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시계, 1900년에서 멈추다

오현주 기자I 2012.12.03 11:09:35

사라져간 것 좇는 세태 반영
근대 추억하는 전시회 잇따라
- 서울역사박물관 ‘정동 1900’ 전
- 덕수궁미술관 ‘대한제국 황실의 초상: 1880~1989’ 전
- 더페이지갤러리 안창홍 ‘아리랑’ 전

덕혜옹주 결혼식(‘대한제국 황실의 초상’ 전.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대한제국기(1897∼1910)는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 황실이 탄생한 때다. 일본과 서구열강의 압박 속에 자주독립과 근대화의 이중과제를 놓고 고군분투하던 전환기다. 그 치열했던 정황은 서울 정동(貞洞)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1895년 을미사변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이 아관파천을 단행하고 정동의 경운궁으로 이어한 이후부터다. 경운궁에서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등극하기에 이른다. 정동에선 이때부터 각국 공사관을 중심으로 이 땅에 발을 내딛기 시작한 서양인들과 대한제국의 낯선 공존이 시작됐다.

이 시기 ‘근대’를 조망하는 특별한 전시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열리고 있다. 대한제국과 서구열강이 한 무대를 여는 ‘정동 1900’ 전, 근대 황실의 역사를 사진으로 망라한 ‘대한제국 황실의 초상: 1880∼1989’ 전이 그것. 여기에 근·현대의 급격한 사회변화를 경험하던 평범한 인물들로 시대상을 조망한 안창홍의 ‘아리랑’ 전이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이들이 굳이 빛바랜 사진 속 1900년으로 되돌아간 이유가 무엇인가.

‘사진’이란 신매체가 보여준 100년전

서울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내년 1월 20일까지 열리는 ‘정동 1900’ 전은 1900년 전후 대한제국의 정동을 돌아보는 자리다. 여기에 프랑스정부 초청으로 대한제국이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에 참가한 특별한 사료를 전면배치했다. 대한제국기 정동 관련 유물 300여점을 꺼내 박람회 당시 한국관의 모습을 재현한 자료와 어울렸다. 박람회 폐막 후 프랑스공예박물관 등에 기증된 도자기, 공예품 등 실물유물 38점도 옮겨왔다.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 한국관(‘정동 1900’ 전. 사진=서울역사박물관)


‘대한제국 황실의 초상’ 전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대한제국 황실의 생활상을 살핀다. 주요 매체는 ‘사진’이다. 국립현대미술관과 한미사진미술관이 내년 1월 13일까지 서울 정동 덕수궁미술관에 펼친 이 역사사진전에는 고종, 순종을 앞세운 대한제국 황실 원본사진과 사료 200여점을 등장시킨다. 고종이 앨리스 루스벨트에게 선물한 초상사진 원본이 107년 만에 돌아왔고, 진위 논란을 빚는 명성황후 관련 사진도 걸었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 고종의 고명딸 덕혜옹주,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 등 기구한 삶을 산 황실 후예들의 모습이 공개됐다.

자동차를 타고 있는 영친왕과 다케히토왕, 이토 히로부미(’대한제국 황실의 초상‘ 전.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서양화가 안창홍(59)의 ‘아리랑’ 전은 사진보다 더 사실적이며 절박한 회화적 메시지를 내세운다. 이른바 ‘사진을 그린 그림’이다. 서울 서초동 더페이지갤러리에서 9일까지 열리는 전시에선 일제강점기 전후를 애잔하게 경험한 근·현대 인물들이 보인다. 이들은 교복, 치마저고리, 기모노 등을 입고 동창회, 졸업, 결혼식 등에 참석해 카메라 앞에 섰다. 하지만 작가는 이들의 눈을 모두 감겼다. 역사에서 제외된 보통사람들의 애환을 에둘러 표현한 초상인 셈이다.

‘아리랑 2012’(안창홍 ‘아리랑’ 전. 사진=더페이지갤러리)


현대미술 거품 꺼지며 ‘근대’ 가치 좇아

근대로 되돌아간 전시. 이 추세에 대해 이사빈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미술계와 문화계의 분위기가 변화된 것”이란 데 의미를 뒀다. 이어 “현대미술이 활황이던 때가 있었다”며 “그 거품이 꺼지면서 관람객들이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역사현장으로 옮겨간 듯하다”고 전했다. 미술이 관람객을 고려하기 시작한 거란 얘기다. 또 정수인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시기가 잘 맞아떨어졌던 것”이라며 “사회적으로 소멸되고 사라져가는 것을 찾아내자는 요즘의 활발한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대한제국 황실의 초상’ 전에는 오픈 이후 약 2주간 1만 1000여명이 다녀갔다. 전시가 유료(성인 4000원)인 점을 고려할 때 반응은 뜨겁다. ‘정동 1900’ 전은 3주여 동안 5만여명이 관람했다. 무료인 전시에는 내년 1월 말까지 약 15만명이 찾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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