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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중략~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박노해, 노동의 새벽 中)
시인 박노해의 시집 ‘노동의 새벽’이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태어났다.
개정판을 낸 출판사 느린걸음측은 “30년이라는 세월은 한 시집이 망각 속으로 소멸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나 ‘노동의 새벽’은 살아있는 고전”이라면서 “이 시집 속의 노동은 곧 삶이요, 노동자는 곧 인간이 되어 오늘 우리 자신의 이야기로 되살아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의 새벽’은 27살 청년 박노해가 썼던 시집으로 세상을 뒤흔들었다. 지난 1984년 한 공장 노동자의 손에서 한 문학평론가의 손으로 신문 하나가 건네졌다. 그 신문지 사이에서, 얇은 습자지 위에 연필로 또박또박 눌러 쓴 시들이 쏟아져 나왔다.
시인은 자신을 밝히지 말아줄 것을 당부하며 사라졌다. 그 시들이 묶여 한 권의 시집으로 탄생한 게 바로 ‘얼굴 없는 시인’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었다. 저자 박노해는 시집 발간 이후 곧바로 위험인물로 떠올라 각종 시국 사건의 배후 인물로 추적당했다.
전두환 군사정권의 금서조치라는 탄압에도 ‘노동의 새벽’은 출간 이듬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공식 기록은 없지만 박노해가 1991년 구속될 때까지 100만부 가까이가 발간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학평론가 도정일은 “1980년대를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 박노해는 역사이고 상징이며 신화이”이라면서 “박노해를 통해서만 우리가 접할 수 있었던 처절하고 감동적인 노동의 서사이며 한 시대 노동의 운명에 대한 진실한 증언”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노동의 새벽’은 또한 단일 시집으로는 가장 많이 노래로 만들어졌다. ‘가리봉시장’ ‘지문을 부른다’ ‘시다의 꿈’ ‘진짜 노동자’ ‘노동의 새벽’ ‘바겐세일’ 등 20여 편의 시들이 80년대 민중가요로 불렸다. 2004년에는 고 신해철씨가 프로듀싱을 맡고 싸이, 윤도현, 한대수, 언니네 이발관 등의 뮤지션이 참여한 ‘노동의 새벽 20주년 헌정앨범’도 발매됐다.
시인 박노해는 개정판 서시에서 “인간의 삶이란, 노동이란 / 슬픔과 분노와 투쟁이란 / 오래되고 또 언제나 새로운 것 / 묻히면 다시 일어서고 / 죽으면 다시 살아나는 것 // 스무 살 아프던 가슴이 / 다시 새벽 노래를 부른다”고 노래했다.
한편, ‘노동의 새벽’ 개정판은 1984년 초판본의 미학과 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했다. 표지의 ‘실크 인쇄’는 오랜 인쇄 기법 중 하나로, 기계가 아닌 장인적 노동으로 완성됐다. 아울러 1984년 초판본의 납활체를 가능한 그대로 살린 것도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