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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은 하나, ‘조합원 총회 결의 없이 체결된 환불보장약정이 유효한가’였다.
1심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조합원이 낸 분담금은 조합원 전체의 공동 재산, 즉 ‘총유물’이다. 따라서 이를 환불해주는 약정은 총유물을 처분하는 행위이므로 반드시 조합원 총회의 결의를 거쳐야 한다. 총회 결의가 없었으니 환불 약정은 무효이고, A씨가 이 무효인 약정을 믿고 계약을 체결한 만큼 주된 계약인 조합가입계약까지 전부 무효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항소심) 법원의 판단은 180도 달랐다. 환불보장약정은 당장 조합의 재산을 처분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돈을 돌려주겠다’는 채무 부담 약속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즉, 현존하는 총유물을 직접 처분하는 행위가 아니므로 총회 결의가 없어도 유효하다는 것이다. 결국 2심은 1심 판결을 뒤집고 추진위의 손을 들어주었다.
결국 사건은 대법원으로 향했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1심 법원의 논리와 맥을 같이하는 판단이었다.
대법원은 ‘총유물 그 자체의 처분이 따르는 채무부담행위는 총유물의 처분행위에 해당한다’는 기존 법리를 재확인했다. 조합원 분담금은 조합 사업을 위해 용도가 특정된 총유물이며, 이를 조건부로 반환하겠다는 약정은 결국 총유물인 분담금 자체의 처분을 수반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단순히 미래의 빚을 약속하는 행위로 가볍게 볼 수 없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러한 환불보장약정은 조합원 총회의 결의를 거치지 않았다면 무효다. 그리고 이 무효인 약정이 조합 가입 여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였다면, 민법 제137조에 따라 조합가입계약 전체가 무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안심보장확약서의 법적 성격을 명확히 규정했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이러한 약속이 단순히 미래에 빚을 지겠다는 약속(채무부담행위)이 아니라, 조합원 전체의 공동 재산에 직접 손을 대는 행위(총유물 처분행위)라고 못 박은 것이다. 이로 인해 조합 집행부가 총회 결의 없이 단독으로 환불을 약속할 수 있는 여지는 원천적으로 차단되었다.
둘째, 이는 결과적으로 예비 조합원의 권리를 지키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예비 조합원들은 추진위의 설명과 직인만 믿고 계약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법원이 그들의 손에 검증할 권리라는 방패를 쥐여준 셈이다. 대표의 직인이나 사무실의 설명만 믿고 거액을 맡기는 시대를 끝내고, 적법한 총회 결의라는 객관적 증거를 요구할 권리가 생긴 것이다.
결국 이 판결은 ‘총회 의사록을 확인하라’고 명확하게 행동지침을 제시했다. 조합 가입을 고민하고 있다면, 이제는 달콤한 약속의 내용보다 그 약속이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를 먼저 따져 물어야 한다. 법이 마련해 준 이 튼튼한 방패를 제대로 사용할 때, 비로소 안심이라는 단어는 빈말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다.
■하희봉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4회 변호사시험 △특허청 특허심판원 국선대리인 △(현)대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고등법원 국선대리인 △(현)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현)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