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비는 여유롭다. 경쟁을 피할 수 없지만, 즐길 줄도 안다. “옛날엔 바람이 오면 맞섰지요. 꺽이면 지는 줄 알았고, 지면 죽는 줄 알았거든요. 지금은 바람이 불면 그냥 지나가라고 비켜줍니다” 물론 덜 치열한 것도, 덜 노력하는 것도 아니다. 비는 가수가 아닌 도(道)를 틔운 도사처럼 말한다.
비는 육체적으로도 더욱 완벽해졌다. 아쉽게도 그의 복근은 보지 못했지만 옷을 입어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상체의 근육과 상하체간의 완벽한 조화는 달라지지 않았다.
비는 잘 알다시피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유명 가수의 백 댄서로 연예계에 데뷔해 춥고 배고픈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그에겐 불우한 시절의 상흔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어두운 구석이 없다는 얘기다. 남이 들으면 찡한 얘기도 마치 남 얘기 하듯 한다. “다시는 배고프지 않기 위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며 “지금도 밥 안주면 일 안해요”라며 웃는 정지훈. 돈이 없어 굶어봤다는 뜻이다. 듣고 있는 사람이 뭉클해져, 그의 말에 선뜻 맞장구 치기 힘들다.
가수 비, 아니 인간 정지훈을 만났다. 사실 기자는 음악에 대해선 문외한이다. 비가 추구하는 음악적 장르가 어떤 것인지도 정확히 모른다. 그런데 기자가 잘 아는 후배 여기자가 “비는 정말로 100% 완벽한 인간이예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 후배 여기자는 대한민국 최고 학부를 나와서, 기자가 된, 똑똑하고 비판정신 투철한 여성이다. 이런 여성이 완벽한 인간이라고 평가한 비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마침 비가 5집 앨범 판매를 앞두고 미디어와 만나는 시간과 공간을 허락해주었다.
비는 2002년에 ‘나쁜 남자’라는 타이틀 곡으로 데뷔했다. 국내에선 일찌감치 스타가 됐다. 탁월한 춤 실력, 스타답지 않은 겸손함과 성실함, 연기에 대한 집념 등도 스타 탄생을 도왔다. 곧 중국 일본 등으로 활동 무대를 넓혔지만 비의 도전은 아시아에 머물지 않았다. 지난해 미국 헐리웃으로 건너갔다. 그의 미국 영화계 데뷔작은 스피드 레이서. 주연도 아니었고 흥행에 성공하지도 못했으나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최근 워쇼스키 형제와 닌자 어새신을 찍었다. 내년 개봉 예정인 이 작품에서 비는 주연을 맡았다.
가수 비의 위력은 회사내에서도 대단했다. 비를 인터뷰했다는 소문이 사내에 돌자 평소 잘 만나지 못하던 후배 여기자(원래 기자들이 좀 까칠하다)가 굳이 내 자리까지 찾아와서 인사를 한다. 한참 딴 얘기를 하다가 불쑥 묻는다. “비는 한마디로 어떤 사람이예요” 그 후배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비는 말이야, 비오는 날 마주 앉아서 같이 술잔을 기울여보고 싶은 청년이야”
인터뷰를 끝내고 집에 가서 비의 노래를 혼자 들어봤다. 가수를 인터뷰했는데, 그의 노래에 대한 평가를 한 줄 정도는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기자의 강박관념(?)에서였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굳이 그런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앨범의 투톱인 레이니즘과 러브스토리, 노래의 색깔은 전혀 달랐지만 두 곡 모두 듣기에 거슬리지 않았다. 꼭 비의 팬이 아니더라도 듣는 이를 흡인하는 매력이 있다. 이 인터뷰가 비의 앨범 판매용이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의 평가는 자제한다.
이제 인간 정지훈의 인생과 노래와 춤과 연기와 그리고 그의 상처까지도 한번 만나보자. 그래서 키 185cm의 훤칠하고 실력있고 인간성마저 좋아보이는 이 청년의 매력에 한번 빠져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가수 비의 사진은 직접 찍지 못했다. 비 측에서 저작권 문제 때문에 허락하지 않았다. 인터뷰에 쓴 사진은 제이튠엔터테인먼트에서 제공했다.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앨범부터 얘기하자. 이번 5집 앨범에 실린 곡이 13곡인데, 자전적인 스토리여서 그런지 대단히 유기적으로 짜여진 느낌이다. 어떤 컨셉이었나.
“앨범의 제목이 레이니즘(Rainism)이다. 새로 만든 말이다. 비의 스타일과 비의 음악과 춤, 비의 모든 것을 즐겨보자는 컨셉으로 앨범을 꾸며봤다. 레이니즘과 러브스토리 두곡이 더블 타이틀로 들어갔다. 5집 앨범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내가 스스로 다 결정하고 다 만든 첫 작품이다.(박진영과 결별한 이후에 만든 첫 앨범을 뜻한다, 편집자주) 기존의 비와 다르지만 기존의 비와 다르지 않게 만들어야 했다. 13곡 중 8곡은 내가 직접 작사하거나 작곡했다. 장르별로 전문가들과 함께 작업했는데 댄스곡은 댄스 잘하는 분들께 맡겼고, 발라드는 발라드 전문가와 같이 작업했다”
-비에 대해선 타고난 춤꾼이다 이런 평가가 있지만 비의 노래는 대중의 잔상에 별로 남아있지 않다.
“나로서도 좀 아쉬운 대목이다. 예전의 이미지로 가수 비 하면 역시 비주얼 가수다. 퍼포먼스가 우선 생각나고 노래는 묻혔다. 그래서 이번에 나올 때는 노래를 위주로 하자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비주얼을 포기할 순 없으니 말 그대로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려고 했다. 이번 5집 앨범 들어보면 과거와는 생각이 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보컬에 대한 역량이 늘었다는 건가.
“4집을 마무리하면서 성량을 정말로 키워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주얼 가수라도 정확한 성량과 발음을 갖춰야만 가수로서 성공할 수 있다. 이번 5집 앨범에 3명의 트레이너와 함께 작업했다. 보컬을 잡아주고, 발성과 높낮이를 각각 훈련시켜 준 트레이너들이다. 4집까지의 앨범에서 내 노래가 숨소리와 가성으로 대중의 정서를 자극했다면 이번엔 가성과 육성을 왔다 갔다 한다. 한마디로 노래를 질러주는 맛이 있다”
-앨범 구성은 어떻게 되나.
"비주얼 곡이 5곡, 감성을 자극하는 곡이 6곡 있다. 친절한 음악도 있고, 작품성 있는 다소 불친절한 음악도 같이 있다. 또 무대위에서 어울리는 음악도 있고 발라드도 있고 한마디로 멀티숍을 보는 듯한 종합적인 앨범이다"
-이번 앨범이 원래 예정돼 있었나.
"그렇지는 않다. 예정에 없던 앨범이었다. 미국에서 가수로서 완전히 성공을 거두고 난 이후에 내후년쯤 앨범을 낼 생각도 있었다. 레이니즘을 미국에서 성공한 상징으로 해서 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팬들의 갈증도 있고 해서 좀 앞당겼다. 마침 닌자 어새신도 내년에 개봉돼 여유도 좀 생겼다"
-앨범이 자전적인 스토리라고 하던데,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간절한 사랑, 잊혀지지 않는 사랑, 데뷔할 무렵에 만났던 사람이다.(좀 더 캐묻자 비는 여기까지만 답할 수 있다고 했다, 편집자주)
<가수 비 인터뷰 2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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