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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테슬라’ 꿈꿨지만…美전기차 스타트업 피스커, 파산보호 신청

방성훈 기자I 2024.06.19 10:16:35

美델라웨어 법원에 '챕터11' 파산보호 신청
업황 악화로 자금난 시달려…'자산매각이 최선' 결론
로즈타운 모터스·어라이벌 이어 또다른 파산 사례
“생산 차량 다 팔지도 못해…다른 업체들도 같은 처지"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한때 ‘제2의 테슬라’로 불렸던 미국 전기자동차 스타트업 피스커가 결국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가격인하 경쟁 심화, 수요 위축 등 전기차 업계 성장 둔화 등으로 경영환경이 악화한 탓이다. 전기 픽업트럽 제조업체 로즈타운 모터스, 전기버스 제조업체 어라이벌에 이어 또다른 전기차 스타트업의 파산보호 신청이어서 주목된다.

피스커가 지난해 출시한 첫 번째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오션’의 모습. (사진=AFP)


업황 악화로 자금난 시달려…‘자산매각이 최선’ 결론

1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CNN비즈니스 등에 따르면 피스커는 이날 성명을 내고 델라웨어 법원에 파산법 11조(챕터 11)에 따른 파산보호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첫 번째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오션’을 출시한 지 불과 1년 만이다. 2016년 10월 회사 설립 이후로는 약 8년 만이다.

피스커는 “전기차 업계의 다른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효율적 운영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시장 및 거시경제적 역풍에 직면했다”며 “모든 옵션을 평가한 결과 챕터11에 따라 자산 매각을 진행하는 것이 회사를 위한 가장 실행가능한 경로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피스커는 덴마크 출신 자동차 디자이너 헨리크 피스커가 설립한 전기차 스타트업이다. 지난해 첫 전기 SUV 모델 오션을 선보였고, 내년엔 좀 더 저렴한 크로스오버 모델 ‘피어’를 출시할 계획이었다. 피스커는 BMW Z8 스포츠카 개발을 주도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업황 악화로 자금난에 시달리는 가운데 투자자를 찾지 못한 것이 피스커가 파산보호 신청에 이르게 된 결정적 원인이다. ‘살 사람은 다 샀다’는 인식과 함께 전기차 수요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테슬라와 중국의 전기차 제조업체들은 물론 기존 내연차 제조업체들까지 가격인하 경쟁에 뛰어들었다. ‘가격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기대로 수요 위축 및 가격 하락이 가속화했다. 결국 업계 전반의 수익성이 하락해 전기차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크게 줄었다.

투자자들은 자금 투입을 미루거나 아예 중단했고 피스커 역시 자금난에 시달리게 됐다. 피스커는 지난 2월 실적발표 당시 “앞으로 1년 동안 버틸 만큼 자금이 충분하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피스커는 모 대형 자동차 제조업체와 투자협상을 진행해 왔으나 지난 3월 협상이 결렬됐다.

소식이 전해진 뒤 피스커의 주가가 급락했고 상장요건 미충족으로 같은 달 뉴욕증시에서 상장폐지됐다. 6주 동안 오션 생산도 중단됐다. 아울러 피스커는 규제 당국에 재무 결과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마감일을 놓치기도 했는데, 이는 재무 및 회계 전문가가 부족했음을 방증한다고 WSJ은 짚었다.

“생산 차량 다 팔지도 못해…다른 업체들도 같은 처지”

애플이 약 10년 동안 지속해온 전기차 프로젝트를 포기한 데 이어 이번 피스커의 파산보호 신청은 업계가 얼마나 나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피스커를 비롯한 신생 전기차 기업들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당수가 증시에 화려하게 데뷔하며 투자자들로부터 수십억달러를 모금했다. 이후 신규 모델 개발, 공장 및 판매 센터 설립 등에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며 보유 현금을 소진했지만, 경쟁 심화에 따른 차량 가격 인하 및 판매 부진 등으로 대다수가 손실을 입었다.

피스커는 사업 초기 확보한 10억달러를 거의다 소진했고, 상장폐지 후 전환사채 계약 불이행으로 보유 현금보다 많은 1억 8000만달러를 상환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법원 제출 서류에 따르면 피스커의 추정 자산은 5억~10억달러, 추정 부채는 1억~5억달러, 채권자는 200~999명으로 각각 보고됐다.

피스커는 첫 차량인 오션을 1만대 이상 생산했으나 지난해 판매량은 절반 미만인 4900대에 불과했으며, 올해 들어서도 4월 중순까지 총 6400대를 인도하는 데 그쳤다. 다른 전기차와 차별화하기 위해 사용한 소프트웨어가 브레이크 제동 성능을 저하한다며 많은 고객 및 평론가로부터 비난을 받은 탓이다.

WSJ은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을 뒤집을 것으로 전망되며 한때 높이 날아올랐던 피스커는 직접 판매에서 대리점 이용으로 사업 모델을 전환하지도 못했고 수천대의 재고를 남긴 채 파산보호를 신청하게 됐다”며 “과거 테슬라의 성공을 모방하려는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어떤 장애에 직면했는지 엿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회사 설립자인 피스커는 과거에도 파산보호를 신청한 전력이 있다. 그의 첫 회사인 피스커 오토모티브는 10만달러짜리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스포츠카 ‘카르마’를 출시했지만, 배터리 공급업체와의 문제, 허리케인으로 인한 300대 이상의 차량 침수 등으로 2013년 챕터11에 따른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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