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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확대경]하나만 보고 둘은 못보는 환경규제

김보경 기자I 2019.02.06 14:46:52


[이데일리 김보경 기자] 최근 회사 후배와 함께 서울 서대문 인근의 한 카페에 들렸다. 커피 두 잔을 주문하고 매장 내에서 마시고 가겠다고 했지만 너무 당연하게 일회용컵에 커피가 담겨 나왔다. 매장 입구는 물론 음료 주문대 앞에도 매장내 일회용컵 사용규제를 알리는 포스터와 안내문구가 붙어있었다. 점원에게 이 매장에서는 일회용컵을 써도 되냐고 물으니 일회용컵에 플라스틱컵이 단속 대상이고 종이컵은 단속 대상이 아니라며 머그컵을 원한다면 바꿔주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제서야 매장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모두 종이컵에 담겨 나온 음료를 거리낌없이 매장 내에서 마시고 있었다.

환경부가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재활용법)에 따라 지난해 8월부터 커피전문점과 같은 식품접객업으로 등록된 매장에서 일회용컵을 규제한지 6개월이 지났다. 무더웠던 작년 여름. 하루에도 2~3잔의 아이스커피 등 찬 음료를 마시던 그 때, 재활용업체들의 비닐수거 거부 사태로 촉발된 플라스틱 폐기물 대란으로 비닐과 일회용품 등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전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 커피전문점들의 자발적 협약을 맺고 매장내 일회용컵을 줄이겠다고 했고 8월부터는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 적발 시에는 사업자에게 5만~2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단속도 단속이지만 당시 플라스틱 폐기물 대란을 취재하면서 심각성을 체감했던 터라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습관을 고치기란 쉽지 않았다. 얼음이 가득 든 투명용기에 담긴 찬 음료를 하루 종일 홀짝이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러다가 결국 텀블러를 사용하게 됐고 휴대와 세척이 처음에는 귀찮았지만 점심시간 때는 텀블러를 사용하는 게 겨우 습관이 됐다.

커피전문점도 초기 머그컵 수량 부족과 거치대 부족, 설거지 시간 부족 등 불만을 하소연하면서도 일회용품을 줄여야한다는 대의에 공감했기 때문에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규제에 적응해가는 듯 했다. 사업자와 소비자 모두 불편을 조금씩 감수하고 일회용컵 줄이기에 동참하던 분위기였다.

그런데 겨울이 왔고 따뜻한 음료 주문이 많아지면서 규제대상인 일회용컵에 종이컵은 빠져있다는 이유로 카페 점원은 너무나 친절하게 다시 일회용컵을 내줬다. 물론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중 자율적으로 플라스틱컵이든 종이컵이든 일회용컵은 무조건 매장 내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 커피전문점에서 일회용인 종이컵이 테이블을 점령하고 있다. 종이컵은 종이가 젖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컵 내외부에 코팅을 한다. 플라스틱 재질의 뚜껑도 함께 사용된다. 플라스틱컵만큼이나 환경에 해롭다.

애초에 일괄적인 일회용컵 사용규제로 시작했어야 했다. 실제 환경부의 일회용컵 규제 후 소비자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규제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와 종이컵에 대해서도 84.1%, 78.4%가 사용규제 필요성에 찬성했다. 올초부터 환경부는 마트나 대형 슈퍼에서의 비닐봉투 사용 규제하고 있지만 속비닐 등의 사용이 되레 늘어나고 있고, 이번 설 명절 과대포장 집중 단속에서도 포장공간비율을 기준으로 하다보니 고정재를 사용해 공간을 줄이는 제품이 늘어나고 있는 풍경도 같은 이치다. 보다 종합적인 규제라야 소기의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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