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동안 국내제약사들의 제네릭 시장 침투 현황과 의약품 허가 절차 등을 감안하면 기우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한미 FTA와 관련 쟁점이 되는 사안들을 정리한다.
◇ 다국적社 `특허연장전략` 남발 우려
제약업계는 한미FTA 발효 이후 새롭게 도입되는 '허가-특허 연계제도'가 국내 의약품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제도는 제네릭(복제약)의 허가가 신청되면 특허권자에게 신청 여부가 통보되며 이때 특허권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특허분쟁이 마무리될 때까지 제네릭의 허가가 중단되는 내용이 핵심이다.
만약 다국적제약사들이 오리지널 의약품의 물질특허가 만료됐음에도 특허를 연장하기 위해 조성물이나 제법 특허를 새롭게 등록하는 특허연장전략(에버그리닝 전략)을 남발하게 되면 특허분쟁의 빈도는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제네릭 출시가 늦어져 환자들이 값싼 약을 빨리 복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제약협회가 "소송이 진행되도 특허연계로 인한 허가 심사는 진행돼야 한다"면서 "특허권자는 자신의 특허가 진짜라는 서약을 해야하며, 나중에 허위로 판명될 경우 출시지연으로 인한 제약사의 기회비용 등은 모조리 특허권자가 배상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특허분쟁시 제네릭의 허가절차 정지
제네릭의 허가·약가 등재 시스템, 국내제약사들의 제네릭 시장 전략 등을 감안하면 허가-특허 연계제도가 시행되더라도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현행 허가 시스템에 따르면 다국적제약사의 신약이 국내 허가를 받으면 6년 후에 국내사들이 제네릭 허가를 신청할 수 있다. 허가신청은 오리지널과의 특허 만료와는 무관하다.
제네릭이 시판허가를 받게 되면 제네릭사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보험등재를 신청하며 이때 제네릭사들은 제네릭의 발매 시기를 정부에 통보하게 된다. 제네릭이 발매되면 오리지널의 가격이 20% 인하되는데 오리지널의 인하시기를 결정하기 위한 절차다.
만약 제네릭이 오리지널의 특허만료 이후에 발매하겠다고 소명하면 오리지널의 약가인하시기는 특허만료 이후로 미뤄진다. 오리지널과 제네릭간 특허분쟁은 각 업체별 전략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정부가 관여하지는 않는다.
허가-특허 연계제도가 시행되면 식약청에 제네릭의 허가가 신청됐을때 오리지널사에 통보된다. 종전보다 다소 빨리 오리지널사가 제네릭의 허가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때도 제네릭 제품이 특허만료후에 출시하겠다고 입장을 밝히면 허가와 약가등재 절차는 종전처럼 진행된다.
다만 제네릭사가 오리지널의 특허 만료 전에 발매 의사를 밝히면 오리지널사가 특허소송을 제기하게 되는데, 오리지널과 제네릭사간 특허분쟁이 진행될 때 제네릭의 허가절차가 정지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다. 미국의 경우 허가절차가 정지되는 최대 기간을 30개월로 규정하고 있다.
김국일 보건복지부 의약품정책과장은 "특허분쟁중 허가절차가 정지되는 기간을 12개월로 제한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만약 오리지널사가 의도적으로 특허소송을 지연시키더라도 소송이 제기된지 12개월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허가절차가 재개된다는 의미다.
◇ 특허 분쟁 비율은 10% 미만 `영향 미미`
허가-특허 연계제도로 국내 제약업계가 피해를 우려하는 것이 이 부분이다. 특허분쟁 기간에 제네릭의 허가가 중단됨에 따라 제네릭 출시 시기가 지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CJ제일제당이 화이자를 대상으로 비아그라의 특허 무효 청구를 제기한 바 있다. 현재는 소송과 무관하게 제네릭의 허가절차가 진행중이기 때문에 CJ제일제당이 특허소송을 이기게 되면 곧바로 제네릭 출시가 가능하다.
허가-특허 연계제도가 시행되면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제네릭 허가 절차가 중단됨에 따라 CJ제일제당이 특허무효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허가를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특허분쟁이 일어나는 비율이 10% 미만이며, 제네릭의 허가절차가 3개월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허가중단에 따른 피해는 미미할 것이란 분석이다.
제약사들이 아직 특허가 만료되지 않은 오리지널 의약품에 대한 제네릭의 허가를 상당수 받아놓았다는 점 또한 피해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뒷받침한다.
화이자의 소염진통제 '쎄레브렉스'는 특허만료가 2022년이지만 이미 14개의 제네릭이 허가와 약가를 받은 상태다. 2014년에 특허가 만료되는 아스트라제네카의 고지혈증약 '크레스토'는 이미 60여개의 제네릭이 등재된 상태다. 실제로 향후 5~6년내 특허가 만료되는 제품에 대해 상당수 업체들은 제네릭 허가를 이미 받아놓았다는 게 제약사들의 분위기다.
또 허가-특허연계제도가 한미FTA 발효 후 3년 후에 시행되기 때문에 이때까지 제약사들은 제네릭의 허가를 미리 받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셈이다. 예전에 비해 향후 특허가 만료되는 굵직한 신약이 많지 않다는 점도 허가-특허 연계제도에 대한 피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요인이기도 하다.
◇ 특허분쟁서 승소한 제네릭사엔 독점권
오히려 오리지널사와의 특허분쟁 결과 승소하면 독점권을 얻을 수 있어 제약사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한미약품이 릴리의 정신분열증치료제 '자이프렉스‘의 물질특허를 무력화시켰지만 1심 판결과 동시에 10여개의 제네릭이 발매되면서 특허소송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바 있다.
안소영 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는 "허가-특허 연계 제도가 도입될 경우 적극적인 특허전략을 구사하는 제약사들은 시장 독점권을 획득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한미FTA 발효 이후 지적재산권 강화로 값싼 복제약의 출시가 늦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의 국내제약사들의 복제약 영업관행을 살펴보면 복제약 출시가 지연될 가능성은 미미할 뿐더러 오히려 적극적인 특허전략을 구사하는 업체들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