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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이 퇴장당한 축구판[생생확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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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무 기자I 2026.09.01 05: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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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축구 경기에서 가장 오래된 규칙은 오프사이드도, 핸드볼도 아니다. 상대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이다. 규칙을 집행하는 심판, 승리를 다투는 선수와 지도자, 경기장을 채우는 관중 모두가 이 암묵적 계약의 당사자다. 최근 한국 축구에서는 이 계약이 잇달아 파기됐다. 레드카드보다 먼저 퇴장당한 것은 존중이었다.

지난 22일 전북 현대와 울산 HD의 K리그 ‘현대가 더비’에서는 전북 이승우와 김현석 울산 감독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부상과 교체가 얽힌 혼란 속에서 고성이 오갔고, 코칭스태프는 뜯어말렸다. 전북은 울산이 시간 지연으로 오해했다고 주장했고, 울산은 이승우가 원정 팬을 향해 한 몸짓을 김 감독이 문제 삼았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경고를 받았지만 프로축구연맹은 별도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 규정상 사건은 종결됐지만, 도의적인 논란까지 소멸한 것은 아니다.

이승우는 “이기고 싶은 마음에 그랬다”고 했지만, 이기고 싶다는 이유로 예의를 버려도 되는 것은 아니다. 감독 역시 상대 선수의 태도가 못마땅했다면 심판과 경기 감독관을 통해 문제를 제기했어야 한다. 열정과 무례는 동의어가 아니다. 감정을 참지 못하는 것을 승부욕이라고 포장해서도 안 된다.

더 심각한 장면은 WK리그에서 나왔다. 지소연은 경기 중 심판진의 무선 교신에서 자신을 두고 월경을 언급하는 듯한 말을 들었다며 항의했다가 경고를 받았다. 이후 ‘생리’라는 직설어 대신 월경을 뜻하는 은어 ‘걸스데이’가 사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축구협회 심판운영팀은 지소연을 특정한 발언은 아니라고 했지만, 누구를 가리켰는지를 떠나 공식 경기 중 심판이 그런 표현을 사용한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그 심판이 같은 여성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선수의 말과 행동을 살피지 않고 ‘여성이니까 예민한 것’이라고 오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판들끼리 한 말”이라는 해명도 성립하기 어렵다. 경기장의 무선 통신은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 아니다. 더욱이 문제를 제기한 선수가 경고까지 받았다면 권력의 비대칭성도 살펴야 한다.

김병지 강원FC 대표와 박문성 해설위원의 공방은 또 다른 차원의 피로감을 남겼다. 강원 유소년 연수에 김 대표의 아들이 포함된 문제, 북중미 출장과 이른바 ‘칸쿤 외유’ 의혹, 축구협회 재직 시절 행적을 둘러싼 논쟁은 사실과 자료로 검증할 사안이다. 문제는 논쟁이 상대의 정치적 동기와 자녀 유학 등 가족사까지 소환하는 논점 일탈적 폭로전으로 변질됐다는 점이다.

의혹이 있다면 자료를 공개하면 된다. 범법 혐의가 있다면 수사기관에 맡기면 된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던져 놓고 대중에게 판단하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검증이 아니다. 말이 거칠다고 진실이 되는 것이 아니다. 유튜브 구독자가 많다고 주장이 사실로 바뀌는 것도 결코 아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명감독 알렉스 퍼거슨은 “팬들이 선수들에게 연봉을 준다. 팬이 없다면 축구는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축구가 팬에게 보여줄 것은 승부의 야성이지 인격의 황폐함이 아니다.

존중은 나약한 미덕도, 경기 전 악수로 소비하는 겉치례도 아니다. 경쟁이 야만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붙드는 축구의 규범적 인프라다. 한국 축구에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고함이 아니라 품위를 지킬 줄 아는 강인함이다. 존중을 되찾지 못하면 축구는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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