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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현재 전통시장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 의무휴업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한산한 전통시장의 모습을 비추는 뉴스는 변함이 없는 걸까. 결과론적으로 의무휴업제는 시민들의 발걸음을 전통시장으로 되돌릴 묘책이 아니었음은 명백해지는 듯 하다.
필자는 해외를 방문할 기회가 생기면 그 도시의 전통시장을 꼭 방문한다. 시장이란 한 지역, 넓게는 국가의 풍습과 문화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가장 역동적인 공간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의 이해는 의(衣)·식(食)·주(住)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면 시장은 그 중 두 가지를 한데 담아 내고 있는 공간이다. 시장의 이러한 매력 때문에 전세계 여러 도시들은 저마다 전통시장을 대표적인 관광지로 내세우기도 한다. 이에 반해 점점 더 외면받는 우리의 시장, 그곳에 부재(不在)한 것은 무엇일까.
‘사람이 찾지 않는 곳’은 대부분 공간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다. 우리의 시장에 발견되는 다양한 문제점 들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은 ‘선형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건축적으로 선형의 공간은 통과를 목적으로 하는 속도의 공간, 효율성의 공간으로 해석된다. 머묾, 모임, 소통이 불가능한 공간구조다. 밀집된 건물 1층에 점포들이 들어서고 그 앞 골목길이 자연스럽게 시장으로 발전한 우리 전통시장에서는 선형의 공간구조가 불가피했다. 그나마 남아있는 골목에 점포들이 서로 경쟁하듯 노점까지 깔아 놓으니, 행여 밟을까 종종걸음을 하기 일쑤다. 자유롭게 거닐며 물건과 사람 간 접촉 가능성을 늘리는 것이 시장 공간의 핵심임에도 선형구조의 시장에서는 조금 전 눈에 들어왔던 물건을 다시 보러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반면 수많은 시민들과 관광객에게 사랑받는 해외의 전통시장들이 가지고 있는 공간적인 특성은 지역을 초월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면의 공간’이다. 이들은 대부분 광장형 공간에 자유롭게 모여있는 열린 상점들을 갖고 있다. 건물 틈에 자리한 우리 전통시장은 시선과 움직임이 ‘앞·뒤’ 단 두 방향만을 허락하는데 반해 이들은 한 지점에서 여러 방향을 살피고 걸어나갈 수 있는 공간구조를 가진다. 또 고객과 단 하나의 면만을 마주할 수 있는 우리 시장의 점포와 달리 면의 공간에서는 점포가 사방으로 열려 물건을 진열하고 고객과 소통한다. 사람과 점포의 접촉 가능성이 증가하는 만큼 시장은 활력을 띄고 구경거리는 두배, 세배 많아진다. 관광객까지 몰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게다가 면의 공간을 한데 묶는 건축 디자인이 더해져 시각적으로도 주목 받으면서 지역 전체를 되살리는 사례들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산타 카타리나 시장(Santa Catarina Market)은 시장 공간에 건축가(EMBT Architects)의 손길이 더해지며 주변 지역경제까지 살려 낸 예라 할 수 있다. 넓게 펼쳐진 전통시장의 지붕은 상인들과 건축가가 함께 소통하며 설계했는데 시장의 역동성을 상징하는 형태에 바르셀로나에서 주로 생산되는 식재료들의 색을 골라 입혔다. 열린 공간에 더해진 아름다운 디자인은 사람들을 모으고 자연히 다양한 이벤트가 발생해 축제까지 열렸다. 결국 이 시장은 바르셀로나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명소로 재탄생됐고 유통과 관광의 핵심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오래된 공간을 방치하는 것만이 전통을 지켜내는 일이라 할 수 없다. 바르셀로나의 사례가 보여준 것은 바로 공공건축의 힘이고 이는 우리 정부와 지자체가 전통시장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힘써야 하는지 알려준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오랜 문화와 그 문화를 지켜가는 상인들의 삶 그리고 그 산물인 전통 상품들이지,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시장공간은 아니다. 의무휴업 등 전통시장의 문제점을 전통시장 외부에서 찾는 일이 반복된다면 우리 시장이 축제의 장이 될 날은 요원해보인다. 전통시장의 부활, 그 시작은 공간의 변화임을 잊지 말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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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現) Architects H2L 대표
- 현 중앙대학교 건축학부 겸임교수
- 건축사/건축학박사/미국 친환경기술사(LEED 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