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록 기자의 이런 여행] 군사분계선과 800m 떨어진 '태풍전망대' 엄격한 통제 속 마주한 북녘땅 가을빛 붉게 물든 '임진강 댑싸리정원' 버려진 수몰지서 지역 대표 힐링명소로 1500년 전 고구려 '호로고루' 성벽 걷고 고개 숙인 '그리팅맨'과 평화의 인사
[연천(경기)=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먼저 산부터 한번 보세요.”
경기도 연천 ‘태풍전망대’.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최전방 전망대에서 만난 해설사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눈앞에는 높이가 고만고만한 산들이 겹겹이 이어졌다. 200~300m 높이의 봉우리들이 북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고 그 사이를 임진강이 굽이쳐 흐른다. 경기 북부 어디에서나 만날 법한 풍경. 그런데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나니 평범했던 산들이 달리 보였다.
연천 임진강 댑싸리정원 입구에 설치된 나무 조형물이 가을 햇살을 받아 바닥에 입체적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태풍전망대로 오르는 경사로 바닥에 찍힌 안내 표시. 팽팽한 긴장감과 평화에 대한 염원이 교차하는 최전방의 분위기를 보여준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어디까지가 남쪽인지, 어디부터 북쪽인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산 사이로 길게 이어진 철책이 바로 그 경계였다. 군사분계선까지 가장 가까운 거리는 불과 800m. 평지라면 십수 분이면 걸어서 닿을 거리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짧은 거리를 건널 수 없었다. 가까운 땅이 이렇게 멀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었다. 연천을 여행하는 일은 이처럼 안보와 분단의 현실을 체감하는 일이다.
군사분계선과 불과 8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태풍전망대 건물 정면. 옥상에는 태극기와 유엔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으며, 건물 중앙 상단에는 이곳을 관할하는 육군 25사단 부대 마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분단의 선에 그어진 또다른 마음의 장벽
태풍전망대에 가려면 일단 시간을 맞춰야 한다. 연천군 중면의 출입안내소에서 신분을 확인받고 정해진 시각에 안내차량을 따라 이동해야 한다. 출입은 하루 네 차례. 한 번에 차량 10대와 최대 80명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들어갈 수 있다. 도보나 자전거로는 출입할 수 없고 군부대 사정에 따라 갑자기 통제되기도 한다.
전망대에선 사진 촬영이 제한된다. 어디서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안내받아야 하고 정해진 동선을 벗어나서도 안 된다. 입장권을 끊고 마음껏 돌아다니는 일반 관광지와는 사뭇 다르다. 탁 트인 시야 덕분에 비무장지대를 내려다보는 풍광만큼은 연천의 어디보다 빼어나지만, 정작 엄격한 출입 제한 때문에 인원에 들지 못하면 발길을 돌려야 한다. 관광지이기에 앞서 삼엄한 군사시설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현장이다.
6·25 전쟁 당시 어린 나이에 전장에 투입되었던 용사들의 헌신을 기리는 '소년전차병 기념비'. 전차 모형 아래로 이들의 연혁과 넋을 기리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전망대로 들어서자 해설사는 먼저 산의 생김새를 설명했다. 북한이 어디인지부터 찾지 말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산을 충분히 둘러본 뒤에야 군사분계선 이야기가 나왔다.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어디까지가 남쪽이고 어디부터 북쪽인지, 군사분계선과 남방한계선은 어떻게 다른지 설명이 이어졌다. 태풍전망대라는 이름은 과거 이곳을 관할했던 육군 28사단의 별칭인 ‘태풍부대’에서 따왔다. 부대 개편 이후에는 인접 부대들이 경계 임무를 나누어 맡고 있다.
[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태풍전망대 내 평화공원에 늘어선 각종 참전기념비. 'UN 태국군 참전 충혼비'와 '소년 전차병 기념비' 등이 전쟁의 아픈 역사와 넋을 기리고 있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해설사는 현재 이 일대를 지키는 육군 25사단을 설명하다가 얼마 전 발생한 지뢰 사고를 언급했다. 사고는 태풍전망대가 아닌 다른 작전 구역에서 발생했다. 군 당국은 유엔군사령부와 공동조사를 벌인 뒤 북한군이 군사분계선 남쪽에 매설한 수지반보병지뢰가 폭발한 것으로 최종 판단했다.
그래서인지 이곳 분위기는 더 긴장감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산들은 고요했다. 나무가 자라고 골짜기가 이어지는 여느 산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그 산 어디선가 군인들이 밤낮으로 경계하고, 지뢰를 찾아가며 수색 작전을 벌인다. 여행객이 잠시 바라보고 돌아갈 풍경 뒤에서 누군가는 매일 목숨을 걸고 자리를 지키는 셈이다.
[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연천 임진강 댑싸리정원 입구에 설치된 나무 조형물이 가을 햇살을 받아 바닥에 입체적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최근 북한은 남쪽과의 경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남북을 연결하던 도로와 철도를 끊고 군사분계선 일대에 새로운 방어시설을 설치하고 있다. 북한이 남쪽을 적대적인 별개의 국가로 규정하면서 물리적인 단절도 깊어졌다.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은 전쟁을 완전히 끝내는 평화협정이 아니었다. 전투를 잠시 멈추기로 한 약속이었다.
