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원지인 미국 정부, 그리고 중앙은행은 적극적으로 `소방수`를 자처했고, 상황 자체가 그랬던 만큼 진화를 위한 조치들도 과감했다.
이런 가운데 중앙은행의 역할은 더 강력해 졌고, 패니매와 프레디맥 구제안 등 정부의 역할도 적극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개입과 지원이 지나쳐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것이란 우려도 적잖다.
일부에선 "미국이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 경제로 나가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오랜 탈규제(deregulation) 분위기가 뒤집히고 있다는 분석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사태 진압이 안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용위기의 불길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 공격적인 진화나선 FRB..감독 권한도 확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해 9월 이후 지금까지 FRB는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를 총 3.25%포인트 인하, 2.00%로 조정했다. 1월과 3월엔 0.75%포인트씩 과감하게 금리를 내리기도 했다.
다만 인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지면서 지난 6월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선 1년 간 이어졌던 인하 행진을 중단하고 금리를 동결했다. 이달 5일 있을 FOMC에서도 동결이 유력한 상황.
FRB는 유동성 공급에도 부지런히 나서 왔다. 난국에서 머리를 잘 굴려 최선의 방법을 도출했던 것도 사실이다. 기간입찰대출(TAF)과 기간증권대출(TSLF), 프라이머리딜러신용대출(PDCF) 등이 그것.
쉽게 말해 재할인 대출 대상이 아닌 투자은행들에게도 모기지 증권(MBS)을 담보로 FRB가 직접 자금을 대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처해 있던 투자은행들은 긴급 수혈을 받아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이 대출은 원래 9월까지 6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이뤄질 예정이었지만, FRB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기간부 국채임대대출`과 `프라이머리 딜러대출` 등 두가지 제도 시행을 내년 1월30일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FRB는 최근 패니매와 프레디맥에도 재할인 대출을 해주기로 했다.
버냉키 의장 휘하 FRB의 이런 행보엔 찬사와 비난이 엇갈리고 있다.
확실한 돈줄 역할을 하면서 급하게 치솟았던 신용위기 위험 수위를 낮춘 것은 사실. 하지만 FRB의 관할권 안에 있던 상업은행 외에 차주(借主)가 되는 월가 투자은행에 대한 감독까지 맡게 되면서 FRB의 역할이 지나치게 커지는 게 아니냔 시각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버냉키 의장은 최근 의회 금융서비스 위원회에 "투자은행들의 자본과 유동성, 리스크 관리 기준 마련을 위해 강화된 지배권을 가진 단일한 연방 규제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주목을 끌었다.
그는 그 주체가 FRB가 되어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금융 시장 안정이라는 중앙은행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FRB는 금융기관들 전체를 관할할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해 묘한 뉘앙스를 남겼다.
일부 의원들이나 경제학자들은 버냉키 의장과 FRB에 더 이상의 힘을 실어줘선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 경기부양책에 `빅2 모기지`까지 지원..재정부담 막대
신용위기로 위축된 소비를 이끌어내기 위해 세금환급을 해 준 미국 정부의 경기부양책 규모는 1680억달러.
여기에 `빅2 모기지 구제안`을 포함한 주택지원법안(Housing Bill)이 상, 하원을 거쳐 통과됐다. 이는 주택과 모기지, 그리고 금융 시장까지 안정화하기 위해 정부가 둔 강수다.
또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크레딧 라인(신용공여 한도)을 22억5000만달러로 늘려주고, 이들에 대한 지분 투자를 하면서 회복 시까지 관리 감독을 하게 된다.
주택 소유자들에겐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며, 상황이 위태위태했던 패니매와 프레디맥도 살아날 구멍을 찾았지만 가뜩이나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정부로선 막대한 부담이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두 회사 지원에 250억달러의 재정자금이 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그렇잖아도 막대한 수준의 미국의 재정적자를 더 늘릴 것으로 보인다. 오는 10월 1일 시작되는 2009 회계연도 재정적자는 482조원에 달해 역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게다가 백악관은 올해 미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기존 2.7%에서 1.6%로 하향 조정했다. 성장률이 떨어지면서 걷히는 세수도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 부양과 주택 시장 지원에 공격적으로 나섰지만 어떤 면에선 `아랫돌 빼어 윗돌을 막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 `도덕적 해이 유발·자유시장주의 해친다` 논란 분분
중앙은행이 월가 줄도산과 금융시장 패닉을 막기 위해 JP모간 체이스의 베어스턴스 인수금을 사실상 대주고, 재무부가 패니매와 프레디맥 지분을 사주기로 한 것 등은 시의적절했다는 평가도 받지만 뒷말도 무성하다.
공적자금을 대대적으로 사용하면서 오히려 개인이나 금융기관 모두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이란 우려가 크고, 자유시장주의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글렌 허바드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장은 지난 21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 `우리는 FRB에 너무 많이 바라고 있다`에서 FRB의 역할 확대로 인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짚었다.
허바드 교수는 "FRB의 대출 확장이 이례적으로 큰 규모와 범위로 이뤄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반갑지 않은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2001년 경기후퇴(recession) 이후 FRB가 전례없는 금리인하 이후 적절한 시점에 금리를 올리지 못해 2003년의 세금 감면과 맞물려 주택 시장의 거품과 인플레 압력을 만들어 냈다고 지적했다.
2008년 현재도 FRB는 2%까지 금리를 내렸고, 정부도 세금 인하를 골자로 하는 경기부양책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도 상기했다.
폴 크루그만 프린스턴대학 교수는 28일자 뉴욕타임스(NYT) 칼럼에서 주택 지원법안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보였다.
어려움에 빠진 가계를 도울 수 있는 이런 법안이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금융 시스템을 고치기 위한 미봉책 중 하나이며, 법안이 나온 것도 고통을 막기엔 너무 늦은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WSJ은 기업 파산이나 집값 하락 등으로 경제가 악화되자 미국 정부가 해결을 위해 팔을 걷고 있으며, 이는 1980년대 초반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이후 25년 넘게 지속돼 온 탈규제 모토가 도전받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 경제위기에 美 `탈규제` 역행조짐
미국에서 신용위기가 발생한지 벌써 1년이 지났지만 뚜렷한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물론 시간의 문제일 뿐 언제가는 극복될 것이란 기대는 많다. 먼훗날 미국발 신용위기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나올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