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 금융]⑤헛도는 성장동력 녹색금융

좌동욱 기자I 2011.04.01 09:46:09

금융위 "녹색예금 활성화하겠다" 대통령 보고..예금가입·투자실적 제로
녹색인증기업·사업 총 33개에 불과..녹색자금 조성해도 투자할 곳 없어
아직 충분한 녹색산업 시장 형성안돼..정부 성과조급증에 녹색버블 우려

[이데일리 좌동욱 기자] 세금을 깎아주는 금융상품은 늘 인기다. `세테크`를 노린 시중자금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녹색예금만은 예외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시중자금을 녹색산업으로 끌어올 목적으로 녹색예금에 부과하는 이자소득세 15.4%(주민세 포함)를 모두 면제해주고 있지만 법·제도 개선 1년이 지나도록 은행들은 상품 출시 자체를 미루고 있다.

요일제 자동차보험도 보험 분야의 대표적인 녹색상품이다. 요일제 자동차보험 가입자는 보험료를 약 8%를 할인받을 수 있고 지자체 별로 자동차세금, 공영주차장 요금 등 부가혜택을 받을수 있다. 그러나 요일제 보험 가입자는 지난해말 기준 1만5000건에 불과하다. 개인용 자동차보험 가입자 1300만명의 0.1% 수준이다.

이명박 정부가 범정부 차원에서 야심차게 추진중인 녹색금융이 `구호`에 그치고 있다.
 
녹색금융은 온실가스와 환경오염을 줄여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자는 녹색성장을 지원하는 금융활동을 말한다. 세계 각국에서 녹색금융이 화두로 떠오르는 것은 이익 일부를 사회에 돌려준다는 공공적 측면 뿐만 아니라 석유자원 고갈에 따라 향후 성장성이 높은 산업에 자금을 원활하게 지원해야 한다는 경제적 이익을 따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도 녹색산업 활성화를 위해 그동안 수차례 금융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올해 신년 연설에서는 "녹색금융을 활성화하겠다"고까지 언급했지만 아직 성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면밀한 사전 검토없이 정책을 입안·집행하는 탁상행정과 의욕만 앞선 전시행정이 도리어 자생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 녹색금융의 싹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 이자소득세 전액 깎아주는데도 예금·펀드 가입자 `제로`

정부는 2009년 7월 7개 관계부처 공동으로 `녹색투자촉진을 위한 자금유입 원활화 방안`(투자촉진방안)을 발표했다. 녹색예금·채권·펀드에 부과하는 이자소득세나 배당소득세를 면제해 시중 유동자금을 녹색산업에 끌어들이자는 구상도 이 방안의 주요대책 중 하나다.
 
국회는 2009년말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하고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까지 제정해 정부 정책을 뒷받침할 법·제도를 정비했다. 금융위원회도 지난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제 1과제(기업투자 활성화)중 하나로 "녹색예금·펀드 등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활용해 녹색산업 자금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지난해 한해동안 녹색예금·펀드·채권을 통털어 자금지원 실적은 제로다. 시중은행들은 "현재와 같은 법·제도하에서 녹색예금 출시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관련 법령에 따르면 은행들은 비과세로 끌어모은 녹색예금의 60%를 녹색산업에 투자해야 한다. 녹색산업으로 분류되는 투자 대상은 녹색인증제도에 따라 녹색사업인증이나 녹색전문기업으로 인증받은 곳이다. 지난해 4월13일 법과 시행령 고시 개정 작업이 완료된 후 지난달 24일까지 녹색사업인증은 9개, 녹색전문기업은 24개에 불과하다. ★표 참조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거 경험칙으로 볼 때 녹색기업 풀(pool)이 최소 1만개 정도는 있어야 국내 금융권에서 1조원 가량을 원활히 공급할 수 있다"며 "하지만 지금 속도로는 100개를 넘기는데도 몇년은 걸릴 것 같다"고 꼬집었다.

지난해부터 녹색채권 발행과 녹색펀드 운영을 준비해왔던 산업은행도 채권 발행이나 투자운용 실적이 전무하다. 산업은행은 이미 녹색채권(녹색산금채) 발행을 위해 전산시스템을 개편했고 지난해 10월2일 1001억원 규모의 펀드등록까지 마쳤다. 그러나 녹색예금처럼 운용자금의 60%를 녹색산업에 투자해야한다는 규제가 걸림돌이었다.

또 다른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녹색금융상품이 투자제한 조건을 맞추지 못하면 감면받은 세금을 금융회사들이 대신 토해내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라며 "법률대로라면 녹색산업투자비율(60%)에 1%라도 미달하면 감면받은 세금을 전액 추징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같은 문제점을 뒤늦게 파악,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민간 건의사항을 수렴해 지식경제부와 녹색위원회 중심으로 녹색인증제도 개선을 협의 중"이라며 "공청회를 거쳐 4월부터 개선된 제도를 운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의욕만 앞세운 탁상행정..충분한 사전 검토 선행돼야

