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 어느 하루… 그 역사를 거닐다

조선일보 기자I 2008.01.17 13:09:00

[당일치기 여행] 강원도 ''문막''

[조선일보 제공] 요즘 세간에서는 '한반도 대운하'라는 거대한 토목사업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모양이다. 가장 먼저 건설한다는 경부 대운하의 터미널이 들어설 곳들은 벌써부터 부동산 투기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남한강 사찰터 두 곳, 강원도 원주 법천사터와 거돈사터는 경부 대운하의 터미널이 들어설 지점과 매우 가까이 있다. 한강을 이용한 물길이 '고속도로'로 이용되었던 시절에이 절터들은 '교통의 중심지'로 꽤 번영을 누렸다.

내륙 수운(內陸水運)의 쇠퇴로 한적한 시골이 되어버린 이곳들이 21세기에 와서 다시 깨어나려 하는가 보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12:00 문막 도착, 점심 식사

늦잠도 자면서 느지막이 채비를 차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문막으로 가자. 옛날부터 원주로 들어가는 통로 역할을 했던 문막은 강원도 일대에서 보기 드문 너른 벌판을 갖고 있다. 이곳을 통해 섬강이 남한강 쪽으로 흘러간다.

우선 배를 든든히 채우자. 문막에서 섬강을 따라가는 49번 지방도로로 내려가면 포진리에 토속밥집 '록야'(033-735-1879· www.rockya.co.kr)가 있다. 실내에 벽난로가 있어 따뜻하다. 전국의 이름난 약수를 다 가져다 밥을 지어보았더니 경북 청송의 달기약수가 가장 좋다 하여 달기약수를 공수해 약수돌솥밥을 짓고 있다. 약수돌솥밥 1만5000원, 대나무통밥 1만2000원, 돼지석쇠구이 2만원. 문막읍내의 '대감집'(033-734-5637) 보리밥(5000원)은 강원도 토속음식의 내음이 느껴진다. 문막IC에서 가까운 '록산전주밥상'(033-735-3534)의 한정식(9900원)은 풍성한 반찬을 즐겨볼 만하다.
▲ 위풍당당 가지를 뻗고 있는 거돈사터의 느티나무.

13:10 흥원창터, 머리로 그려보는 항구 풍경

강원도 횡성과 원주 일대를 적시며 내려온 섬강이 남한강과 만나는 합수(合水) 지점에 흥원창터(興元倉址)가 있다. 고려~조선시대를 거치며 강원도 남부 지방의 세곡을 수도로 실어 나르는 대형 창고와 항구가 있었던 동네다. 요즘 같으면 주요 고속도로 두 개가 만나는 교통의 중심지라고 할까. 하지만 지금 남은 흔적이라곤 전혀 없고, 편편한 큰 바위에 '흥원창'이라고 쓴 글씨와 작은 정자, 그 옆의 안내문 뿐이다. 그저 당시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밖에.

흥원창에서 부론면 소재지까지는 강을 따라 긴 둑이 만들어져 있고 그 위로 길이 나 있다. 강 바람 맞으며 걸어가는 산책길로 훌륭하다.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까지 내려다보인다. 섬강이 남한강으로 들어오면서 강변 산을 깎아 내 기암절벽을 만들어냈고, 건너편으로는 여주 점동면의 야트막한 산과 강변 풍경이 눈을 편안하게 한다. 이미 150여년 전에 쇠퇴해 버린 이곳이 이제 와서 다시 대운하 터미널의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된다니 참 역사는 돌고 도는 건가 보다.

13:50 법천사터, 항구도시의 거대한 배후 사찰

부론면소재지에서 시작되는 법천천을 따라 상류 쪽으로 1.5㎞ 가면 '법천사터(法泉寺址)'가 나온다. 흥원창터에서 3㎞ 정도 거리다. 과거 내륙 수운이 활발했던 시기에 남한강으로 바로 흘러 들어가는 법천천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면 법천사에 닿았다. 예나 지금이나 경제적으로 번영하는 중심지에 종교의 중심지도 있는 법. 법천사는 남아 있는 터의 규모로 보나 지금 전하고 있는 유물·유적으로 보나 당대의 대표적인 사찰이라 할 만한 위용을 자랑한다. 지광국사 부도비(智光國師浮屠碑·국보 제 59호)가 있는 산 중턱에서 내려다보면 지금의 마을 중심부에 절 입구임을 알리는 당간지주(幢竿支柱)가 서 있는데, 이 당간지주에서부터 산 중턱까지 마을 전체라고 할 만한 곳이 모두 사찰의 영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발굴조사 중인 현장에서 상상의 나래를 한번 펴 보자.

