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韓 최초 오페라 만든 청년들…웃음·눈물 다 잡았다

장병호 기자I 2024.01.07 19:00:00

오디컴퍼니 첫 창작뮤지컬 '일 테노레'
조선 최초 오페라 테너 이인선 모티브
일제에 맞선 예술가들의 고군분투
스토리 호평…내달 25일까지 공연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이게 뭐예요? 오페라?”

지난달 1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일 테노레’의 한 장면. 일제강점기 세브란스 의대생 윤이선이 우연히 들어온 이화여전 음악실에서 오페라를 처음 접한 뒤 말하는 대사다. ‘일 테노레’의 공연이 끝난 뒤, 이 장면이 다시 떠오를지 모른다. “이게 뭐예요? 이런 뮤지컬이 있어요?” 윤이선의 대사를 빌려 이런 질문이 생각날 수도 있다. 감탄의 의미다.

뮤지컬 ‘일 테노레’ 넘버 ‘오페라 레슨’ 중 배우 홍광호(윤이선 역)의 공연 장면. (사진=오디컴퍼니)
오랜만에 ‘웰메이드 뮤지컬’이 탄생했다. 공연제작사 오디컴퍼니의 첫 창작뮤지컬 ‘일 테노레’는 탄탄한 스토리로 재미와 주제를 모두 잡은 작품이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어쩌면 해피엔딩’을 만든 작가 박천휴, 작곡가 윌 애런슨 콤비의 신작으로 2018년 우란문화재단 낭독공연으로 처음 선보였다. ‘지킬 앤 하이드’, ‘데스노트’ 등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로 잘 알려진 오디컴퍼니의 제작 노하우와 만나 5년여 만에 마침내 정식 공연으로 무대에 올렸다.

제목인 ‘일 테노레’(IL TENORE)는 이탈리아어로 ‘테너’를 뜻한다. 조선 최초 오페라 테너인 실존인물 이인선(1907~1960)을 모티브로 삼았다. 이인선이 의학을 전공한 테너였다는 기본 설정만 빌려왔고 전체 이야기는 새롭게 창작했다. 주인공 이름이 이인선이 아닌 ‘윤이선’인 이유다.

작품은 일제강점기 의사가 되는 것밖에 몰랐던 소심하고 내성적인 의대생 윤이선, ‘문학회’ 일원으로 항일 독립운동에 나선 서진연, 이수한이 항일 정신 고취를 위해 조선 최초의 오페라를 만드는 과정을 그렸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작품 분위기는 무겁지 않다. 시대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청춘들의 사랑과 꿈과 열정을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여기에 조선 최초 오페라를 만들기 위한 예술가들의 고군분투, 윤이선이 보여주는 인생의 회한과 희망의 메시지를 2시간 50분의 공연에 꾹꾹 눌러 담았다.

뮤지컬 ‘일 테노레’ 넘버 ‘조선 최초 오페라 클럽’ 중_박은태(윤이선 역, 오른쪽), 박지연(서진연 역, 왼쪽), 전재홍(이수한 역, 가운데)의 공연 장면. (사진=오디컴퍼니)
1막은 풋풋한 청춘들의 좌충우돌 소동을 중심으로 웃음을 선사한다. 본격적인 오페라 준비 과정을 그린 2막은 웃음 속 감동과 눈물로 관객의 마음을 뒤흔든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의 이야기를 그린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관객에게 뭉클함을 선사했던 박천휴-윌 애런슨 콤비의 솜씨는 이번에도 빛난다. 주·조연은 물론 앙상블까지 각각의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점도 인상적이다. 오페라를 통해 소심함에서 벗어나는 윤이선, 진취적인 여성상을 보여주는 서진연, 독립운동이라는 대의를 지키고자 헌신하는 이수한의 ‘케미’도 눈길을 끈다. 2막에 숨겨둔 무대 변화, 예상치 못한 반전도 재미를 더한다.

무엇보다 ‘일 테노레’는 거창하게 느껴지는 독립운동이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평범한 꿈이자 이를 이루기 위한 노력의 결과임을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매력적인 인물들로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때로는 그 꿈이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꿈을 포기해선 안 되며 그것이 곧 우리의 삶이라는 메시지다. 박천휴 작가는 “극도로 화려한 예술인 ‘오페라’와 비극적이고 어두운 역사인 ‘일제강점기’의 대비를 통해 인생의 고통조차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려 애쓰며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윤이선 역에 홍광호·박은태·서경수, 서진연 역에 김지현·박지연·홍지희, 이수한 역에 전재홍·신성민이 캐스팅됐다. 공연은 오는 2월 25일까지 이어진다.

뮤지컬 ‘일 테노레’ 넘버 ‘오페라 레슨’ 중 서경수(윤이선 역) 및 배우들의 공연 장면. (사진=오디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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