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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이데일리와 만난 임형주(사법연수원 35기) 법무법인 율촌 기술수출입통제대응센터 공동 센터장(변호사)은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정작 우리 기업들은 조직 내부의 소통 단절부터 막혀 있다”며 “법이나 행정규칙이 너무 급박하게 바뀌는데 이걸 한 번이라도 캐치업 못하면 그동안 준비했던 게 한 번에 다 날아갈 수가 있다”고 지적했다. 앞선 A기업 사례와 같이 우리 기업들이 마주한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얘기다.
이날 임 변호사와 함께 인터뷰에 응한 손승우 고문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역임하고 지난 6월 율촌에 합류한 문승욱 고문은 “기술통제는 이제 국가 생존 전략의 핵심이 됐다”며 “기업들이 조직 문화를 혁신하고 정부는 킬러기술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율촌 기술수출입통제대응센터는 지난 4월 출범 이후 첨단전략기술·국가핵심기술·전략물자·지식재산 등 기술수출입 전반에 걸친 규제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와 실무 지원을 지속하고 있다. 센터는 최근 4차산업혁명융합법학회,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과 공동으로 글로벌 기술전쟁 동향과 기업의 실무적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율촌 기술수출입통제대응센터 손승우 고문, 임형주 변호사, 문승욱 고문과의 일문일답
◇글로벌 기술통제 환경 진단
-현재 글로벌 기술통제 환경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나.
△손승우 고문(이하 손): 오늘날의 기술통제는 단순한 ‘수출 제한’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본질을 지키는 전략적 정책 도구로 작동하고 있다. 과거에는 군사 전용이 가능한 기술 중심으로 제한적 통제가 이뤄졌지만 지금은 반도체·인공지능(AI)·양자기술·항공우주 등 첨단산업 전반이 통제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2018년을 기점으로 미국은 ‘대중국 견제’를 명시적 목표로 내세우며, 통상정책과 안보정책을 사실상 하나로 통합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제조 2025’ 전략을 ‘기술 패권 도전’으로 인식했고 이를 견제하기 위해 반도체·5G·AI 핵심 기술의 대중국 수출 제한을 강화했다. 이때부터 수출통제는 단순한 안보조치가 아니라 기술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한 경제전략(Economic Statecraft)으로 변화했다.
-미·중은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나.
△손: 미·중의 경쟁은 이제 무역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주권을 둘러싼 총체적 경쟁이다. 미국은 반도체와 AI, 슈퍼컴퓨팅 분야에서 중국의 부상을 차단하기 위해 ‘FDPR(Foreign Direct Product Rule·해외직접생산품규칙)’을 확대 적용하고 있다. 이 규정은 미국의 기술이나 장비를 사용해 외국에서 생산된 제품이라도 일정 비율 이상 미국 기술이 포함돼 있다면 수출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즉, 미국 기술의 영향권에 들어오는 모든 제품을 통제하겠다는 의미다. 중국은 이에 대응해 올해 ‘핵심기술 수출통제법’을 시행하며 반도체 장비·희토류·AI 알고리즘 등 전략 기술의 해외 이전을 제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기술은 외교와 안보의 경계를 넘는 지정학적 자산이 돼가고 있다.
-다른 주요국들의 대응은 어떤가.
△손: 각국이 자국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를 빠르게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경제안전보장법’을 통해 공급망과 첨단기술의 관리체계를 세분화했고 대만은 올해 4월 개정된 ‘산업혁신조례’에서 최고 사양의 반도체와 같은 국가전략산업의 해외 이전을 원칙적으로 제한했다. 특히 2나노 이하 첨단공정 기술의 해외 이전이나 합작법인 설립 시에는 정부의 사전 심사와 기술보안 승인이 필수화됐다. 이는 사실상 TSMC 등 대만 기업의 기술 자립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려는 조치로 평가된다. 영국은 2023년 ‘국가안보법’에서 산업스파이 행위를 명시적 국가범죄로 규정했다. 외국 정부나 그 대리인을 위해 영업비밀이나 첨단기술 정보를 불법 취득할 경우 최고 종신형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처벌 수위를 대폭 높였다. 기술유출을 단순한 지식재산 침해 문제가 아니라 국가안보 침해 행위로 보는 ‘형사화된 기술보호 체제’로 전환한 것이다.
-기업들에게는 어떤 영향이 있나.
