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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으로 오는 관광객 가운데 비틀즈가 녹음한 스튜디오가 있는 런던 애비로드나, 해리포터 영화에 등장하는 승강장을 본따 만들어 놓은 승강장이 있는 런던 킹스크로스역, 셜록 홈즈 박물관 등을 보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리처드3세 등을 쓴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문호 셰익스피어도 ‘영국 문화’하면 빠질 수 없는 아이콘이죠. 셰익스피어 생가는 잉글랜드 중서부 스트라포드-어폰-아본에 있지만 런던에는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이 있습니다.
처음 런던에 왔을 때는 빌리 엘리어트, 위키드, 레미제라블, 북 오브 몰몬, 오페라의 유령 등 한국에도 꽤 이름이 알려져있는 뮤지컬들을 골라봤습니다. 한국에서보다 저렴한 티켓 가격에 뉴욕 브로드웨이와 공연에서 양대산맥인 런던 웨스트엔드 오리지널 공연을 볼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죠. 그러다가 관심은 자연스레 연극으로 넘어갔고 셰익스피어와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찾는 셰익스피어글로브에 발길이 닿게 됐죠.
대부분의 유명 극장이 관광 명소인 피카딜리서커스 근처 웨스트엔드 지역에 몰려 있는 것과 달리 셰익스피어글로브는 템즈 강변에 위치해있습니다. 런던브릿지 전철역에서 내려 15분정도 강변을 따라 걸으면 나옵니다.
런던은 템즈 강을 따라 명소들이 즐비해 있기 때문에 역에서 내려 극장까지 걸어가는 길도 운치있습니다. 극장으로 가는 길에 영국의 유명 셰프 제이미 올리버가 식자재를 사러 들린다던 보로우마켓, 런던 패션 위크가 열리기도 했던 서더크성당도 볼 수 있습니다.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부터 친구들과 함께온 10~20대들, 퇴근하고 그대로 온 듯한 수트입은 중장년층 등 셰익스피어글로브를 찾는 관객들도 다양합니다. 아주 유명한 배우가 등장하는 공연이 아니고서는 대부분 10~30파운드(약 1만5000~4만5000원)대로 공연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공연이 열리는 저녁 시간 셰익스피어글로브 앞은 언제나 좋은 공연을 저렴하게 즐기기 위한 관객들로 붐비죠.
셰익스피어글로브는 지금까지 봐왔던 공연장들과 비교해 많이 다릅니다. 16세기 엘리자베스1세 여왕시절 시절 개관했다가 화재로 불에 탄 뒤 이전 모습을 살려 새로 지었는데 당시 극장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기 위해 전기가 없던 그 시절처럼 실내 공연에서는 밝기를 조절하기 위해 오로지 촛불만 씁니다. 은은한 불빛 아래 셰익스피어 정극을 감상하는 것은 새로운 즐거움을 줍니다.
셰익스피어글로브 안에는 실내 극장 외에도 시간에 따라 변하는 하늘 색깔을 조명으로 활용하는 천장이 뚫린 원형극장이 있는데 무대 앞 객석은 과거 더 많은 평민들이 연극을 볼 수 있도록 입석으로 만들었던 것을 유지해 여전히 입석으로 운영됩니다. 5파운드만 내면 입석표를 구할 수 있죠.
무대 바로 앞 자리를 차지하는 행운을 잡는다면 배우들의 숨소리까지 들으며 생생한 현장을 즐길 수 있습니다. 물론 보통 2시간 정도의 공연을 서서 볼 수 있을 만한 체력이 되는 사람들이 입석에 도전해야겠죠.
야외 극장의 공연에서도 낮 공연은 자연광 아래에서, 밤에도 최소한의 인공 조명만 이용해 공연을 합니다. 그래서 춥고 해가 짧은 겨울을 제외하고 4월부터 10월까지만 아외공연을 한다고 합니다.
셰익스피어를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이 극장은 셰익스피어를 만나는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 될수 있습니다. 다만 셰익스피어 글로브에서 공연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약간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영어, 특히 셰익스피어 시절 고어도 종종 등장하기 때문에 줄거리를 전혀 모르고 온다면 살짝 따라가기 힘들수도 있습니다. 미리 원작을 책으로 읽고가거나 영어로 만들어진 오디오북 등을 듣고 가는 것이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되겠죠.
영국 잉글랜드 동부 머지사이드주 프레스콧에 새로운 셰익스피어 극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최근 BBC에 따르면 셰익스피어 재단 등이 주축이 돼 2000만파운드를 들여 2020년 개관을 목표로 35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을 짓습니다. 옛 주차장 부지에 들어서는 이 극장은 엘리자베스1세 시절 극장 모습을 그대로 재현할 계획입니다.
새로 여는 극장이 발전이 더딘 프레스콧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기를 바라는 기대가 많습니다. 과연 프레스콧 지역이 런던의 셰익스피어 글로브, 셰익스피어 생가가 있는 잉글랜드 스트라포드-어폰-아본 지역과 더불어 셰익스피어 흔적을 찾아다니는 관광객들을 잡아끄는 셰익스피어 성지로 자리매김 할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