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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산 수입 늘어도 휘발유값 안 내려가는 이유

최훈길 기자I 2016.03.06 14:27:24

한-이란, 이란산 원유도입 연내 2배로 확대
중동산보다 싸 원가인하.."정유사 이익 늘어"
세금 60%, 마진 20% 구조여서 소비자 혜택 없어
전문가 "정유4사 과점 상태라 마진율 인하, 가격경쟁 없어"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정부가 중동산(産)보다 저렴한 이란산 원유 수입량을 늘리기로 했지만 소비자에게 돌아갈 혜택은 사실상 없을 전망이다. 수입 단가 인하로 정유사 이익은 늘어나고 유류세는 변동이 없는 기이한 가격구조에 가격경쟁조차 실종된 시장현실 때문이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11차 한·이란 경제공동위원회 등에서 이란 정부 장관들과 만나 이란산 원유의 국내 수입량을 연내에 두 배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란석유공사와 SK에너지(096770), 현대오일뱅크 등은 원유 교역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결제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란산 원유 도입으로 정유사들의 원가 절감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한다. 산업부 석유산업과 관계자는 “원유 도입국 다변화로 정유사들이 협상력을 가지고 구매가격을 낮출 수 있다”며 “카타르산에만 의존하지 않고 콘덴세이트(초경질유)를 이란에서 수입해 오면 상당한 원가 인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진 늘면서 정유4사 영업이익 4조 초과

한국석유공사(1월 기준)에 따르면 실제로 이란 원유(33.5달러)가 쿠웨이트·카타르 원유(39.7달러)보다 배럴당 6달러 가량 싸다. 이란산 원유 도입량(작년 4240만 배럴)이 두 배로 늘어나면 환율 변동 등을 감안하더라도 연간 수천억원의 단가인하 효과가 가능하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이란산 도입으로 정유사들의 실적이 평균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며 영업이익 상승을 전망했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096770)·GS칼텍스·S-OIL(010950)·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의 총 영업이익은 4조7926억원에 달했다. 저유가 상황에서 정제마진이 늘면서 영업이익이 모두 흑자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비자 가격 인하 효과는 거의 없을 전망이다. 현 가격 구조상 원유 도입가가 소비자 판매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고 각종 마진, 세금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휘발유값(작년 12월 1411.7원, ℓ 기준)를 분석한 결과 원유도입가는 238.3원(16.9%)에 불과했다. 교통·주행·교육·부가가치·수입세가 892.6원(63.2%), 정제비·유통 마진이 280.8원(19.9%)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배럴당 국제유가가 107.9달러를 기록한 재작년 6월과 비교해 작년 12월 유가는 70% 떨어졌지만 소비자 가격은 24.1%(ℓ 기준) 하락하는데 그쳤다. 이는 유류세 변동이 없었고 정제비 마진이 27.2%, 유통마진이 6.6% 각각 상승한 탓이다.

◇휘발유값 63.2% 세금, 19.9% 마진

더군다나 정유사들은 현행 마진율을 낮추는데 부정적이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이란산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될지 예측할 수 없고 국제시장에 의해 유가가 결정되기 때문에 현재도 마진을 많이 남기기 힘든 상황”이라며 “이란산을 도입하더라도 소비자 가격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영 중앙대 교수(전 지식경제부 에너지정책 전문위원)는 “휘발유값 인하가 어려운 데는 세금, 국제유가 요인 외에도 치열한 경쟁이 없는 시장 문제도 원인”이라며 “이란산을 수입한 정유사가 마진을 낮춰 타사와 가격경쟁을 할 수는 있겠지만 현행 정유4사의 과점 구조에서는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일”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국내 이란산 원유 수입량은 4240만 배럴로 경제제재 이전보다 반토막 수준이었다. 중동산보다 저렴한 이란산 수입량이 연내 두배로 늘 경우 정유사들이 연간 수천억원의 이익을 남길 전망이다. (출처=한국석유공사, 단위=천 배럴)
재작년 6월과 작년 12월 휘발유값을 비교한 결과 국제유가가 70% 떨어져도 소비자 판매가는 24.1%만 하락했다. 이는 소비자 판매가에 원유도입가 비중이 16.9%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세금과 마진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출처=국회예산정책처)
휘발유 등 석유제품의 소비자 가격이 결정되는데 국제유가, 정부의 조세정책, 정유사 마진율 등이 영향을 끼친다. (출처=국회예산정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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