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 오해’를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모든 사회에서 비만은 가장 가난한 곳에서 가장 빨리 퍼진다’는 것, 바로 이를 간과한 탓이다. 다시 말해 비만 탈출이 한 개인의 의지로 해결된다고 믿는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순진한 발상이란 거다. 좋아하는 음식을 원하는 방식대로 구입·가공해 먹는다는 건 착각이다. 소비자는 그저 경제·사회·문화적 관계들이 뒤얽힌 긴 사슬의 마지막 고리일 뿐이다.
프랑스 과학전문기자와 보건영양학 전문가 등 4명의 저자들이 내놓은 주장은 갈수록 거침이 없다. ‘몸무게가 많이 나갈수록 가난하다’는 규칙까지 찾아낸다. 따라서 ‘인류의 뱃살은 개인책임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문제’라는 거다. 먹을거리의 수요와 공급 불균형이 가장 큰 원인이다. 때문에 비만은 영양실조와 마찬가지로 빈곤이 불러오는 질병이다.
가난할수록 뚱뚱하다
이쯤에서 저자들이 들춰낸 또 다른 문제를 만나게 된다. 왜 가난한 나라에서 비만율이 더 높게 나오는가다. 흔히 비만은 먹을거리가 풍족한 선진국에서 생기는 것으로 몰아왔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개발도상국과 신흥산업국가의 비만인구가 선진국보다 훨씬 많더라는 거다. 왜? 여기엔 일반인들이 꿰뚫기 어려운 복잡한 음모가 있다. 선진국의 식품산업유통구조가 그것이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선진국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생산량이 발단이었다. 날이 갈수록 증가해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곡물과 유지류를 자국 내에선 처분할 길이 없어진 거다. 그들은 그 답을 수출에서 찾았다. 빈곤국가에 무차별적으로 싼 음식의 재료를 쏟아부었다.
싼 음식을 수입한 빈곤국가에선 그나마 부유한 사람들이 먼저 식습관을 바꾼다. 슈퍼마켓 선반 위 가공식품에 손을 뻗을 여유가 되기 때문이다. 이들이 불러온 과체중·비만의 바이러스는 이후 중산층, 다시 그 이하 계층으로 빠르게 확산된다. 비만이 식량생산과 산업구조의 메커니즘이 낳은 총체적 위기가 되는 시점이다.
그렇다면 비만은 결국 물가의 문제인가. 이 경우를 보자.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 갑작스럽게 비만인구가 증가했다. 이전 20년 동안 2%에 불과했던 비만율이 이후 25년 새 15%까지 늘어난 거다. 이유는 경제로 분석됐다. 경제지표가 나아졌다는 얘기가 아니다. 채소·생선·우유 가격이 크게 상승한 반면 설탕·지방에 싸인 음식의 가격은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이다. 소비자가 무엇을 골랐는지는 자명하다. 당연히 대량생산과 유통을 이끌어낸 기술발전도 한몫 했다.
내 뱃살엔 선진국의 음모가
여기서 낼 수 있는 결론은 비만이 단순히 건강과 관련된 주제가 아니란 것이다. 비만 유발 식품을 팔고 소비하도록 만들었더니 더 많은 수익을 내더라는 ‘합리적인’ 경제체제가 그 요인이다. 더 나아가 중앙아프리카에서 카사바를 생산하는 사람, 또 미국서 수천에이커 옥수수밭을 가로지르는 농부까지 시카고 증권거래소의 가격을 좌지우지하게 된 구조도 있다.
당장의 먹을거리 생산에 주력하던 역사가 변질됐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식품산업의 생산부터 광고·마케팅 방법까지 ‘비만을 양성하는’ 환경을 조성하게 된 것이 문제다. 그러니 ‘더 많이 먹되 운동은 덜 하라’고 부추기는 현실을 직시하라 이른다. 비만과 식품산업, 빈곤과 환경문제의 역학관계를 잘 풀어내는 것만이 비만을 잡을 수 있는 길이라 했다. 뱃살에 끼인 거대한 불공정을 끊어내라는 압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