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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건물은 기다리지 않는다[0과 1로 보는 부동산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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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원 기자I 2026.09.12 08: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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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차인 수요 읽고 맞춤형 임대전략 세워야
앵커 임차인 유치가 빌딩 자산가치 좌우
데이터·네트워크 활용이 임대대행 경쟁력

[박희원 알스퀘어 LM본부장] 도심권에 리모델링을 마친 중대형 오피스 빌딩이 있다. 입지가 나쁘지 않다. 지하철역과 가깝고, 로비와 공용부는 깔끔하게 정비됐다. 임대 조건도 주변 시세와 맞춘다. 그런데 임차 문의가 예상보다 더디다. 몇몇 기업이 검토했지만 의사결정이 늘어지고, 최종 계약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답답한 상황이다. 건물의 상품성은 분명한데 시장 반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노출 확대가 아니다. 브로슈어를 더 돌리거나 공실 정보를 더 많이 알리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중요한 질문은 하나다. ‘이 건물에 실제로 들어올 수 있는 임차인은 누구인가.’

(사진=챗GPT로 생성)
(사진=챗GPT로 생성)
여기서 임대대행의 본질이 드러난다. 좋은 임대대행은 빈 공간을 시장에 내놓는 일이 아니다. 움직일 가능성이 있는 임차인을 찾고, 그들이 왜 움직이는지 이해하고 건물의 조건과 임차인의 필요가 만나는 지점을 설계하는 일이다. 빌딩의 특성을 파악해 맞춤형 임대마케팅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 임대인 입장에서 자문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임대시장과 임차인의 니즈를 파악해 마케팅하는 것이다.

임차인을 읽어라…신뢰가 자산이 되는 길

상업용 부동산에서 임대대행은 흔히 공실을 채우는 업무로 이해된다. 충분한 설명은 아니다. 실제 현장에서는 빌딩의 입지, 규모, 설비, 임대 조건, 주변 공급 상황, 권역별 수요, 기업의 조직 변화가 한 번에 맞물린다. 같은 1000평의 공실이라도 어떤 기업에는 확장의 기회가 되고 어떤 기업에는 비용 부담이 된다.

최근 기업 내부 소통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1개층 전용면적이 넓은 구조를 선호하는 기업이 증가했다. 대형 오피스라면 임차인의 이런 니즈를 정확히 알고 마케팅할 때 효과를 본다. 1개층 전용면적이 넓으면 내부 소통 강화는 물론, 층별 공용면적(회의실, 휴게실) 효율화와 사무 공간의 최적 배치를 통해 근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좋은 입지의 빌딩을 보유하고 있으면 임차인을 기다리는 방식도 가능했다. 하지만 시장이 달라졌다. 주요 업무지구에는 신규 공급과 리모델링 자산이 쏟아진다. 기업들은 사무실 이전을 더 신중하게 판단한다. 단순히 넓고 깨끗한 공간이 아니라 출퇴근 동선, 비용, 브랜드 이미지, 근무 방식, 향후 조직 규모를 함께 본다. 매년 더 좋은 신축 오피스빌딩이 공급되고 일부 권역에서는 일시적 과공급 현상이 나타나면서 임차인의 선택권은 많아지고 있다. 반면 임차인이 원하는 빌딩은 한정적이다.

이런 시장에서 임차인 네트워크는 임대대행의 부차적 요소가 아니다. 출발점에 가깝다. 어느 기업이 확장을 고민하는지, 어떤 업종이 특정 권역을 선호하는지, 예산과 의사결정 구조는 어떤지 알아야 임대 전략도 현실성을 갖는다. “좋은 건물입니다”라는 말보다 중요한 것은 “이 건물이 왜 특정 임차인에게 필요한가”를 설명하는 능력이다.

앵커 임차인의 존재는 빌딩 평가를 바꾸기도 한다. 상징성 있는 기업이나 안정적인 대형 임차인이 입주하면 다른 임차인의 시선도 달라진다. 공실이 줄어드는 것을 넘어, 건물의 평판과 시장 내 위치가 변한다. 임대대행이 단순 영업이 아니라 자산가치와 연결되는 이유다.

과거에는 한 지역에 신축 건물이 들어서면 일반인이 인지하는 데 5~10년이 걸렸다. 공항이나 KTX에서 내려 특정 빌딩으로 가자는 말이 통용될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은 내비게이션과 AI 기술 발전으로 빌딩의 위치를 찾는 것은 쉬워졌다. 하지만 빌딩에 어떤 기업이 있고, 그 기업이 왜 그곳에 있는지는 여전히 상징이 될 수 있다.

공간에는 때로 이야기가 쌓인다. 김봉진 전 우아한형제들 대표의 성장 스토리가 특정 공간의 기억과 함께 회자된 것처럼, 기업의 성장사는 건물의 평판에 영향을 준다. 광화문 이마빌딩처럼 오래전부터 좋은 터에 대한 이야기가 붙는 경우도 있고, 신축 빌딩에서 풍수지리를 홍보 요소로 활용하는 사례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보조 장치다. 지속되는 평판은 입지, 상품성, 임차 수요, 운영 역량이 뒷받침될 때 만들어진다.

물론 임차인 네트워크가 강한 회사가 임대대행을 맡을 때 임대인의 우려는 생길 수 있다. “우리 건물의 임차인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은 현실적이다. 기업이 성장하면 더 많은 면적이 필요하고 내부 공실 부족으로 이전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를 이해하고 공실에 대한 사전 마케팅을 하는 것이 좋은 임대대행사의 역할이다.

이 우려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임대대행사는 임대인의 목표를 분명히 이해하고, 이해상충 가능성을 관리하며, 어떤 기준으로 임차인을 유치할 것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강한 네트워크는 그 자체로 신뢰가 되지 않는다. 원칙과 절차가 있을 때 비로소 자산이 된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것

그간 오피스빌딩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리서치, 뉴스레터 등을 여러 회사가 시도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구축하고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현재까지 이를 이어가는 회사는 매우 한정적이다.

중요한 것은 축적된 정보를 실제 사업 성과로 연결하는 힘이다. 상업용 부동산 서비스에서 데이터와 네트워크는 보유 자체보다 활용 방식이 더 중요하다. 임차인 정보를 많이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정보를 임대인의 자산가치 제고와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임대대행은 공실을 빨리 채우는 기술만을 뜻하지 않는다. 좋은 임차인을 유치해 빌딩의 다음 가치를 만드는 일이다. 공급자는 증가하고 임차인은 더 까다로워지는 시장에서, 임대대행의 경쟁력은 건물을 많이 아는 데서만 나오지 않는다. 누가 왜 움직이는지, 어떤 공간을 필요로 하는지, 그 선택이 빌딩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읽는 데서 나온다.

앞으로의 임대대행은 임대인만 바라보는 일도, 임차인만 따라가는 일도 아닐 것이다. 양쪽의 변화를 함께 읽고, 그 사이에서 신뢰 가능한 선택지를 만드는 일이다. 좋은 건물도 이제는 마냥 기다릴 수 없다. 시장을 읽고, 사람을 읽고, 수요를 읽는 쪽으로 움직여야 한다.

박희원 알스퀘어 LM 본부장. (사진=알스퀘어)
박희원 알스퀘어 LM 본부장. (사진=알스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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