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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까지 등장…`센 언어`에 중독된 국회[국회기자24시]

김유성 기자I 2024.09.07 12:00:00

言으로 싸우는 정치인들 그 수위가 계속 높아져
실체없이 자극만 주고받는 말싸움 수준으로
불문율 사라져가는 국회의 한 모습 같아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정치인들의 말이 세어지고 있습니다. 말과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하고 싸워야 하는 이들이 국회의원들이라고 하지만 정도가 심해지는 분위기입니다. 덩달아 국무위원들의 말도 강해졌습니다.

국회 전경(사진=연합뉴스)
불문율이라고 할까요? 세고 거칠다고 해도 현 우리 국가 체계를 부정하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상대를 비하할 지언정 우리 국민들이 이룩해온 민주화와 산업화의 성과를 폄훼하지는 않았던 것이죠.

아, 예외가 있긴 하군요. 윤석열 대통령의 ‘반국가단체’입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윤 대통령이 ‘반국가단체’라는 것을 운운했는데, 야당에서는 “우리 말하는 거냐” 발끈한 적이 있습니다.

야당이 지적한대로 ‘대통령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반국가단체로 분류했다면 심각할 수 있습니다. 엄연한 한국의 다수 정당인데, 그 정당이 반국가적인 일을 획책하고 있다는 뜻이 되니까요. 예전 해산된 통합진보당을 10년이나 지난 요즘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물론 대통령실은 ‘종북단체’ 등을 일컫는다고 했습니다. 야당을 직격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 일부를 지칭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센 단어를 말하는 것은 야당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속성 상 야당은 정부·여당을 상대해 싸울 수밖에 없고, 여당처럼 국정을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죠. 여과없는 발언이 나오기도 합니다. 대통령에 대한 조롱 발언도 심심치않게 나옵니다. 지금 조국혁신당이나 개혁신당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지난 21대 국회 정의당이 그랬습니다.

다만 ‘센 발언’이라고 해도 적정한 수위와 풍자, 위트를 더하면 국민들의 호감을 살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소수야당 정치인이 고(故) 노회찬 전 의원입니다. 그의 어록과 연설문이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게다가 노 전 의원은 말 뿐이 아니라 실제 강자(삼성)에 대한 용기를 결연하게 보여준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야당의 발언은 강하기만 할 뿐 실체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지금 더불어민주야당은 소수야당이 아닙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면서도 그가 제기한 ‘반국가단체’ 류의 언변을 따라하고 있는 것이죠. ‘싸우면서 닮는다’라는 말이 맞는 것일까요. 바로 ‘계엄’이라는 단어입니다.

지난달 대통령과 영부인을 일컬어 ‘살인자’라고 했던 모 정치인의 발언은 ‘헤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습니다. 국가원수와 그 부인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이란 점에서 대통령실과 여당이 발끈했지만 ‘정제되지 않은 정치인의 언어’로 해석될 수 있었습니다. 그 발언에 대한 여과와 책임은 해당 정치인이 책임져야죠.

반면 ‘계엄’은 여러모로 무시무시합니다. 실체가 없는 의혹 제기라면 지난 40여년에 걸쳐 만들어 온 대한민국의 민주화·산업화 성과를 무시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빈 말도 정도가 있는 것이죠.) 전쟁이나 내란 같은 국가 비상사태 때 나올 수 있는 게 계엄입니다. 현재 우리나라가 그 정도로 비상사태는 아니죠.

혹여 현 정부와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혹은 과거 군부독재정권과 동일시하기 위해 계엄이란 엄혹한 단어를 쓴 것은 아닐까요? 공개적인 회담 자리에서 당대표가 언급하고 이후에도 계속 반복적으로 이 단어를 쓰는 것은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실제로 이 단어를 써야 할 만큼 우리나라가 망가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겠죠.

국회는 여야가 (말로) 싸우라고 마련된 ‘링’ 혹은 ‘그라운드’ 같은 곳이지만, 이렇게까지 싸우라고 마련된 곳은 아닐 것입니다. 활자로 표현된 헌법과 국회법만 지킨다고 해서 원활하게 운영되는 것도 아닙니다. 게임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는 ‘불문율’도 필요한 것이죠. 이 불문율이 국회라는 그라운드에서 갈수록 흐릿해져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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