7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날 그어진 군사분계선은 변함없이 남과 북을 갈라놓고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오기 전 북녘의 산을 다시 바라봤다. 우리 곁에서 늘 보던 산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 산을 눈앞에 두고도 건너갈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에 묵직하게 남았다.
연천 임진강 댑싸리정원 입구에 설치된 나무 조형물이 가을 햇살을 받아 바닥에 입체적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태풍전망대에서 4㎞ 남짓 내려오면 분위기는 전혀 다르게 바뀐다. 임진강변 삼곶리에 자리한 ‘임진강 댑싸리정원’이다. 엄격한 출입 절차와 삼엄한 통제 속에서 벗어나 불과 5분여 만에 화사한 늦가을 풍경 속으로 들어선다.
이 정원에도 사연이 있다. 군남홍수조절댐 건설 이후 생태계 교란 식물이 우거지던 버려진 수몰지를 가꾼 이들은 다름 아닌 중면 주민들이었다. 잡풀을 걷어내고 댑싸리와 꽃을 심어 지역을 대표하는 가을 명소로 일구어냈다.
가을 햇볕을 받아 붉게 물든 댑싸리 사이를 걷는 데는 신분 확인도, 정해진 동선도 필요 없다. 조금 전 태풍전망대에서 거쳐야 했던 답답한 출입 절차는 금세 까마득해진다. 마음에 드는 풍경 앞에서 마음껏 걸음을 멈춰서도 좋을 만큼, 이곳은 지극히 평화롭고 자유롭다.
굽이쳐 흐르는 임진강과 천연의 성벽 역할을 하는 현무암 절벽 위로 펼쳐진 삼국시대 고구려의 강안 성곽 '호로고루' 전경.(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1500년 전 경계의 성벽… 북녘을 바라보다
임진강에는 이 땅의 역사를 간직한 장소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장남면 원당리의 ‘호로고루’는 삼국시대 고구려가 임진강 북쪽 현무암 대지 위에 쌓은 성이다. 성터에 발을 들이면 넓은 풀밭 끝으로 묵직하게 솟아난 성벽이 눈에 들어온다. 서쪽으로는 임진강이 흐르고 강변을 따라 현무암 절벽이 이어진다. 남쪽과 북쪽은 강변 절벽을 천연의 성벽으로 삼고, 육지와 맞닿은 동쪽에만 인공 성벽을 쌓아 올렸다.
연천 호로고루 동쪽 성벽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높게 솟아오른 토축 성벽은 과거 삼국의 치열했던 요새이자 현재는 관람객들의 조망 명소로 활용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고구려가 이곳에 성을 구축한 까닭은 호로고루 아래쪽 임진강에 여울목이 있었기 때문. 수심이 얕아 배가 없어도 강을 건너올 수 있어서다. 대규모 군대가 이동할 때 여울목 확보는 승패를 가르는 관건이었고, 고구려는 이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호로고루를 세웠다. 당시 임진강은 치열한 국경선이었다. 연천에는 호로고루 외에도 당포성과 은대리성이 함께 남아 있는데 모두 강변 지형을 활용해 건너기 쉬운 길목을 감시하던 고구려의 강안 성곽들이다.
호로고루 성벽에 앉아 가만히 임진강을 내려다본다. 성 안에는 잡풀만이 무성하다. 적의 동태를 살피며 긴장을 놓지 못했던 자리가 이제는 한가로이 임진강 풍경을 감상하는 명소가 됐다. 1500년 전 고구려가 목숨 걸고 수호하려 했던 요새는 이제 누구든 편히 올라 바람을 맞이하는 역사 유적이다.
경기 연천군 옥녀봉 정상(해발 205m)에 세워진 높이 10m의 조각상 '그리팅맨(Greeting Man)'. 평화와 화해의 염원을 담아 군사분계선 너머 북녘 땅을 향해 인사를 건네고 있다.
여행의 마침표는 ‘옥녀봉’에서 찍었다. 해발 205m 옥녀봉 정상에는 높이 10m의 거대한 조각상이 서 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두 팔을 내린 채 허리를 살짝 숙인 남자의 형상이다. 조각가 유영호의 작품 ‘그리팅맨’(Greeting Man)이다.
그리팅맨이 시선을 두고 있는 곳은 북쪽이다. 군사분계선 너머 북녘 땅을 향해 허리와 고개를 15도 숙여 인사를 건넨다.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갖추면서도 스스로의 존엄을 잃지 않는 각도로 15도를 선택했다. 맨몸의 거인에게는 신분이나 이념 같은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사람’이라는 본질만 남는다. 이 그리팅맨은 2016년 4월 이곳에 들어섰다. 북녘 땅과의 거리는 불과 4㎞ 남짓이다. 작가는 남쪽 연천 옥녀봉과 북쪽 장풍군 마량산에 각각 조각상을 세워 마주 보게 하려 했으나, 남쪽의 거인만 제자리를 찾았을 뿐이다.
어느덧 해가 서쪽 산등성이 너머로 기울었다. 저녁빛이 그리팅맨의 옥빛 몸체에 내려앉았다. 해가 지는 곳은 서쪽이었지만 거인이 바라보는 곳은 북쪽이었다.
그리팅맨이 세워진 뒤 10년 간 남북관계는 여러 차례 달라졌다. 그동안 옥녀봉의 거인은 한 번도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오늘도 이 거인은 두 팔을 가지런히 내린 채 북녘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