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시대)<4부>⑦일본판 401k가 도입되기까지

지영한 기자I 2005.11.18 11:39:00

日 퇴직금 400년 역사..종신고용 전통 붕괴와 함께 변화
DB형 위기..DC형전환 증가

[도쿄=이데일리 지영한기자] 마츠시타 고노스케(1894~1989)는 마츠시타전기(Panasonic)를 창립한 인물로, 일본에서 존경받는 경제인중 한명이다. 그는 7살 때 집을 나와 자전거 대리점에서 15세까지 견습공으로 일을 했다.

마츠시타는 이후 자그마한 전기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거기서 받은 퇴직금을 밑천으로 회사를 만들어 세계적인 마츠시타전기를 키워냈다.

일본에서 퇴직금의 역사는 400년전인 에도시대(1597~1868)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엔 봉공인(奉公人·종업원)이 주인집에서 숙식을 하며 일을 도우면, 주인은 종업원이 독립할 때 주인집과 같은 상호를 쓰도록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엔 일시금인 금일봉을 지급했다.

▲ 11살 견습공 시절의 고노스케
마츠시타 고노스케의 사업 밑천이 된 퇴직금은 일본에서 이처럼 오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이홍무 와세다大 상학부 교수는 “에도시대의 퇴직금은 봉공인에 대한 공로 보상적, 은혜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근대로 접어들면서 일본의 퇴직금은 숙련근로자를 붙잡아두기 위한 수단으로 변해갔다고 설명했다.

예컨데 메이지(明治)시대(1868~1911년)에 들어서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으로 군수산업을 중심으로 일손이 모자라게 됐다. 이에 일본의 퇴직금은 숙련된 근로자의 이직을 방지하고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적극 활용됐다. 

근래 일본에서 종신고용의 전통이 무너지고, 연공서열식 인사시스템이 퇴색하면서, 퇴직금의 의미도 변하고 있다.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보다는 ‘고령사회’ 진입이라는 시대적 변화를 반영, ‘근로자의 노후소득보장’의 개념으로 변모하고 있다. 

◇‘공로보상’에서 ‘노후소득보장’으로 진화

일본의 퇴직급여제도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퇴직일시금제도’에서 출발, 60년대 들어 확정급부(DB) 형태인 적격퇴직연금과 후생연금기금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이후 퇴직급여 회계제도의 변경과 운용환경 악화 등으로 2000년대 들어 ‘확정갹출(DC)형’과 ‘DB형’의 새로운 제도가 추가됐다.

이에 따라 현재 일본의 퇴직급여제도는 후생연금기금과  적격퇴직연금, 최근 새롭게 출발한 DB형, DC형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다 중소기업들이 가입하는 중소기업퇴직금공제제도를 포함하면 일본의 퇴직급여제도는 대체로 이들  5개로 구성돼 있다. 

일본 퇴직연금제도의 원조격인 적격퇴직연금은 ‘퇴직금의 외부화’를 목적으로 62년 도입됐다. 적격퇴직연금 기업의 90% 정도는 중소기업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재정검증의 의무가 없었다. 가입자에 대한 사업주의 충실의무도 미흡했다. 분산투자에 대한 책임규정 역시 부실했다.

◇올드(Old) DB형 기업연금의 위기

자산운용 환경이 악화되자 적립부족 문제가 불거졌다.적격퇴직연금은 후생연금기금과 달리 지급보증제도도 갖추지 못했다. 90년대 장기불황으로 기업도산이 급증하자 퇴직급여를 떼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퇴직연금의 가장 큰 목적은 수급권 보호인데, 적격퇴직연금은 연금제도로서 제기능을 거의 상실한 셈이다.

사정이 이렇자 2001년 제정된 ‘확정급부기업연급법’은 적격퇴직연금의 신규계약을 금지시켰다. 종전에 가입한 적격퇴직연금도 2012년 3월까지는 폐지하도록 했다. 적격퇴직연금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 98년 9만여개에서 올 10월 현재 5만개 안팎까지 떨어졌다.

공적연금(후생연금)의 일부를 기업이 대행하는 후생연금기금은 66년에 도입됐다. 후생연금은 기초연금과 월급에서 일정 비율을 떼어서 연금을 더 주는 소득비례의 2층 구조이다. 그런데 65년 후생연금의 급부(보험료)가 크게 오르자 기업들의 불만이 커졌다. 후생연금이 보수에 비례해 급부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업들의 부담도 그 만큼 확대됐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회사 퇴직금도 쌓으랴, 후생연금 보험료도 내랴, 중복부담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경제 단체들도 이중부담 해소를 앞장서 요구했다. 결국 일본 정부는 66년 퇴직금과 공적연금의 조정적인 성격을 가진 후생연금기금(일명 조정연금)을 도입했다.

후생연금의 노령후생연금 운용을 기업들에게 대행시킨 것이다. 당시만 해도 후생연금기금은 기업들에겐 일종의 특혜였다. 일본 정부가 후생연금기금의 이율을 5.5%선 정도만 맞추도록 했기 때문이다. 당시 실제 운용수익률은 5.5%를 훨씬 상회했다. 20%의 수익을 올리면 15%가 남는 장사였다.

하지만 운용환경이 악화되면서 좋던 시절도 막을 내렸다. 버블 붕괴 이전만 해도 연 5.5% 이상의 자산운용은 ‘누워서 떡먹기’였다. 그러나 제로(0) 금리시대를 맞아 5.5%의 운용수익을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운용할수록 손실만 커졌고, 더 이상 후생연금기금을 운용하지 못하겠다는 기업들이 속출했다.  

