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파리’ 양익준 감독 “내 안의 분노와 아픔 살풀이 한번 제대로 했다”

경향닷컴 기자I 2009.04.10 13:10:00
[경향닷컴 제공] 저예산 독립영화 <똥파리>는 시쳇말로 ‘갑툭튀’다. 영화사에 등장한 많은 뛰어난 신인의 작품이 그랬듯, 이 영화는 ‘족보’가 없고 제작진의 면면도 낯설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처음 만난 관객의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친다. ‘갑툭튀’란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는 뜻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여 ‘물건’이라는 평가를 받은 <똥파리>는 이후 로테르담, 도빌 등 세계의 중소규모 영화제를 돌며 각종 트로피를 수집하는 중이다. <똥파리>는 독립 장편극영화로는 역대 최대인 50개 이상 스크린에서 16일 개봉한다.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소문난 독립영화라 하더라도 10~20개 스크린에서 상영을 시작하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이 <똥파리>를 대담하게 만들었나.
 

◇폭력과 욕설의 가족드라마=상훈은 때론 용역 깡패로 활동하고, 주로 사채를 받으러 다니는 밑바닥 인생이다. 내뱉는 문장의 90%에는 욕설이 섞여 있다. 상훈은 동네 골목길을 지나다 여고생 연희와 시비가 붙고 얼떨결에 그녀에게 주먹을 휘두른다. 이 일을 계기로 연희와 상훈은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데이트같지 않은 데이트도 한다. 하지만 상훈과 연희의 가정사에는 지나치게 가파른 굴곡이 있었다. 상훈은 존속살인을 저지른 뒤 15년의 죗값을 치르고 출소한 아버지를 틈나는 대로 구타하고, 연희는 정신이 이상한 아버지, 폭력적인 남동생 사이에서 고통을 겪는다.

<똥파리>는 최근 한국영화계가 내놓은 적이 드문 가족극이다. 영화 주요 소비층인 10~20대 관객을 노리기 위해 한국영화는 가족이라는 배경을 외면한 채 연인 혹은 개인의 삶을 소묘하는데 집중했다. <똥파리>는 상훈, 연희의 가정 환경을 조금씩 드러내면서, 이들이 가족과 맺은 뒤틀린 관계의 근원을 탐색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족은 텔레비전 프로 <긴급출동 SOS 24>에 어울릴 법한 삶의 양식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폭력은 아들의 내면에 대물림됐다. 아들은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또다시 다른 이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연희는 상훈에게 “사람을 그렇게 패놓고 잠이 오냐”고 하지만, 이 짐승 같은 사내에게 폭력은 공기처럼 자연스럽다. 상훈은 말한다. “이 나라 애비는 X같애.”

남이라면 무시하면 그만인 것을, 밉다 밉다 하면서도 끝내 얼굴을 맞대는 것이 한국의 가족이다. 영화 포스터의 카피대로 ‘더럽게 아픈’ 핏줄을 이들은 끝내 부정하지 못한다. 애정과 증오는 동전의 양면이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지만, 끝내 자신의 피를 수혈해서라도 목숨을 살려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버지다.

주인공들은 두 가지 심리 상태를 드러낸다. 제대로 체험하지 못한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갈증, 고래심줄보다 질긴 핏줄에 대한 공포. ‘못난 아버지도 아버지’라는 점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똥파리>는 보기보다 과격한 영화가 아니다.

◇삶의 반영으로서의 영화=일부 평자는 <똥파리>에서 류승완 감독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연상하기도 한다. 두 작품 모두 욕설, 폭력으로 범벅이 된 밑바닥의 삶을 스크린에 생생히 구현해냈으며, 신인 감독이 주연, 각본까지 겸했다. 감독에게 제도권 영화 학교에서의 연출 수업 경력이 없다는 점도 같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은 국내외 액션영화에 심취한 ‘시네마 키드’였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아라한 장풍대작전>, <짝패> 등의 작품에서는 과거의 액션영화에 대한 경의와 인용이 드러난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류승완은 ‘영화 속에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반면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34)은 앞선 영화를 참고하지 않는다. 양익준은 “<똥파리>는 관객을 위해서 만든 영화가 아니다. 이건 온전히 나를 위해 만든 영화다”라고 말했다.

그는 <똥파리>를 “내 가슴 속에 응어리진 분노와 아픔을 영화를 통해 사그라지게 만들고 싶은 욕심에서 시작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이 영화를 찍는 건 나에게 하나의 살풀이와 같은 의식이었다”고 덧붙였다. 양익준은 ‘삶 속에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똥파리>는 실제 삶에서 우러나오지 않았으면 만날 수 없는 생생한 표현들로 넘쳐난다. 같은 욕설 대사라 하더라도 영화를 위해 양식화된 욕설이 아니라, 실제 동네 ‘양아치’가 내뱉을 법한 생생한 느낌이다.

양익준은 막노동판, 가전제품 외판원 등을 전전하다가 40여편의 장·단편 영화에 배우로 출연하며 현장에서 영화를 배웠다. CJ CGV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을 받고, 가족과 친구에게 돈을 빌리고, 전세금까지 담보로 잡힌 뒤 첫 장편 <똥파리>를 만들었다.

양익준은 로테르담 영화제 수상 이후 상업영화 연출을 제의받았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아직 <똥파리>를 다 비우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차기작이다. 개인의 체험에만 근거한 이야기는 조만간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양익준의 <똥파리>가 ‘예외적 수작’이 될지, ‘장대한 경력의 시작’이 될지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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