현장의 대표적 유물인 지광국사 부도비도 화려하고 빼어나지만 그 옆자리에 있어야 할 지광국사 현묘탑(智光國師玄妙塔·국보 제 101호)은 이국적이면서 화려한 조각 때문에 대단히 아름다운 부도로 소문나 있다. 그 빼어남 때문에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에 의해 일본 오사카(大板)로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와 경복궁 앞에 터를 잡았지만, 전쟁 때 폭격을 맞아 산산조각이 나 '봉합수술'을 받기도 했던 기구한 유물이다. 같이 있었다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주변에 흩어져 있는 광배(光背), 연화문 대석(蓮花紋臺石), 각종 석재와 파편들도 우수한 조각 솜씨를 보여주고 있으니 찬찬히 살펴볼 일이다.

15:30 거돈사터(居頓寺址), 불상 없는 대좌에서 상상하라

법천사터에서 다시 부론면 소재지로 들어온 다음 531번 지방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황학산을 넘어가면 정산리이다. 부론면 정산3리 끝자락 거돈사터에서는 법천사터와 달리 절의 규모나 배치를 한눈에 손쉽게 알아볼 수 있다. 완만하게 경사진 곳에 잘 다듬어진 석축을 만들어 절터 전체를 평평하게 닦아 사찰 영역을 분명하게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석축 중간에 있는 계단을 밟아 오르면 절터 전체가 트여 있어 시원스러운 '눈맛'을 느낄 수 있다.

거돈사터에서는 두 가지가 인상적이다. 우선 석축 모서리에서 석축과 한 몸이 되어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다. 거돈사터를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안내라도 하듯 입구에서 머리를 쳐들고 1000년 터를 지켜온 매력적인 나무다.

두 번째는 금당터에 남아 있는 거대한 불대좌(佛臺座·불상을 올려놓는 대). 한창 때에는 큰 불상을 올려놓았을 이 화강암의 불대좌는 머리 위의 주인을 잃고 저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폐사터의 비애와 고요함을 이렇듯 잘 보여주고 있는 인상적인 유물도 없다. 정형의 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온갖 추측과 상상이 허용되는 빈 공간의 미학이 거돈사터를 찾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사찰터 맨 뒤편에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 와다 유지(和田雄治)가 자기 집 정원에 갖다 놓았다가 해방 후 경복궁 앞을 거쳐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터를 옮긴 원공국사승묘탑(圓空國師勝妙塔·보물 제 190호)의 재현품이 지난해 11월말에 들어섰다. 원본이 오지 못해 복사본이 대신 제자리에 돌아온 셈이다. 시야가 트인 절터를 거닐며 금당터 앞 삼층석탑(보물 제 750호), 원공국사 부도비(보물 제 78호) 등도 같이 돌아보자.

서울에서 문막까지

서울 강변역 동서울터미널(02-453-7710· www.ti21.co.kr)에서 안동, 원주, 상동행 등 문막 경유 시외버스를 이용한다. 첫차 오전 6시10분, 막차 오후 9시30분 하루 44회 운행, 배차 간격 약 20~30분, 1시간 20분 소요, 요금 6400원.

문막에서 흥원창터·법천사터·거돈사터

원주에서 문막을 거쳐 부론면 일대로 오는 55번 버스(1시간 간격·하루 19회 운행·요금 1100원·오전 5시25분~오후 7시55분)를 이용. 법천사터는 부론면 소재지에서 약 20분 걸어가거나 원주에서 문막을 거쳐 하루 2회 운행하는 송정행 55번 버스를 이용. 거돈사터는 하루 3회 운행하는 담암행 55번 버스를 이용, 종점 하차. 법천사터에서 가려면 부론면 소재지로 돌아와서 정산리행 55번 버스를 이용. 정산리 입구까지는 하루 7회 운행, 정산리 입구에서 거돈사터까지는 2.5㎞. 돌아가는 길에는 거돈사터에서 문막까지 다시 55번 버스를 이용한다.

자가용으로

영동고속도로 문막IC→문막 지나 부론 방면 49번 지방도로→흥호리 지나 흥원창터→1.5㎞ 진행 후 부론면 소재지 들어가기 직전 좌측 길→1.3㎞ 진행 후 법천사터 표지를 보고 우회전해 200m 들어가면 법천사터→부론면 소재지→충주 방면 531번 지방도로→정산리 입구에서 좌회전 후 2.5㎞ 진입하면 거돈사터

부론면 사무소 (033)737-5505

당일치기 여행 추천 코스

문막~점심식사~흥원창터~법천사터와 법천천~거돈사터


▶ 관련기사 ◀
☞사랑이 이뤄지는 그 섬에 가고 싶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