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강요하는 조직, 지워지는 피해자"[별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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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현 기자I 2026.01.03 11:28:56

■다양한 주제의 법조계 이야기
"피해자를 침묵시키는 조직의 언어들"
"직장 내 괴롭힘, 법은 있지만 보호는 없다"

[강서영 법무법인 원 변호사] 직장 내 괴롭힘을 언급하려는 이들에게 조직은 종종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넨다. “괜히 말 꺼냈다가 너한테 안 좋을 수 있어.” “그분이 개인적으로 친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우리 때는 그 정도는 그냥 넘겼는데.”

강서영 법무법인 원 변호사. (사진=원 제공)
이 세 문장은 피해자를 침묵하게 만드는 완벽한 장치다. 조직은 이를 근거로 사안을 무겁게 다루지 않아도 될 이유를 확보하고, 주변은 그 침묵을 ‘현명한 대처’로 포장한다. 문제는 사라지지 않지만, 말하지 않으면 없는 것처럼 지나간다.

그러나 ‘없는 것처럼’ 지나간 괴롭힘은 일터의 공기 속에 고스란히 남는다. 무언의 눈치, 피해 가야 할 동선, 불편한 사람과의 회의나 식사 자리. 괴롭힘은 사라지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조직 내 일상에 잔존한다.

그중에서도 성적 괴롭힘은 위계와 친밀함이 교묘히 결합된 형태로 나타나며, 젠더에 따라 그 양상과 피해의 밀도가 달라진다. 농담처럼 시작된 언행이 조직 내 평판과 커리어 전반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친밀함을 가장한 신체 접촉, 사적인 질문, 외모 평가, 음흉한 농담 등은 일상적이고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피해자는 한참이 지나서야 그것이 문제였음을 인지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민감하다’, ‘유별나다’는 낙인을 감수해야 한다. 괴롭힘은 사라지지 않고, 대신 말한 사람이 조직에서 지워진다.

법과 제도는 빠르게 정비되었지만, 실무 현장에서는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이 “불편한 이야기”로 취급된다. 외면하거나 축소하거나, 아니면 조용히 퇴사하게 하거나. 가장 필요한 것은 ‘문제를 제기할 권리’와 ‘그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구조’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한다.

괴롭힘을 신고한 사람이 “문제의 근원”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로 취급되는 구조도 여전하다. 조직의 신뢰를 깼다는 이유로 분란을 일으킨 사람처럼 낙인찍히고, 실질적으로는 배제되거나 고립된다. 실무상 이러한 사례는 매우 빈번하다.

피해자 보호보다 조직 안정을 우선시하는 태도는 ‘절차적 정리’로 귀결되기 쉽다. 성적 언동, 외모 평가, 사적인 메시지 등 ‘친밀함’을 빌미로 이루어지는 행위는 “그 정도는 다들 참고 넘긴다”는 말로 정당화된다. 그리고 그 불쾌함을 언어화하는 순간, 피해자는 ‘예민한 사람’으로 취급된다.

법률상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하는 행위임에도, 이를 문제 삼는 데에는 여전히 상당한 용기와 희생이 필요하다. 오늘도 누군가는 그 현실 속에서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

괴롭힘 대응은 단지 법률적 사건 처리에 그쳐서는 안 된다. 조직 전체가 권력 구조, 커뮤니케이션 방식, 리더십 문화 전반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하며, 피해자를 보호하는 동시에 괴롭힘이 발생한 환경을 분석하고 개선하는 과정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그것이 실질적 의미의 대응이며, 현장 법률가가 이 주제를 지속적으로 다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25년, 이 칼럼을 통해 수많은 실무 현장에서 마주한 괴롭힘의 구조, 대응의 한계, 침묵의 압박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 감사했다. 2026년에는 괴롭힘을 넘어, 일터와 노동을 둘러싼 더 다양한 현실을 꺼내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 안에서 함께 고민하고, 질문하고, 바꿔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강서영 변호사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변호사시험 2회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로스쿨 방문학자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현)부산여성가족과 평생교육진흥원 자문위원 △(현)보건복지부 고문변호사 △(현)법무법인 원 소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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