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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SPN 제공] 김성홍 감독의 스릴러 ‘실종’(제작 활동사진)은 사실 소재 측면에서는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좋았을 영화다. 지난 2007년 보성 어부 살인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는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실종 및 연쇄살인사건을 여러모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실종'의 스토리는 지어낸 이야기이기 보다 과거에 일어났을법한, 혹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실종’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며칠 째 소식이 없는 동생 현아(전세홍 분)의 연락을 기다리던 현정(추자현 분)은 동생의 휴대폰을 위치 추적 한 후, 어느 시골 마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현정은 인근 파출소에 동생의 실종 사실을 알리고 수사를 의뢰하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거부당하자 홀로 마을 곳곳을 다니며 사라진 동생의 행적을 찾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산속에서 양계장을 운영하는 판곤(문성근 분)과 마주치게 된다. 노모를 모시며 살아가는 판곤이 바로 동생을 납치해 살인한 연쇄살인범임을 모르는 현정은 판곤의 계략에 말려든다.
김 감독은 ‘실종’을 연출하며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인 판곤의 캐릭터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렸다"고 말혔다. 그간 할리우드 스릴러 영화에서 미화되곤 했던 사이코 패스 살인마들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살인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이 없고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연쇄살인범들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해서란다.
덕분에 ‘실종’은 이야기의 전개보다 ‘판곤’이란 캐릭터 자체가 영화의 긴장감을 부여한다. 순박한 양계장 주인에서 젊은 여성을 농락하고 살인을 즐기는 사이코 패스로 돌변하는 판곤의 모습이 영화 전반에 걸쳐 팽팽한 긴장감을 준다. 또한 판곤의 모습은 그간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던 유영철, 강호순 같은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들의 범행 현장을 연상하게 만든다.
김 감독은 그 지점을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어느 날 실종되어 연쇄살인범들의 희생자들이 된 숱한 여성들의 공포와 절망. 그리고 납치와 살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즐기는 연쇄살인범들의 모습을 스크린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실종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고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의도에서였다.
그래서 ‘실종’은 불편하고 거북스러운 영화이기도 하다. 판곤이 보여주는 가학성은 우리가 보기를 외면했던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들의 실제 모습이다. 또한 그에게 살해당하는 인물들 역시 우리 사회가 지켜주지 못했던 연쇄살인의 피해자들과 다름없어서다.
하지만 ‘실종’은 지난해 ‘추격자’에 이어 한국 스릴러 장르의 역사상 일정부분 성취를 이뤄낸 작품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김성홍 감독은 단순한 줄거리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심리를 끝까지 불안하게 끌고 간다. 김 감독은 요즘 스릴러 영화에서처럼 빠른 교차편집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폐쇄된 공간이 주는 불안감과 판곤의 이중성을 교직시키며 시종일관 관객들의 심리를 바짝 죈다.
게다가 판곤 역을 맡은 문성근을 비롯해 현정 역의 추자현과 현아 역의 전세홍의 열연은 10억원도 들지 않은 영화의 열악한 제작환경을 상쇄시켰다. 영화의 완성도는 거대한 세트나 CG 혹은 규모에 있지 않다는 것을 감독의 연출력과 이에 호응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증명했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서 장도리 액션과 생니 뽑기를 본 관객들이라면 영화의 잔혹성에 대해서도 크게 놀라지 않을 듯하다. 19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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