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런던의 폭락으로 야기된 청나라 증시 폭락
과열국면을 아슬아슬하게 이어가던 런던시장의 천연고무 주식이 1910년 6월, 돌연 내리막길에 접어들기 시작한다. 당시 전세계 금융중심인 런던에서 이 소식이 전해짐과 동시에 상하이의 천연고무 주식 역시 급락한다. 한때 1675량에 달했던 한 천연고무 주식이 105량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2000년, 코스닥 광풍 이후 조정장에서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은 주식들이 바닥없이 추락한 것을 상상하면 될 듯 하다.
천연고무 주식 중 약 80%는 중국 상인들이 사들였기에 서양인들보다 중국 상인들의 손실이 상대적으로 컸다. 런던시장의 소식을 미리 접한 서양인들은 한발 앞서 주식을 내다팔기 시작했고 당시 많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중국 상인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증시의 큰 손이었던 정원전장(正元錢莊)의 천이칭(陳逸卿)은 200만량, 쟈오캉전장(兆康錢莊)의 다이쟈바오(戴嘉寶)는 180만량의 손실로 인해, 1910년 7월 21과 22일 잇따라 부도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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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장들의 부도와 상하이 관부의 자금지원
증시 폭락 후, 천연고무 주식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했던 8개 전장(錢莊)이 연쇄 도산, 당시 상하이 금융가는 공황상태가 된다. 이들이 외국은행에서 빌린 돈은 139만량. 이때 91개사 전장 중 천연고무 주식 폭락으로 인해 수많은 전장이 연쇄도산했고 문제가 발생한 대출금액은 2000만량에 육박했다. 그 무렵 청나라의 1년 재정수입이 약 8000만량이었으니 당시의 부실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상하이 금융가가 이때만 해도 붕괴 국면까지는 가지 않았다. 상하이 금융계의 거두인 웬펑룬은호(源豊潤銀號), 이샨웬표호(義善源票號)가 여전히 건재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실력은 청말 중앙은행 역할을 하던 대청은행(大淸銀行)에 뒤지지 않아, 이들만 쓰러지지 않는다면 유동성 위기 크게 확산되지 않고 진정될 수 있었다. 웬펑룬과 이샨웬은 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본격적인 시장자금 지원에 나섰고 관부 역시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당시 상하이의 행정장관인 차이나이황(蔡乃煌)은 청 정부가 지급보증을 서고 중국 금융기관이 이들 외국은행으로부터 350만량을 빌리도록 긴급 조치한다. 1900년대초, 상하이 은행계를 주름잡고 있던 외국은행은 HSBC, 씨티은행 등의 9개 외국은행. 이들 역시 시장금리에 못미치는, 연간 4%에 달하는 저리로 자금을 중국 금융기관에 수혈했다. 이런 조치들에 따라, 9월이 오기전까지는 위기국면은 진정되는 것처럼 보였다.
◇ 청나라의 현실인식 괴리로 위기는 악화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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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 때는 전장들이 연쇄 도산한 지 두달이 안된 시기였고, 차이 행정장관은 청 조정에 중앙은행인 대청(大淸)은행이 임시로 200만량을 대신 지불해 줄 것을 요청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던 청 조정은 차이 행정장관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조정을 우롱한다며 대노한다. 동시에 장차 면직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즉시 분담금액을 보내도록 명령한다.
어쩔 수 없는 처지가 된 차이 행정장관이 웬펑룬은호(源豊潤銀號) 등으로부터 200만량에 달하는 자금을 회수하고 이때부터 사태가 급박하게 진행된다. 같은해 10월7일, 외국은행들은 21개 상하이 전장들의 어음지급을 거부. 다음날인 8일에는 웬펑룬이 부도처리된다. 베이징, 텐진 등에 소재한 웬펑룬 지점들이 연쇄 도산되면서 위기는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다음해 3월 이샨웬표호(義善源票號)가 부도를 맞으면서 사태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내우외환에 시달리던 청 조정이 국가 경영감각을 상실한 것이 위기 확산의 주요 원인이었다. 천연고무 투기가 과열될 때도 청 조정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증시폭락 후 정원전장(正元錢莊) 등이 부도났을 때만 해도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청 조정이 차이 행정장관의 건의를 무시하고 오히려 그에게 압력을 가하면서 사태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결국 상하이 전장의 반이 넘는 48개 전장이 연쇄 도산을 맞고 증시폭락으로 인한 유동성 위기가 중국 전역으로 확산된다.
이는 쇠퇴해가던 청나라에게 결정타가 됐고, 이샨웬이 부도난 지 7개월 후인 1911년 쑨원(孫文)을 중심으로 한 신진세력이 신해혁명을 일으키면서 청나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게 된다.
(글쓴이 김재현 : 상하이 교통대학 기업금융 박사과정, 前 우상투자자문 연구원
email: zorba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