△손: 기업들은 이제 단순한 규제 대응을 넘어 생존을 위한 리스크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반도체, AI, 통신장비 등 글로벌 공급망에 속한 기업들은 FDPR, 재수출 규정(De Minimis Rule)뿐 아니라, CFIUS(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의 심사 대상이 되기도 한다. CFIUS는 외국인 투자가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으면 인수나 투자를 차단할 수 있는 제도로 실제로 중국계 자본이 미국 반도체 기업 인수를 시도하다가 불허된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 결국 기술통제는 법적 의무를 넘어 기업 전략의 일부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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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들이 직면한 가장 큰 리스크는 무엇인가.
△임형주 변호사(이하 임): 기업들을 자문하며 현장에서 체감하는 가장 큰 리스크는 규제의 복잡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높아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수출통제가 특정 품목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따르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미국의 행정부 교체에 따라 규제 기조가 급변하고 ‘50% 지분율 규정’처럼 매우 복잡한 실사를 요구하는 제도가 갑자기 도입되는 등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안개 속 형국이다. 법이나 행정규칙이 너무 급박하게 바뀌고 있는데 이걸 한 번이라도 캐치업 못하면 그동안 준비했던 게 한 번에 다 날아갈 수가 있다.
-미·중 사이에서 우리 기업의 경영 판단도 어려울 것 같다.
△임: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우리 기업들은 ‘고래 싸움에 낀 새우’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미국의 수출통제를 준수하면 거대 시장인 중국 비즈니스에 차질이 생기고, 반대로 중국 시장을 유지하려다가는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최근 중국이 희토류 수출통제를 강화하며 미국의 역외규정을 모방한 조치를 발표하고 미국의 제재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를 제재한 사례는 이러한 딜레마가 더이상 이론이 아닌 현실의 경영 리스크가 됐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기업들의 대응 수준은 어떤가.
△임: 거대한 리스크에 비해 기업들의 대응 수준은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기업 자문을 제공해 보면 몇 가지 공통적인 취약점이 발견된다. 우선 미국 수출통제규정(EAR)의 적용 대상에 대한 오해다. 단순히 한국에서 생산된 제품이라는 이유로 미국 규제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제품에 일정 비율 이상의 미국산 부품이나 소프트웨어 기술이 포함되면 EAR의 적용을 받게 되는데 이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수출을 진행하다가 뒤늦게 문제가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기존 컴플라이언스 시스템도 한계다. 기존 시스템은 거래 상대방의 이름이 제재 명단에 있는지 확인하는 단순 스크리닝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는데 ‘50% 지분율 규정’은 거래 상대방의 지배구조, 즉 숨겨진 주주까지 파악해야 하는 심층 실사를 요구한다. 이러한 복잡한 실사를 수행할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이나 인력을 갖추지 못한 기업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법적 검토 필요성에 대한 인식 부재도 리스크로 꼽힌다. 수출통제 문제를 단순히 통관이나 무역 실무의 일부로 여기고 법무팀이나 외부 로펌의 법적 검토 없이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기술 수출통제는 고도의 법률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임에도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잠재적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
-조직 내부의 소통 문제도 있다고 들었다.
△임: 기업 내부에서 조직 간 소통이 잘 안 되는 문제가 심각하다. 이런 것을 주로 관리하는 부서가 대외투자부나 해외사업부인데 사실은 법적 내용에 대해서 자신들이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 법무팀과의 커넥션이 부족해 보인다. 일반 사업부서를 예로 들면 계약서 검토는 당연히 법무팀에 물어보는데 수출통제는 자신들이 하던 업무니까 법무팀이나 컴플라이언스팀에 물어본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한다. 또 반대로 법무·컴플라이언스부서 입장에서는 수출할 때 먼저 확인해서 알려줄 필요가 있는데 그런 것에 있어서 약간의 미스매치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산업 전체 차원에서 볼 때 리스크의 수준과 복잡성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고 있지만, 기업들의 대응 체계와 인식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적인 격차가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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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가 직면한 위기를 어떻게 보고 있나.
