영향력, 보수 등을 폭발적으로 증대시켰다.
특히 경영진들이 주주들의 이해를 위해 행동하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만 하는 이사진은 주가 상승에 따라 투자자로 변했다. 이사회는 죽은 물고기로 가득 찬 어항으로 변했다. 견제를 받지 않는 CEO들은 회사내에서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게 됐다. 월드콤의 에베르는 자신의 회사주식 투자에 따른 마진 콜을 채워넣기 위해 회사에서 3억 6600만 달러를 빌렸다. 타이코의 이사회는 CIT 그룹 인수에 참여한 한 이사에게 2000만 달러를 보너스로 줬다. 현재 분리 직전에 있는 CIT는 1년전 인수대금인 95억 달러의 절반 정도에 팔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CEO들은 당초 문제가 없었으나 언론이 문제를 부풀렸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는 센세이셔널리즘에 매몰된 언론 탓이라고 비난한다. 일부는 또 대부분의 미국 기업들은 법을 지킬 뿐 아니라 양심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경영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CEO인 제임스 파커는 “극소수의 부정직한 행위가 비즈니스 전체의 신뢰를 해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일부는 또 경제적 포퓰리스트들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시장의 자기 치유능력에 맡기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특히 닷컴 버블과 테러리즘,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전쟁 가능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미국의 CEO들에 대한 공격이 나왔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환상이 증폭된 것이라는얘기다. 박스터 인터내셔널의 회장인 해리 젠슨 크레이머는 “만약 엔론에 대한 언론 보도의 10%만 사실로 드러난다면 진짜 문제”라고 주장했다. 언론이 문제를 만들어냈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제이 로쉬 교수는 이에 대해 “언론이 문제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문제 기업에는 스톡옵션 문제가 있었다. 주가가 상승했던 1990년대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주가가 하락하면서 여러 문제가 나타났다. 특히 주주들은 수백만 달러씩 손해를 보고 있는데 경영진은 막대한 돈을 챙긴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글로벌 크로싱의 게리 윈닉은 1999년부터 작년 12월까지 주식을 팔아서 7억 3500만 달러를 챙겼다. 엔론의 케네스 레이는 주식 매각으로1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으며, 타이코의 코즐로프스키는 5억 달러 이상을 가져갔다.
결국 능력이 뛰어나지도 않은 평범한 CEO들이 막대한 돈을 챙김으로써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자질이 없는 CEO들이 돈을 챙기는 것을 본 CEO들이 너도나도 스톡옵션을 부여받았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인 폴 볼커는 “기업경영은 태도의 문제다. 그러나 경영진들의 태도가 1990년대의 시장 분위기에 의해 변질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CEO들은 왜 자신들이 바뀌어야 하는 지를 모르고 있다. 가장 미온적인 변화에 대해서도 반발한다. 레이몬드 제임스 파이낸셜의 CEO인 토머스 제임스는 사외 이사제도 자체에 대해서도 반발한다. 그는 사외이사제도가 낫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고 주장한다. 아메리칸 파이낸셜 그룹, EMC 등과 같은 유명 기업들도 사외이사가 적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다.
어찌됐든 주식회사 미국의 비즈니스 리더들이 개혁을 리드해야만 한다. 타율에 의한 개혁은 결국 용두사미로 끝나 버리거나 반발에 직면해서 실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들이 한 때 세계를 풍미했던 일본의 효율성 주술을 혁파한 선배 CEO들만큼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