기업들은 운용손실로 발생한 적립부족을 채운 후 국가에 후생연금의 대행부분을 반납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선 이를  `대행반납`이라고 부른다. 98년 3월말 1874개까지 늘어났던 후생연금기금은 이같은 `대행반납`이 증가하면서 올 8월말 현재 730개까지 급감했다.



◇일본판 401k, 우여곡절속 탄생  

60년대 도입된 구(舊) 확정급부형 퇴직연금제도에서 문제점이 잇따라 발생하자 96년부터는 새로운 퇴직연금제도의 도입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98년 자민당은 주식시장 활성화 방안으로 미국의 DC형 기업연금인 ‘401k’를 도입하자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근로자의 퇴직금을 증시부양에 사용하겠다는 의도자체가 불순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확정급부형 연금제도의 문제점이 계속해서 부각됐다. 2000년엔 후생연금기금의 4분의 3이 적립부족에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2000년 4월1일부터 시작되는 사업연도부터는  글로벌기준을 적용한 ‘퇴직급부회계’가 적용되기 시작, 기업들의 입장에선 연금채무 부담이 더욱 커졌다.(궁금해요)PBO가 뭐죠 

또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공적연금 고갈에 대한 우려로 국민들 스스로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자조(自助) 노력의 필요성이 점차 거세졌다. 기업도산이 확대되면서 퇴직급여의 수급권 보호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이 같은 요구가 맞아 떨어져 근로자 스스로 연금운용을 책임지는 방식인 DC형 기업연금, 소위 ‘일본판 401k’가 2001년 10월에 도입됐다.

오우라 요시미쓰(大浦善光·사진) 노무라연금서포트앤드서비스 사장은 “기업측면에서 보면 퇴직급부회계의 도입으로 지금까지 비용인식만 했던 기업연금제도가 초장기채무(PBO)로 인식해야 했다"고 말했다. 또 "저금리 등 운용환경 악화, 경기후퇴에 따른 기업수익 저조와 맞물려 PBO 삭감은 최우선의 경영과제도 대두됐다”며 DC연금 도입은 불가피했다고 강조했다. 

오우라 사장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증대와 중도퇴직자 확대로 근로자의 입장에서도 DC제도의 니즈가 커졌다"고 말했다. 근로자가 자산운용의 책임을 지되, 직장을 바꿀 때 연금자산을 옮겨갈 수 있고, 회사 도산시에도 연금자산을 보존할수 있는 DC형 제도의 요구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DC형 연금제도는 기업형과 일반형으로 구분된다. 이중 기업형 DC연금의 승인규모는 2002년 6월 121개에서 금년 8월말 현재 1483개로 급증했다. 증가분중 560개는 적격퇴직연금에서 이행된 것이고, 기존에 연금제도가 없던 기업이 새롭게 시작한 경우도 436개였다. 

◇‘시행착오’깨닫고 과감한 개혁나서..한국에도 시사점  

일본은 또 지난 2002년 새로운 형태의 DB형 기업연금을 도입했다. 적격퇴직연금이 법인세법상 국세청의 관할을 받고 있고, 후생연금기금이 후생노동성의 관할하에 있어, 감독과 세제의 일원화의 필요성이 반영됐다. 후생연금기금의 대행반납 등의 영향으로 신(新) DB형 연금수는 2004년 3월 510개에서 금년 8월말 현재 1256개로 늘어났다. 
  
일본에선 중소기업들이 하나의 연금펀드를 만드는 ‘종합형’ 기업연금도 운용되고 있다. 하나의 연금규약 아래 몇 개에서 많게는 100여개의 중소기업들이 매달려 있는 형태로, 중소기업들은 이를 통해 ‘규모의 경제’ 효과를 볼 수 있다.

퇴직연금 운용사업자(금융기관)들은 관리비용 때문에 아무래도 개별 중소기업과의 거래를 꺼릴 수 밖에 없다. 중소기업의 입장에선 비용을 줄이고 보다 나은 서비스를 받기 위해 종합형을 선택하고 있다.

지난 8월말 현재 일본의 기업형 확정갹출연금수가 1484개인데 비해 확정갹출형을 도입한 기업수가 4906개라는 점은 종합형에 가입한 중소기업이 그 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서양에는 존재하지 않은 퇴직금제도를 오랜 세월 발전시켜왔다. 에도시대 봉공인에 대한 공로 보상적 성격에서 출발해 산업화 단계에선 숙련된 근로자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고령사회’로 진입한 지금은 공적연금을 보완하고 근로자의 노후소득보장을 구축하는 안전장치의 역할을 맡기려 하고 있다.

하지만 시행착오도 많았다. 기업연금을 수십년간 방치하다보니 적립부족과 수급권 문제가 심각하게 노출됐다. 일본은 늦게나마 잘못을 깨닫고 연금개혁에 과감히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퇴직연금의 1차적인 목적을 ‘적립보존’이라는데 입을 모은다. 

일본의 ‘시행착오’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 

* 협찬 : 대한투자증권, 마이애셋자산운용, 미래에셋증권, 삼성생명, 신한금융지주, 하나은행,             한국투자증권, CJ투자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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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움주신 분들 : 고광수 부산대 경영학과 교수, 권문일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류건식 보험개발원 보험연구소 재무연구팀장,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신기철 삼성화재 상무, 오영수 보험개발원 보험연구소장, 이순재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가다나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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