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1973년 8월 23일 스웨덴 수도 스톡홀롬. 크레디트반켄 은행에 2인조 무장강도가 침입했다. 범인들은 직원 4명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6일간 대치했다. 이후 무사히 구조된 인질들은 오히려 범인을 옹호했다. 이는 ‘스톡홀름신드롬’이라는 심리학 용어의 기원이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희대의 명언으로 우리가 기억하는 사건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전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지강헌 일당의 무장인질극이었다. 당시 인질이었던 가족들은 지강헌 일당을 두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보수가 길을 잃었다. 거대한 늪 속에서 옴짝달싹조차 못하는 신세다. 21대 대선 패배 이후 만신창이가 됐다.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무기력 그 자체다. ‘보수의 심장’이라는 TK에서마저 신뢰를 잃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 모든 현상의 기묘한 출발점은, 어쩌면 ‘기괴한, 너무나도 기괴한’ 스톡홀롬신드롬의 여파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적 판단과 국민적 심판은 이미 마무리됐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과 정권교체가 그 증거다. 보수진영 일부는 아직도 윤 전 대통령과의 끈을 놓지 못했다.
한국현대사에서 헌법 절차에 따른 대통령 파면은 2차례다. 모두 2000년대 이후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회 탄핵은 있었지만 헌재에서 기각됐다. 보수가 배출한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은 헌재 파면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이례적인 현상은 태극기부대의 등장이었다. 보수궤멸론 또한 한동안 유행했다. 탄핵의 강은 우여곡절 끝에 건널 수 있었다. 30대 0선이었던 이준석 대표 체제의 등장이었다. 보수의 위기탈출은 꼼수였다. 문재인정부 시절 적폐청산의 주역이었던 윤 전 대통령 영입이었다. 보수의 자존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비상계엄·탄핵사태 이후에는 더 기괴한 일이 벌어졌다. 윤어게인 세력의 부상이었다.
돌이켜 보면 모든 게 이상했다. TV토론에서 손바닥 왕(王)자는 애교였다. 청와대 이전은 왜그리 서둘렀는지. ‘바이든 날리면’ 사태는 모든 국민의 청력을 테스트했다. 이태원참사를 대하는 방식도 낯설었다. 온국민이 합의한 독립운동의 역사도 뒤집었다. 막무가내 의대정원 증원도 이해불가였다. 디올백사태는 총선 참패의 결정타였다. 집권 여당 대표마저 수시로 교체됐다. 대통령은 분노조절장애에 가까운 ‘격노’를 자주 선보였다. 언제 어디서나 ‘반(反)국가세력’을 찾았다. 파국은 12.3 비상계엄이었다. “가짜뉴스”라고 믿었지만 공포의 현실이었다.
팩트는 간단하다. 비상계엄 사태를 전후로 가해자와 피해자는 명확하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진영 역시 피해자다. 가해자를 동정하거나 옹호할 이유는 없다. 지금처럼 스톡홀롬신드롬에서 허우적거린다면 ‘내란동조자’라는 주홍글씨를 피할 수 없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보수가 이대로 무너진다면 이재명정부는 긴장할 필요조차 없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모두의 불행이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보수 위기 탈출의 시작은 단순하다. 하루 빨리 ‘윤석열’이라는 스톡홀롬신드롬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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