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하락에 마음을 졸여온 강남권 집주인들은 전셋값까지 떨어지자 더욱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전셋값이 내려가면 전세를 끼고 집을 사려는 수요자의 자금 부담은 커지기 마련이어서 집값 추가하락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 잠실5단지 전셋값 2년새 최대 1억원 하락
25일 송파구 일대 부동산 중개업계에 따르면 잠실동 주공5단지에서는 1억3000만~1억3500만원선(112㎡형)의 전세 물건을 쉽게 볼 수 있다. 발코니 확장이나 인테리어를 새로 한 아파트도 1억4000만~1억5000만원이면 전세로 구할 수 있다는 게 중개업소의 전언.
작년 초 112㎡형 전셋값이 2억~2억3000만원선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최대 1억원까지 전셋값이 떨어진 것이다.
이는 올들어 인근에서 리센츠(5563가구), 엘스(5678가구), 파크리오(6864가구) 등 1만8000여가구의 신규 입주물량이 쏟아진 데다 하반기 들어 경기 불안으로 전세수요마저 크게 줄어 든 탓에 집주인들이 전셋값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근 신천동 미성아파트 105㎡형도 최근 전세시세가 1억5000만~1억6000만원선으로 떨어졌다. 만기가 돌아오는 전세계약자들은 대부분 2년여 전 2억1000만~2억2000만원에 계약한 이들이다. 강동구에서는 지난 9월 입주를 시작한 암사동 롯데캐슬 112㎡형이 입주초기 2억원의 전세시세를 형성했지만 현재는 1억5000만원까지 가격이 내려갔다.
암사동 S공인 관계자는 "이달 들어 강동현대홈타운 111㎡형을 1억3000만원에 전세계약을 맺었다"며 "새 아파트 전셋값이 떨어진 탓에 기존 단지에서는 가격을 크게 낮춰서라도 세입자를 들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서초구 잠원동 일대 역시 반포 자이 입주가 다가오면서 한신5차 110㎡ 전세가격이 최근 두달새 2억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꺾였다.
◇ 역전세난 수요회생 `걸림돌`..집값 추가하락 요인
전셋값 하락으로 집주인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2년여전 지금보다 훨씬 높은 전셋값을 받고 세입자를 받았지만 떨어진 가격에 세를 다시 주려면 오히려 돈을 내줘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
잠실주공 5단지 인근 M공인 관계자는 "2년전 2억원에 112㎡형 아파트를 전세로 내줬던 한 집주인이 최근 4000만원을 돌려주고 재계약을 맺었다"며 "역전세난이 깊어져 새로 세입자를 구하거나 기존 세입자와 재계약을 하려고 전세금 일부를 빼주는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전셋값 하락은 아파트 매매가격 추가하락을 부추길 수 있어 집주인들을 전전긍긍하게 만들고 있다.
일례로 현재 매매시세가 8억5000만~9억원으로 잠실 5단지 112㎡형과 비슷한 용산구 이촌동 한가람건영2차 109㎡형의 전세시세는 2억8000만~3억원선. 매매가는 별반 차이가 없지만 전세를 안고 살 경우 매수자가 들여야 할 초기자금은 잠실5단지가 1억5000만~1억7000만원 가량 더 많다.
전문가들 역시 이 같은 역전세난 양상이 집값 추가하락으로 연결될 요인이 된다고 보고 있다.
이미영 스피드뱅크 팀장은 "강남 아파트의 집값이 저점에 가까웠다고 판단해 매수시기를 재고 있던 수요자들이 일부 있지만 의외로 낮은 전세가격 때문에 자금계획에 차질을 빚어 망설이는 경우가 있다"며 "대출 금리도 아직 높은 상태이기 때문에 수요자들이 매수 시점을 늦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