하지만 제도개선 방침에도 불구하고 민간 금융회사들은 녹색금융에 회의적이다. 시중은행들은 "의욕이 앞서 내 실정에 맞지 않는 외국사례를 끌어온 대표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부가 녹색인증제도를 벤치마킹한 제도는 네덜란드의 그린펀드스킴(Green Fund Scheme)이다. 정부는 2009년 투자촉진방안 발표시 네덜란드가 이제도를 통해 1995년부터 11년간 4500개 프로젝트에 80억 유로를 투자했다고 강조했다. ★그림 참조 

 
그러나 네덜란드의 이자소득세는 60%로 국내 15.4%의 약 4배다. 우리나라의 세금 혜택이 적으니 예금자나 대출자가 공유할 수 있는 금리 혜택의 파이도 작을 수 밖에 없다. 모 시중은행이 시뮬레이션한 바에 따르면 비과세로 대출기업에 줄 수 있는 금리 혜택은 50bp(1bp=0.01%포인트) 정도다. 영업점장 전결로 우대할 수 있는 금리가 100bp(1%포인트)인데 굳이 복잡한 인증절차를 통해 대출을 받겠다는 기업이 있겠냐는 지적이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도도 정부가 의욕만 앞세워 충분한 사전검토없이 추진하는 녹색금융 사례로 꼽힌다. 배출권거래제는 쓰레기종량제 처럼 배출권이라는 쓰레기봉투에 담아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도록 만드는 제도로 주로 유럽권 국가에서 활성화돼 있다.

정부는 2009년 녹색투자촉진 방안에서 2011년까지 거래소를 설립해 시범거래를 시행하고 2012년까지 배출권시장 개설을 준비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수출입은행 등을 중심으로 2009년 10월까지 1000억원 규모의 공공탄소펀드를 설립, 탄소배출권 경험을 축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 주도로 배출권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정책방향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수출입은행을 중심으로 운용하겠다는 탄소펀드도 2009년 하반기 1000억원 규모로 설립한 이후 1년6개월이 지다도록 투자 실적이 전무하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배출권거래제가 기후변화의 유일한 방안이 아니다"며 도입의사를 번복했고 중국은 배출권 거래제 도입에 소극적이다. 일본은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무기한 연기했다. 
 
◇ 민간 자율·경쟁력 우선 높여야..무분별한 정부 지원 녹색버블 우려

상대적으로 녹색산업에 자금을 원활하게 공급하고 있는 공공기관들의 사례는 법·제도에 앞서 민간 금융회사들의 자율성과 경험을 확대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부는 2010년 7월 `녹색경쟁력 확충을 위한 재정·금융 지원 강화방안`을 통해 정책금융공사를 녹색금융 중추기관으로 선정하고 정책공사를 중심으로 총 3조원 규모의 신성장동력펀드와 500억원 규모의 녹색산업투자회사를 설립, 녹색산업 투자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성장동력펀드는 투자대상을 녹색산업에 한정하지 않고 다른 경쟁력 있는 성장산업으로 확대했다. 녹색산업 투자대상도 녹색인증제와 무관하도록 설계했다. 신성장동력펀드는 지난해 12월 공사 자금과 민간자금을 합쳐 총 3조700억원 규모로 설립돼 지난 3월23일까지 총 3855억원의 자금을 집행했다. 집행된 자금의 약 30% 정도가 녹색산업이다. 정책공사는 지난해 총 7039억원의 자금을 녹색산업에 지원했다.  올해는 1조원으로 늘릴계획이다. ★표 참조

공공기관들과 민간회사들은 녹색시장이 충분히 형성되기 전에 무리하게 녹색금융을 추진할 경우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 녹색금융에 대한 성과를 빨리 내야 한다는 정부측 태도도 부담스러운 눈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시장이 형성되기 전 성과를 내야한다는 조급증을 경계해야 한다"며 "범정부차원의 섣부른 지원책은 과거 IT버블처럼 녹색버블를 초래할 수 있다"고 털어놨다.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도 "태양광산업 전망이 밝은 것처럼 비춰지자 제조업체들이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어 쏠림현상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대표적인 태양광업체인 네오세미테크는 녹색산업 선두주자로 부각되면서 시총 4000억원대로 급성장했지만 분식회계가 적발되면서 지난해 8월 상장폐지됐다.

이성남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과거 네오세미테크의 산업은행 대출은 연 20~30억원 수준이었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녹색성장을 아젠다로 삼은 이후 대출규모가 20배나 급증했다"고 비판했다.

민간 금융회사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다.
 
구정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스템을 갖춰도 금융회사들의 의지가 없다면 녹색금융이 활성화될 수 없다"며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수익을 창출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10년전 네덜란드 금융회사들도 녹색금융에 대해 부정적이었지만 결국 10년 후 수익성 있는 상품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녹색금융으로 성과를 내고 있는 대표적인 민간회사가 메리츠화재다. 메리츠화재는 `레드오션`화된 자동차보험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2010년 9월 요일제 보험에 필수적으로 장착해야 하는 운행기록확인장치(OBD) 장치를 무상임대해주고, 올해 1월부터 요일제 자동차보험료를 선(先)할인하는 등 공격적으로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보험료 선 할인상품 출시 후 월 1500명 안팎의 가입자 수가 두배가량 늘었다"며 "다른 보험사들도 메리츠화재를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말 기준 메리츠화재의 요일제 자동차보험 가입자수는 전체 요일제 자동차보험의 약 83%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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