△문승욱 고문(이하 문): 대한민국은 소재-부품·장비-완제품에 이르기까지 균형된 밸류체인을 가지고 세계 6위의 수출규모를 일구어낸 대표적인 제조업 경쟁력 국가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통상환경과 산업트렌드가 급변하면서 이같은 우리의 장점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WTO 통상 협력시대가 자국중심 신보호주의 추세로 급변하면서 무역을 통한 성장 기회가 위축되고 있고 친환경 에너지로의 변화가 급속히 전개되는 등 에너지 환경의 변화가 새로운 도전요인이 되고 있으며 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파괴적 혁신이 본격화되면서 디지털전환 나아가 AI 경쟁력이 제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어떤 해법이 필요한가.
△문: 이러한 도전을 극복하고 제조업의 미래성장 역량을 지속 유지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존과 우위를 지키기 위한 독자적 핵심기술, 즉 킬러기술의 확보라고 생각한다. 우리만의 기술들이 각 산업부문에 응용·확산해 플랫폼화하는데 성공한다면 우리의 산업경쟁력은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은 물론 안보적 관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관점에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AI 기술 확보를 중심으로 이를 위한 반도체, 에너지 부문과 함께 바이오, 방산부문 등에 집중하고 있는 만큼, 우리 또한 민·관이 우리 경제의 모든 역량을 투입해 킬러기술의 확보와 확산에 노력해야겠다. 특히 이를 위한 핵심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에게도 기회가 있을까.
△문: 우리에게 기회요인은 있다. 우리가 확보하고 있는 세계 최상위 수준의 HBM(고대역폭 메모리) 반도체 기술,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기술 등이 관세협상의 최전선에서 우리의 중요한 레버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가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문: 우리의 다양한 산업군과 생산기술, 세계시장 접근성을 바탕으로 AI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우리만의 킬러기술을 기업들이 키워나갈 수 있도록 정부는 더 적극적인 연구개발(R&D) 지원과 규제 완화 등 제도개선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또 자원과 시장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과의 안정적 협력체계가 지속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주도적 통상환경을 확보하고 무엇보다 킬러기술 개발을 주도할 AI 인력, 기술인력의 양성과 확보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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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통제 환경이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나.
△손: 앞으로는 미국 중심의 단독 통제체제가 아니라 ‘소다자형 협력체제(Mini-lateralism)’로 발전할 것이다. ‘칩4(Chip 4)’, ‘AI 얼라이언스(AI Alliance)’ 같은 기술동맹이 확대되면서 통제가 점차 표준화되고 나아가 디지털 통상규범(Digital Trade Rule)으로 제도화될 가능성도 높다. 다만 이런 흐름과 동시에 각국이 자국 기술과 공급망을 보호하려는 ‘각자도생’ 움직임도 병존하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의 전략적 통제를 강화하고 일본·대만은 자국 내 첨단공정 유치를 통해 기술 자립을 강화하고 있다. 결국 국제협력과 자국중심 전략이 공존하는 이 복합적 환경 속에서 한국은 기술개발과 산업정책, 안보전략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균형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기업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임: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조직 문화의 혁신이다. 일반 사업부가 계약서 검토를 당연히 법무팀에 의뢰하듯이 수출통제도 반드시 법무팀이나 컴플라이언스팀의 법적 검토를 거쳐야 한다. 대외투자부나 해외사업부와 법무팀·컴플라이언스팀 간의 정기 협의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컴플라이언스 시스템도 고도화해야 한다. 단순히 거래처 이름이 제재 명단에 있는지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 ‘50% 지분율 규정’에 대응할 수 있도록 거래 상대방의 지배구조와 숨겨진 주주까지 파악하는 심층 실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미국산 부품·소프트웨어·기술의 비율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에서 만들었으니 미국 규제와 무관하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제품에 일정 비율 이상 미국 기술이 포함되면 EAR 적용 대상이 된다.
△손: 기업들은 이제 기술통제를 단순한 법적 의무가 아니라 기업 전략의 일부로 인식해야 한다. FDPR, 재수출 규정, CFIUS 심사까지 고려한 사업 계획을 수립해야 하고 이는 곧 생존을 위한 리스크 관리 체계다. 특히 반도체, AI, 통신장비 등 글로벌 공급망에 속한 기업들은 더욱 면밀한 대응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손: 기술통제는 이제 기업 전략의 일부다. 단순한 규제 대응을 넘어 생존을 위한 리스크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임: 조직 간 벽부터 허물어야 한다. 법무팀과 해외사업부 사이의 미스매치를 해결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문: 킬러기술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시대다. 민·관이 모든 역량을 투입해 독자적 핵심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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