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한 병 출고가 1147원 세금만 826원"…72%가 '酒稅'

문승관 기자I 2017.12.10 14:11:20

[내가 마시는 맥주 세금은 얼마]
종가세 적용…주세율에 교육세·부가가치세 등 붙어
10년 동안 맥주·소주 등에 붙은 세금 ''약 30조원'' 이르러

[자료=우리금융경영연구소]
[이데일리 문승관 기자] 40대 회사원 이시원 씨는 ‘맥주 마니아’다. 시원한 맥주 한잔이면 하루 피로를 날려버린다는 이 씨는 최근 늘어난 수입 맥주와 발포주 매력에 흠뻑 빠져서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최근 정부가 세법개정안 발표를 통해 소규모 맥주의 소매점 유통을 허용하고 시설기준도 완화하기로 밝히면서 이 씨도 자신이 마시는 맥주에 붙는 세금이 얼마인지 궁금해졌다. 이씨는 멕주값의 72%가 세금이라는 사실을 알고 분통을 터뜨렸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거둬간 세금’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올해 초 국내 주요 맥주 브랜드들은 1년 전 맥주 출고가를 6.1% 올렸다. 이는 상반기 기준으로 1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맥주 값에 포함된 주세는 대표적인 간접세로 원가보다 세금이 더 많다. 국민이 소비하고 있는 술과 담배, 휘발유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간접세, 즉 물건값에 포함된 세금이 원가보다 많다는 점이다.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지난 10년간 정부가 맥주와 소주에 대해 거둬들인 주세가 약 30조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2조5227억원이었던 주세는 2014년 처음으로 3조원을 돌파했고 2016년 사상 최대인 3조2375억원을 기록했다. 2007년 대비 7147억원(28.3%) 증가한 셈이다. 전체 주세의 대부분인 83.2%를 ‘맥주’와 ‘희석식 소주’가 차지했다.

수입분은 2605억원에서 4471억원으로 71.6%(1865억원) 증가했으며 희석식 소주는 9073억원에서 1조2120억원으로 33.6%(3047억원) 늘었다. 맥주는 1조1241억원에서 1조4221억원으로 26.5%(2979억원) 증가했다.

[자료=우리금융경영연구소]
◇소주 세율과 같은 맥주 세율

발효주인 맥주의 주세율은 72%로 증류주인 소주와 같다. 탁주가 5%, 약주 30%인데 교육세가 붙지 않는다. 주세율이 30%인 청주와 과실주부터 주세액의 10%를 교육세 명목으로 부과한다. 맥주는 72%의 주세율 가운데 30%가 교육세다.

주세란 국민 건강을 위해 술에 징수하는 세금이다. 알코올 도수 1도 이상의 음료에 모두 적용하고 있다. 주세에는 종가세와 종량세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종가세는 출고가격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고 종량세는 알코올도수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현재 우리나라 주세 체계는 종가세를 적용하고 있다. 술의 출고가격에 세율을 곱해 산정하고 추가로 교육세를 별도 부과한다. 맥주 1병당 공장출고가가 1000원이라고 가정하면 주세가 720원이고 교육세가 216원이다. 여기에 부가가치세 10%인 193.6원을 더하면 맥주의 소매 가격은 2129.6원이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종가세를 적용하는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멕시코, 터키, 칠레, 이스라엘 등 5개국이다. 대부분 나라는 △낮은 도수 △저렴한 가격 △국민건강보호라는 취지로 종량세를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만 유독 종가세를 부과하는 이유는 바로 소주 때문이다. 종량세를 적용하면 도수가 높은 소주에 높은 세율을 부과할 수밖에 없다. 소주 가격 이 오르면 물가 상승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 종량세 적용이 어렵다.

반대로 소주 세율을 너무 낮추면 위스키나 브랜디 같은 수입산 주류에 메기는 세금까지 낮춰야 하는 ‘아이러니’도 발생한다. 종가세는 술의 가격과 물가가 오르면 자동으로 세금 수입도 늘어나는 구조다. 종량세는 가격보다는 주종별 소비량에 연동하기 때문에 세수의 등락에 영향을 미친다.

◇‘4캔에 만원’ 수입맥주, 다른 세금체계

국산 맥주는 원가가 얼마이든 관계없이 출고가에 세금을 얹는 방식이지만 수입 맥주는 계산방식이 조금 다르다. 외산 맥주는 수입 신고가를 기준으로 주세를 부과한다.

수입 신고가는 판매자가 마음대로 신고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수입 신고가를 낮춰 신고하면 그만큼 주세가 줄어든다.

수입업체가 무더기로 물량을 들여와 개당 수입원가를 낮출 수 있다면 얼마든지 국산과 경쟁할 수 있는 구조라는 의미다.

대형 마트나 편의점에서 수입 맥주 할인행사를 할 수 있는 것도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에 대한 주세 결정 방식이 달라서다. 맥주에 부과하는 주류세가 수입 맥주에 불리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맥주의 나라인 독일은 맥아 함량이 100%가 돼야 맥주로 인정하고 일본은 최소 66.7%를 포함해야 맥주로 인정받는다. 따라서 수입한 맥주가 국산 맥주와 비교해 가격 차이가 그다지 많이 나지 않은 것도 맥주에 매겨지는 세금 때문이다.

내년 1월부터는 미국산 맥주의 양허세율은 0%로 낮아지고 7월에는 유럽산 맥주 수입 관세가 0%로 전면 철폐되면 사실상 수입 맥주가 국내 맥주 시장을 지배할 것으로 보인다.

◇발포주가 싼 이유도 세금 차이 때문

올해 4월 하이트진로가 내놓은 발포주 ‘필라이트’는 ‘만원 12개’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국내 맥주시장에서 발포주라는 새 트랜드를 열었다. 발포주는 일반 맥주와 다르다. 하이트, 카스와 같은 일반 맥주는 맥아 비율이 70% 이상이다. 이에 비해 발포주 필라이트는 맥아 비율이 10% 이하다. 세금이 일반 맥주보다 2배가량 낮아 가격이 저렴한 것이 장점이다.

독일과 일본은 맥아가 기준 함량에 못 미치면 발포주 또는 제3의 맥주로 분류해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고 있다

국내 발포주 개념은 일본에서 건너왔다. 맥아 비율이 낮은 발포주는 세율이 낮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한다. 제1발포주는 맥아 비율이 50~65%, 제2발포주 25~50%, 제3발포주는 1~25%다. 우리나라는 발포주의 개념이 없지만 맥아 비율이 10% 이하면 맥주가 아닌 기타주류로 분류한다. 기존 맥주에 적용하는 72%의 주세율이 발포주에는 30%로 낮아진다. 흥미로운 것은 과거 영국에도 발포주와 비슷한 형태로 탄생한 맥주가 있다.

다크에일맥주가 그것이다. 보통 스타우트라고 불리며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아일랜드인들이 영국에 주류세를 내지 않기 위해 낮의 햇빛 대신 밤 중에 훈제로 보리를 말려 담가 먹던 맥주다. 주세를 피하려다 탄생한 맥주다. 지금은 맥주랑 같은 세율을 적용받는다.

[자료=우리금융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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