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번째 위헌 심판대 오른 국보법…좌향좌 한 헌재, 합헌 뒤집나?

조용석 기자I 2017.08.28 09:30:00

수사기관 자의적 판단 위험, 논란 끊이지 않는 국보법 7조
헌재, 지난 9차례 모두 합헌 결정…위헌 의견 점진적 증가
文, 국보법 개정 공감, 진보성향 이유정 변호사 합류 변수

헌법재판소(사진 = 이데일리DB)
[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사회과학서적 전문 인터넷 서점을 운영했던 김모씨는 2007년 국가보안법 7조(이적표현물 취득·소지·판매)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김씨의 책 중 서문에 ‘북한’, ‘주체사상’이란 낱말이 들어간 책 300여권을 이적표현물이라 주장했지만 대부분 이미 국립도서관에 비치돼 있거나 일반 서점에서 판매 중인 책이었다. 김씨는 6년간의 법정다툼 끝에 2013년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지만 생활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뒤였다.

위헌 논란이 끊이지 않는 국가보안법이 10번째로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오른다. 진보성향인 김이수(64·사법연수원 9기) 헌법재판관과 이유정(47·23기) 변호사가 각각 헌법재판소장 및 재판관 후보로 지명된 가운데 헌재가 처음으로 국보법 위헌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 쏠린다.

◇‘수사기관 자의적 판단 가능’… 국보법 7조 논란 지속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형사11단독 김도요 판사는 지난 4일 국보법 7조 1항과 5항의 위헌 여부를 가려 달라며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했다. 위헌법률심판제청이란 법원이 소송 과정에서 스스로 또는 소송 당사자의 필요로 판결 등에 적용될 법률의 위헌성 판단을 헌재에 요청하는 것을 말한다.

헌재는 7월과 8월에 각각 청구된 2건의 국보법 관련 헌법소원심판(당사자가 직접 헌재에 청구하는 것) 사건과 이번 위헌법률심판제청건을 함께 심판할 예정이다.

1948년 제정된 국보법은 9차례에 걸쳐 위헌 심판대에 올랐다. 구(舊) 국보법 관련 위헌 심판 3건은 모두 한정합헌 결정, 1991년 개정된 국보법 관련 위헌심판 6건은 모두 합헌 결정이 났다. 국보법 합헌결정은 2015년이 가장 최근이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7조에 몰려있다. 먼저 7조 1항은 ‘국가의 존립·안전 등을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등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위헌을 주장하는 측은 ‘국가의 존립·안전 등을 위태롭게 한다’, ‘찬양·고무·선전·동조’ 등의 불명확한 표현이 죄형법정주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말한다. 즉 수사기관 또는 법원의 자의적인 판단 범위가 넓어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같은 조 5항(이적활동을 목적으로 문서·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한 자도 처벌한다)은 전파 가능성이 없는 소지·취득 행위까지 처벌해 과잉금지원칙에 어긋나 표현 및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을 편다.

반면 국보법 찬성측은 남북한 대치상황 등을 고려할 때 정당성이 인정될 뿐 아니라 제한받는 사익보다 공익이 훨씬 크다고 강조한다. 인터넷의 발달로 이적표현물의 유통·배포가 쉬워졌기 때문에 소지·취득 행위가 제작·배포한 행위보다 위험성이 적다고 보기 어렵다고 반박한다.

◇6대3으로 끝난 마지막 국보법 결정…헌재 변화 기류

헌재 내에서도 변화의 기류가 감지된다. 2015년 국보법 위헌 결정에서 9명의 재판관 중 3명(김이수·이진성·강일원)이 위헌요소가 있다고 판단했다. 국보법과 관련해 2명 이상의 재판관이 위헌 판단을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1990~1992년 3번의 결정 때는 변정수 전 재판관, 1996~1999년 3번의 결정 때는 조승형 전 재판관 홀로 국보법의 위헌을 주장해 8대1로 합헌결정을 났던 점을 보면 큰 변화다. 2002~2004년 2번의 결정 때는 아무도 위헌 판단을 하지 않아 8대0 재판관 전원일치 합헌 결정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위헌 판단 때는 마지막 합헌결정(6대 3)보다 더 진보적인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점쳐진다. 진보성향이 뚜렷한 이 변호사가 헌재에 입성할 경우 위헌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커서다. 이 변호사는 국보법 위반 혐의를 받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들의 재심을 맡아 무죄를 이끌기도 했다.

또 앞서 위헌 판단을 했던 김이수·이진성·강일원 재판관의 임기가 내년 9월까지여서 헌재가 그 전에 결론을 내면 최소 4명이 이상이 위헌 쪽에 손을 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국보법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한 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국보법 7조 1항을 언급하며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조항은 개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헌법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국보법 위헌 결정을 유지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의 한 변호사는 “헌법재판관들은 개인성향보다는 법적 안정성에 무게를 두는 판단을 내릴 때가 많았다”며 “위헌 판결까지 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