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위기 1년)①더 깊어지고 강력해졌다

김윤경 기자I 2008.07.29 11:30:00

메릴린치, 또 헐값에 지분 매각..월가 `쇼크`
투자은행 CDO 손실 더 드러날 듯
문제의 근원 주택시장 침체 `끝이 안보여`

[이데일리 김윤경기자] 글로벌 신용위기가 1주년을 맞고 있다. 사태가 진정되기는 커녕 부실의 골은 더욱 깊어졌고, 금융업종과 시장은 물론, 실물 경제에까지 흠집을 입히면서 번지고 있는 모습이다. 방임주의를 표방했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구원투수로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문제의 근원인 미국 주택 시장의 회복은 요원해 보이고, 금융 업종과 시장의 동요도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신용위기는 어떤 모습으로 금융 업종 및 시장,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 이를 구제하기 위한 정부와 중앙은행 등의 노력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 지 1년된 신용위기의 현 상황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 신용위기, 1년 지났건만.. 

지난 해 6월. 서브프라임 사태가 한 풀 꺾이는가 했던 시점에서 베어스턴스가 갑자기 운용하고 있던 두 개 헤지펀드를 청산한다고 밝혔다.
 
당시만 해도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읽지 못했던 시장은 8월9일(현지시간) 프랑스 최대 은행 BNP파리바가 운용중인 3개 자산유동화증권(ABS) 펀드 환매를 중단한다고 밝히자 비로소 맞닥뜨리고 있는 위기를 감지했다. 
 
이것이 바로 글로벌 신용위기의 도화선이 됐다.

헤지펀드나 투자은행들이 운용하고 있는 펀드들은 서브프라임 관련 파생상품에 상당한 투자를 해 왔고, 서브프라임 부실이 우려되자 환매 요청이 줄을 이었다.
 
이를 감당하지 못한 펀드들은 환매 중단을 선언하고 나선 것. 마진 콜(Margin call·증거금 요구)을 맞추기 위해 펀드들이 헐값에 자산을 팔아치울 수 있을 것이란 불안감이 전염병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돈의 흐름이 중단될 것이란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단기 시장 금리는 폭발적으로 뛰어 오르기 시작했고, 리스크를 어떻게라도 피해보려는 투자자들이 늘어나면서 주식 시장에서도 매도세가 폭발했다.
 
글로벌 외환 시장에선 국가별 금리차를 이용해 이익을 얻는 소위 `캐리 트레이드`가 달러화 자산에 대한 투자를 급격히 청산하면서 달러화 가치는 추락했다. 관련기사 ☞ (글로벌 신용위기)①서브프라임 `허리케인`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던 투자은행들의 손실이야 불 보듯 뻔한 일. 자산담보부증권(CDO) 등으로 인한 이들의 `막대한` 손실은 올해 초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빙산의 일각`인 듯 보인다.
 
또 이들 투자은행은 국부펀드에 손을 내밀거나 우량 자산도 내다 파는 등 구멍을 메우기 위해 안간힘이다.
 
◇ 메릴린치, 월가를 놀라게 하다..헐값에 또 지분 넘겨

우리나라 한국투자공사(KIC)와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홀딩스에서 이미 투자를 받은 메릴린치는 28일(현지시간) 신주 발행을 통해 85억달러를 더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테마섹이 34억달러를 대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테마섹은 주당 48달러에 투자했지만, 28일 메릴린치 종가는 24.33달러. 더 헐값에 지분을 또 넘긴 것이다.  


메릴린치는 이에 앞서 블룸버그 지분을 팔아 약 50억달러도 챙기기로 하기도 했다.
 
메릴린치의 추가 자본 조달 소식은 월가를 놀라게 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12일 전만해도 존 테인 최고경영자(CEO)는 월가 애널리스트들에게 모기지 증권 보유가 줄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리먼 브러더스 홀딩스는 자산 운용사 누버거 버만을 팔기로 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투자은행들의 자산 상각과 손실이 올해 상반기까지 마무리될 것이라던 막연한 낙관론은 이제 자취를 감추고, 하반기에도 적자를 면치 못할 것이란 비관론이 고개를 드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호주 2대 은행인 오스트레일리아 & 뉴질랜드 뱅킹 그룹(ANZ)은 회계연도 하반기(2008.4~2008.9) 신용시장 경색 때문에 약 110억달러의 손실을 낼 것으로 예상되며, 주당순이익이 20~25% 급감할 것이라고 28일 밝혀 충격을 줬다.
 
아직 손실을 제대로 계상해 자산 상각에 나서지 않은 보험사들이 새로운 뇌관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보이지 않았던 손실이 구체화될 경우 사태가 얼마나 더 커질 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관련기사 ☞ 신용위기 폭탄, 이번엔 보험社서 터질까 
 
채핀 힐 어드바이저스의 대표 캐시 보일은 "진짜 걱정은 위기가 끝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월가는 최악의 상황은 지났다고 여기고 싶어하지만 당분간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디맥 등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은행들이 파산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전문가들은 금융 업종이 회복될 때까지 더 많은 은행들이 무너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신용위기로 최근 들어 모기지 및 신용카드 대금을 체납하는 사례가 서민이 아닌 부유층에서도 나타나고 있고, 금융사들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 근원은 계속되는 주택시장 침체..`끝이 안보인다`
 
금융 업계와 시장이 이렇게 망가지고 있는 근원은 무너지고 있는 미국 주택 시장이다. 
 
최근 판매 현황이나 주택 가격 등 지표만 봐도 여전히 바닥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은 폭락하고 있지만 매기가 없다. 모기지 연체가 늘어 모기지 대출을 해준 금융사들에게 압박이 되고 있고, 자산 효과가 급감하면서 소비가 위축되면 미국 경제 전체가 흔들릴 것이란 우려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한 마디로 `사면초가`다. 관련기사 ☞ 美 주택시장 `다시 꾸는 악몽`
 
국제통화기금(IMF)은 28일 `글로벌 금융 안정 보고서`를 통해 비관적 전망에 쐐기를 박았다. 미국 주택시장 침체의 끝이 보이지 않으며, 신용상황도 악화돼 경제 성장 둔화가 오래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미국 모기지 연체율과 주택차압건수의 가파른 상승, 주택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 등이 우려를 키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주식시장 하락이 은행의 자본 조달을 어렵게 만들고, 세계 경제의 하강 위험을 증가시키고 있다"며 "투자가들은 은행권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으로 인해 은행권의 경쟁력 회복을 위해 필요한 자본 투자를 꺼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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