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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두릅·향수 뿌린 산초나무 “그것들 참 앙큼하네”

조선일보 기자I 2007.07.12 11:20:00

매달 ''숲 지도''를 보내드립니다- 7월 ''제천 덕동 생태숲''


 
[조선일보 제공] 산수국은 화장을 한다

산수국(山水菊), 그늘에서 자라는 높이 1m 가량의 작은 꽃이다. 얼굴은 더 작아서, 눈곱만하다. 풍성한 관능미를 뿜어내기엔 부족한 꽃이다. 그래서 산수국은 우산처럼 작은 꽃들이 한데 모인 산방꽃차례(?房花序)로 핀다. 그걸로도 모자라, 벌과 나비가 그녀의 화장한 얼굴을 보고 찾아올 수 있도록 가장자리엔 탐스런 ‘허꽃’을 달았다. 산수국은 노력 끝에 얻은 아름다움으로 살아남았다. 7월은 산수국이 절정인 때다. 체험코스 ①에서 볼 수 있다.

딱딱한 수트를 택한 화살나무

여린 줄기마다 화살날개처럼 생긴 단단한 덧옷을 입은 식물. 코르크질의 덧옷을 조금 떼어 씹어보면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다. ②번의 화살나무는 실은 누구보다 여린 새순을 지녔다. 홑잎나물이라고 불리는 이 부드러운 잎은 봄철 입맛을 돋우는 데 제격이다. 초식동물들이 이 여린 잎을 함부로 탐할까봐, 화살나무는 스스로 맛도 없고 모양도 딱딱한 겉옷을 걸친 것이다.

향수로 무장한 산초나무

향기도 때론 무기가 된다. 산초나무는 잎과 열매에서 강한 향을 내뿜어, 잎을 탐하는 곤충이나 애벌레가 다가오지 못하도록 한다. 9월이면 까맣게 익는 열매는 찧어서 향신료로 쓴다. 줄기엔 단단한 가시를 달고 있는데, 최근 열매를 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가시의 크기도 더욱 커졌다. 흔히 혼동하는 초피나무와 달리 산초나무는 잎 끝이 뾰족하고, 가시가 어긋나게 나 있다. 산초 잎을 뒤집으면 잎을 정신 없이 먹어대는 호랑나비 애벌레를 쉽게 볼 수 있다. ‘샤넬 넘버 5’의 강한 향기에 무뎌진 남자처럼 산초의 향기를 이겨내고 적응한 동물이다.

화려한 가면을 쓰는 개다래

개다래의 잎은 때로는 화려한 가면으로 변신한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시기인 6~8월까지 개다래의 초록빛 잎은 얼룩덜룩한 색으로 바뀐다. 잎사귀 전체가 하얗게 변하는 경우도 있다. 열매를 공격하는 곤충들이 화려한 잎의 무늬를 보고 정신을 빼앗기는 동안, 개다래는 잎사귀 뒤에서 은밀하게 꽃을 피운다. 체험코스 ④에서 볼 수 있다.

까칠한 두릅과 뾰족한 억새

두릅과 억새에게 섣불리 다가섰다가는 상처를 입기 쉽다. 독특한 향이 있어 산나물로 인기 있는 두릅은 4~5월 새순을 따려는 사람들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온 몸에 가시를 달았다. 큰 짐승에 대항할수록 가시도 커지는 법, 두릅의 몸에 돋아나는 가시도 점점 굵고 억세진다. 억새는 몸 자체를 뾰족하고 까칠하게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는 식물. 억새엔 톱니처럼 깔쭉깔쭉하게 베어져 들어간 자국이 있는데 이를 ‘거치’라고 한다. 까칠하기가 이를 데 없으니 함부로 건들지 말자. 두 식물 모두 ⑤번 코스 주위에서 드문드문 자란다.

