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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민정 기자] 이달 2차 입찰 마감을 앞둔 도시바 반도체 사업 부문 매각이 극도로 꼬이고 있다. 도시바는 올 중순 반도체사업 인수대상자를 정해 내년 3월까지는 거래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도시바와 채권자들, 일본 정부의 이해 관계가 엇갈리면서 도시바가 원하는 만큼 제 값을 받지 못하고 결국 반도체 사업을 팔아야 하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파이낸셜타임스(FT)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5월, 2차 입찰 마감..1차 입찰에는 10여곳이 관심
도시바 반도체 사업은 연구원 후지오 마수오카가 지난 1987년 낸드 플래시 메모리를 개발한 것이 시발점이다. 그 때만해도 도시바 측은 낸드플래시의 시장 잠재성 등에 시큰둥 했었다. 얼마지 않아 370억달러에 달하는 스마트폰 노트북 등 전기전자 제품 데이터저장기술 시장의 핵심 기술이 될 것이라는 것을 당시는 예상하지 못했다. 도시바는 세계 2위 낸드칩 제조업체로 올라섰다.
마수오카가 개발한 메모리칩은 30년이 지난 지금 141년 역사의 도시바의 사상 최악의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핵심이 됐다. 도시바는 반도체사업 부문을 팔아 미국 원자력발전 프로젝트 실패로 인한 지금난 극복을 꾀하고 있다. 도시바는 작년 1조엔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사상 최악의 실적이다. 도시바는 반도체사업을 시장에 내 놓으면서 2조엔 이하로는 팔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현재 반도체업체, 기술기업, 사모펀드 등 적어도 일본 국내외 기업 10곳이 도시바 반도체 사업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3월 마감된 1차 입찰에는 미국 사모펀드 실버 레이크와 손잡은 반도체업체 보로드컴, 한국 SK하이닉스 등이 참여했다. 미국 반도체 업체 웨스턴디지털은 사모펀드 KKR과 일본 정부 펀드인 이노베이션네트워크와 손잡고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대만의 폭스콘은 3조엔까지 지불한 의사가 있다고 밝힌 상태고 현재 미국 애플과 일본 소프트뱅크와 손잡고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도시바, 채권자, 정부 목표 달라
FT는 처음에는 인수가 어렵지 않게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했던 잠재적인 인수자들이 반도체 사업 인수가 극도로 복잡하다고 여기기 시작했으며 상당한 지연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일본 정부가 아시아 기업들에게 도시바 낸드사업을 팔기를 꺼려하면서 도시바가 자금난을 해결할 만큼 의도했던 높은 가격을 받고 낸드사업을 팔수 없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유키오 사카모토 엘피다 메모리 전 최고경영자(CEO)는 “도시바의 목적과 채권자들, 정부의 목적이 일치하지 않는다”며 “도시바가 매각을 통해 얻고자하는 것에 대해 정확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으면 매각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문은 한때 일본 일류 기업이었던 도시바 반도체 사업 매각에 대해 일본 정부와 산업계는 물론, 국민들도 심하게 동요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매각 건을 두고 일본 정부의 간섭이 심해지고 있다는 불만도 입찰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기업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 이번 매각 건에 정통한 한 인물은 “일본 경제산업무역성 관리들은 도시바 매각에 관여하고 싶어하지는 않지만 매각이 잘못됐을 경우 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만족스러운 매각 결과를 내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보수적이기 때문에 미국 사모펀드를 끼더라도 만약 일본 기업이 인수하려고 하면, 그들로서는 안전한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형 은행 등이 포함된 도시바 채권자들은 그들이 도시바에 빌려준 자금을 안전하게 되돌려받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비싼 가격에 낸드사업이 팔리기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널리스트들은 폭스콘이 1차 입찰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했지만 폭스콘의 주요 제조공장 등이 있는 중국으로의 반도체 기술 유출을 우려한 일본 정부의 반대로 최종 인수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하고 있다. 도시바 경영진들도 반도체 기술과 일자리 유지 등이 인수자를 선정하는 핵심 조건 가운데 하나라고 종종 언급해왔다.
궈타이밍 폭스콘 회장과 친분이 있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폭스콘의 낸드사업 인수에 힘을 보태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폭스콘의 낸드사업 인수에 소프트뱅크 등이 조성한 1000억달러 기술펀드를 이용할 수있게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폭스콘은 일본 기업인 소프트뱅크를 끼면 일본 정부와 민심을 달랠 수 있는 효과도 낼 수 있다.
◇폭스콘이냐 브로드컴이냐..또다른 유력 인수자 등장?
현재로서는 싱가포르 반도체업체 아바고가 소유한 브로드컴이 유력 인수 대상자로 꼽히고 있다. 브로드컴은 일본 대형 대출 기관 2곳에서 자금 조달 등을 완료했다. 다만 브로드컴이 미국 사모펀드 실버 레이크와 컨소시엄으로 인수에 뛰어들면서 결국 낸드사업을 인수 한뒤 아시아 기업에 팔아버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 인수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낸드사업 매각에 정통한 인물에 따르면 일본 정부 펀드인 이노베이션 네트워크와 일본산업은행이 미국인 웨스턴 디지털과 손잡고 2차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의 갈등으로 실제 입찰 참여와 인수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도시바는 이미 웨스턴 디지털과 반도체 사업 등에서 협력하고 있다. 웨스턴디지털은 도시바가 웨스턴디지털과의 합작 사업관 관련한 권리들을 반도체 사업 부문에 넘기면서 합작사업 관련 조항을 어겼으며, 낸드사업 매각에 웨스턴디지털의 승인을 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도시바 측은 낸드사업에 웨스턴디지털의 승인은 필요없다고 반박하며 웨스턴디지털이 반도체 사업 부분 매각과 관련해 계속해서 방해한다면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강하게 경고하면서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