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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넘게 안 판 물산 주식도 매각
14일 재계에 따르면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지난 11일 삼성물산 지분 0.65%를 블록딜(시간외 대량 매매) 형태로 처분하면서 삼성물산 지분율이 기존 6.23%에서 5.58%로 낮아졌다.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관장과 이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삼성 오너일가 세 모녀는 삼성전자 지분 총 2조1689억원어치(2982만9183주)를 블록딜로 매각했는데, 이 사장은 거기에 삼성물산 지분까지 판 것이다.
삼성 오너일가가 2020년 10월 이건희 선대회장 별세 이후 상속 받은 삼성물산 주식을 판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삼성물산이 지주회사 체제가 아닌 삼성그룹에서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는 특수성과 관련이 있다.
삼성그룹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오너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중공업 등 주요 계열사들의 구조로 이뤄져 있다. 오너일가가 삼성물산을 통해 그룹 지배력을 유지하는 구조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4.40%), 삼성SDS(17.08%), 삼성바이오로직스(40.06%) 등의 지분 역시 대거 갖고 있다.
이 사장의 이번 매각으로 이재용 회장(18.10%) 등 특수관계인이 가진 삼성물산 지분은 기존 33.63%에서 32.98%로 낮아졌다. 오너일가가 상속받은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SDS 등 네 회사의 주식 중 지배구조 특수성 때문에 3년 넘게 팔지 않았던 ‘마지막 보루’ 삼성물산까지 매각 대상에 올린 것이다.
다만 이는 지배구조를 흔들 변수는 아니라는 평가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물산 지분율이 미미하게 낮아진 데 대한 영향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했다. 특히 2대주주인 KCC(9.17%)는 삼성의 ‘우군’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KCC는 2015년 6월 미국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삼성을 공격했을 당시 경영권 방어를 도왔던 적이 있다. 그 뒤 삼성 지배구조가 안정기에 접어든 이후에도 주식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상속세 원조 英, 40% 전면 폐지”
재계가 이번 블록딜로 더 주목하는 것은 제아무리 삼성이라고 해도 상속세 부담이 크다는 또다른 방증이라는 점이다. 삼성 오너일가는 선대회장 별세 이후 상속세를 매년 나눠내고 있는데, 그 규모가 12조원이 넘는다. 세 모녀의 이번 매각 역시 납부 기한이 다가온데 따른 것이다. 이재용 회장은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의 배당금 외에 수천억원 단위의 신용대출로 상속세를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다. 최대주주 할증과세를 적용하면 60%에 이른다. OECD 내에서 가장 높다. 게다가 승계를 장려하기 위해 도입한 가업상속공제는 적용 대상이 한정적인 데다 요건마저 엄격해 그 활용이 저조한 처지다. 국세통계연보 등에 따르면 지난 2021년 한국의 가업상속공제 건수는 110건으로 독일(1만1874건)의 9% 남짓에 그쳤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삼성가 세 모녀의 블록딜은 아무리 대기업집단 오너일가라고 해도 매년 배당받는 돈은 부족하니 현실적으로 주식 매각 외에 상속세 납부 방법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가업상속공제 제도 역시 유명무실해 기업 승계는 사실상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는 곧 기업 투자와 개인 소비를 위축시켜 경제 전반의 성장세를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지 않다. 이 때문에 재계는 그동안 상속세 개편을 꾸준하게 요구해 왔다. 특히 ‘상속세 원조’ 영국은 40% 상속세의 전면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까지 나왔다.
재계의 또다른 한 인사는 “상속세 개편이 이뤄진다고 해도 (소급 적용이 되지 않아서) 삼성의 부담이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산업계 전반으로 보면 (세금에 대한) 부담이 큰 게 현실”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