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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시가가 부자들의 취미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시가는 누구든 살 수 있지만 누구나 즐길 수 없다. 오랜 시간 여유롭게 즐기려면 구입 비용은 물론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다. 시가는 1~2분이면 태우는 담배와 달리 한 대를 다 태우는데 짧게는 30분~1시간이 소요된다. 한 번 피울 때 냄새가 짙게 배기 때문에 허가된 장소나 개인 공간이 아니면 피우기 힘들다. 자가를 보유하지 않는 이상 개인이 취미로 온전히 즐기기 어려운 셈이다. 기호식품이지만 시가가 담배와 달리 보편화되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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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만난 쿠바 시가 국내 독점 판매권을 보유한 ‘피에르 시가’의 피에르 코헨 아크닌 대표는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럭셔리는 자유”라며 “시가를 온전하게 즐길 수 있으려면 시간적으로든 공간적으로든 시가를 음미할 수 있는 충분한 자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시가는 맛은 물론 멋까지 누릴 수 있는 격이 높은 사치품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피에르는 시가는 단순히 허세를 위한 사치품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가격을 떠나 모든 명품이 그렇듯 시가에는 오랜 역사가 있고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부자들이 시가에 열광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시가의 세계는 와인과 위스키의 세계처럼, 단순하지 않고 까다롭다.
시가를 진지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배움’이 필요하다. 독학도 가능하지만 시가를 고르고 헤드를 자르고 불을 붙이고 피우고 맛과 향을 느끼는 모든 과정이 공부다. 감각은 배우면 배울수록 더 단련된다. 무엇이든 단순히 좋다고 느끼는 것을 넘어 왜 좋은지, 무엇이 좋은지를 설명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꾸준함과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 시가 입문자에게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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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비 쿠바산 시가의 대표 원산지는 도미니카공화국이다. 지난 1959년 쿠바 카스트로 혁명 이후 현지 시가 업체들이 도미니카로 생산지를 옮기면서부터 경쟁력이 높아졌다. 도미니카 시가를 대표하는 브랜드에는 ‘시가의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다비도프(davidoff)’가 있다. 100년 역사를 지닌 이 브랜드의 국내 독점 판매권은 브루벨코리아가 가지고 있다. 인근 온두라스나 니카라과 등에서 좋은 품질의 담뱃잎이 생산된다. 주요 생산지에서 확보한 고품질 담뱃잎을 모아 만든 시가 브랜드로는 미국의 ‘구르카(Gurkha)’, ‘록키 파텔(Rocky Patel)’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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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 시가 시장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정확한 데이터는 없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 보니 일반 고객 사이에서 벌어지는 온라인 불법 거래, 해외 불법 유통 문제도 심각하다. 업계에 따르면 온라인과 해외 직구 등이 보편화한 이후 시가 업체 매출은 전보다 60~90%까지 떨어졌다. 다만 코로나19 이후 물류가 막히면서 불법 유통이 줄어들어, 역설적으로 매출이 전년 대비 2배 이상 반등한 상태다.
규제 강화로 국내에서 시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다. 과거에는 식당, 호텔, 바 등 어디서든 즐길 수 있었지만 정부 금연 정책이 강화하면서 시가 산업도 타격을 입었다. 지난 2015년 실내 흡연이 금지된 것을 기점으로 시장이 본적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럼에도 몇몇 합법 시가숍 덕분에 일반인도 시가를 경험하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유지되고 있다. 시가숍은 편의점처럼 담배 소매권을 보유해야 운영할 수 있다. 우리보다 시가 시장이 약 10~20배 이상 큰 일본, 홍콩의 경우 한 시가숍별로 여러 브랜드의 시가 유통하고 판매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수입 업체별로 따로 계약을 하지 않으면 여러 브랜드를 동시에 판매할 수 없다.
이 중 국내에서 가장 다양한 시가를 취급하는 대표적인 시가숍은 ‘레솔베르’다. 레솔베르는 각 복수의 수입사와 계약을 통해 쿠바산과 비 쿠바산 시가를 동시에 확보해 약 300종류 이상의 시가를 취급한다. 이 중 가장 고가의 시가는 다비도프의 ‘ORO BLANCO’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스틱 하나당 가격은 155만원이다. 이요한 레솔베르 대표는 “국내에 시가를 파는 곳이 많지만 까다롭게 습도를 유지해 시가를 진열하는 ‘워크인 휴미드’를 마련한 곳은 많지 않다”며 “휴미더(보관함), 가위, 커터, 튜브, 재떨이 등 희소하고 독특하고 세련된 시가 관련 고가 액세서리를 동시에 판매하는 곳도 우리가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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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통해 직접 느낀 시가의 첫인상은 강력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느낌이었다. 다만 부작용이 있다면 빈속에 두꺼운 시가를 너무 많이 태우면 일반 담배와 마찬가지로 ‘니코틴 펀치’가 올 수 있다. 시가를 피우려면 정돈된 마음과 단련된 체력이 필요하다. 마이클 조던은 하루에 ‘로부스토(두툼한 시가)’를 세 대를 태운다며 건강을 자랑하기도 한다고 한다. 니코틴과 수명 간 상관 관계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많지만 오랜 시간 태우면 몸에 무리가 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