개미를 속이는 산벚나무

잎을 자세히 살펴보자. 잎맥이 시작하는 자리에 두 개의 점이 있다. 확대경으로 보면 이건 그냥 점이 아니다. ‘밀선(蜜腺·꿀샘)’이라고 불리는데, 움푹 패인 것이 항아리처럼 생겼다. 이 작은 항아리는 일종의 속임수다. 산벚나무는 여기에 아주 약간의 꿀을 모아놓고, 개미를 불러모은다. 개미들은 산벚나무의 밀선에 괴여있는 꿀을 먹다가 그래도 배가 고파지면, 진딧물을 먹기 시작한다. 산벚나무는 개미를 꾀여서 손 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눈 앞에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는 현명한 나무다. ⑥번 코스에 있는 정자에 올라서면, 계단마다 산벚나무가 떨군 검은 버찌들이 카펫처럼 깔려 있다.

인정사정 없는 신갈나무

주로 ‘참나무’라고 불리는 신갈나무는 인생 자체가 전략과 투쟁의 역사다. 작은 도토리 열매에서 싹을 틔워 약 30m의 거목으로 크려면, 빛과 물이 많이 필요하다. 신갈나무는 전사(戰士)처럼 자란다. 이웃 나무에게까지 뿌리를 뻗고, 가지를 감아 양분을 거침없이 빨아들인다. 자식인 도토리 열매는 가능한 멀리 굴려 보낸다. 다른 먼 곳에 뿌리 내려야 잘 번식하기 때문이다. 냉정한 신갈나무지만, 그래도 고마운 점은 있다. 옛날 조상들은 신갈나무 잎을 주워 짚신이나 고무신 안에 깔았다. 상쾌하고 시원한 잎이 신발 속 답답함을 없애주기 때문이다. ‘신발에 잎을 깔았다’고 해서 ‘신깔나무’라고 불리던 것이 신갈나무로 굳어졌다. 숲을 산책하다 신갈나무 잎을 발견하거든 한번쯤 ‘깔창’으로 사용해봐도 좋겠다. ⑦번 코스에서 만날 수 있다.

악착같은 담쟁이

담쟁이는 혼자 높이 자라지 못하는 식물. 햇빛을 받기 위해선 다른 식물에 붙어 올라가거나, 담벼락에 붙어 줄기를 뻗어나가는 수밖에 없다. 담쟁이는 살아남기 위해, 어디에도 악착같이 붙어있을 수 있는 ‘흡반’을 개발했다. 개구리 발가락을 닮은 이 작은 흡반에 의지해 담쟁이는 몸을 가늘고 길게 늘려나간다. 생존의 무기가 꼭 클 필요는 없다. 작은 생물들일수록 놀랍도록 강력한 생존도구를 만들어낸다. ⑧번 코스에 들어서면 키 높은 나무들을 휘감은 담쟁이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찾아보자

덕동 숲에선 참까마귀부전나비와 호랑꽃무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호랑꽃무지는 지금 한창 짝짓기 철이라서,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참까마귀부전나비는 숲 속의 또 다른 생존전략을 보여주는 곤충이다. 부전나비가 낳은 알은 단백질과 호르몬이 풍부해 개미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개미들은 알 껍질의 영양분을 얻기 위해 알이 부화할 때까지 대신 키워준다. 개미와의 ‘공생’을 이용해 힘들이지 않고 육아를 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산딸기와 뱀딸기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늘진 곳에 열매 맺는 뱀딸기를 따서 식물줄기에 꿰어보자. 예쁜 팔찌가 탄생한다. 그늘이 따갑다면, 나뭇잎을 주워 고깔을 만들어도 좋다. 소나무 잎을 바늘처럼 사용해 엮으면 누가 써도 그럴듯한 요정모자가 된다.


덕동 생태숲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남원주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들어선다. 제천IC에서 나와 충주 방향으로 간다. 백운면 방향으로 따라가다 보면 면사무소가 나온다. 길을 계속 따라가면 덕동계곡 입구가 나온다. 계곡 안으로 들어간다. ‘숲넘이다리’가 나올 때까지 올라간다. 다리를 건너면 생태숲 입구다.

문의 (043)220-5500, 산림과학박물관 홈페이지 http://cbfores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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