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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승준 기자·공동취재단] “순교자들의 유산은 선의를 지닌 모든 형제자매가 더욱 정의롭고 자유로우며 화해를 이루는 사회를 위해 서로 화합하여 일하도록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
프란치스코(79) 교황이 16일 서울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복식 미사에서 한국천주교 순교자 124위에 대해 시복을 선언했다. 시복은 천주교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았거나 순교해 공경 받는 사람들을 성인의 바로 전 단계인 복자로 선포하는 일이다. 이번에 복자가 된 124위는 조선인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를 비롯해 남성 중심사회에서 여성 리더십을 발휘했던 여성회장 강완숙 골룸바, 정약용의 형이자 한글 교리서 ‘주교요지’를 집필한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백정 출신 황일광 시몬 등이다. 신분사회의 사슬을 끊고 신앙 안에서 인간 존엄과 평등, 이웃사랑의 정신을 실천한 이들이다.
교황은 시복미사 강론으로 “순교자들의 유산이 이 나라와 온 세계에서 평화를 위해 그리고 진정한 인간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순교자들의 모범은 막대한 부 곁에서 매우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사회들 안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고 말했다.
또 ”순교자들은 우리가 과연 무엇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지, 그런 것이 과연 있는지를 생각하도록 우리에게 도전해 온다”면서 “순교자들의 모범을 따르면서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믿는다면 순교자들이 죽음에 이르도록 간직했던 그 숭고한 자유와 기쁨이 무엇인지 마침내 깨닫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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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자리 잡은 한국 천주교 역사에 대한 언급도 했다. 교황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섭리 안에서, 한국 땅에 닿게 된 그리스도교 신앙은 선교사들을 통해 전해지지 않았다”며 “한민족의 마음과 정신을 통해 이 땅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들어오게 됐다”고 의미를 뒀다. 이어 “오늘은 모든 한국인에게 큰 기쁨의 날”이라면서 “순교자들이 남긴 유산, 곧 진리를 찾는 올곧은 마음, 그들이 신봉하고자 선택한 종교의 고귀한 원칙들에 대한 충실성, 그들이 증언한 애덕과 모든 이를 향한 연대성, 이 모든 것이 이제 한국인들에게 그 풍요로운 역사의 한 장이 되었다”고 말했다.
시복식은 교황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이 공동 집전했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미사는 안명옥 주교의 시복 청원과 교황의 시복 선언, 교황 강론, 평화예식, 영성체 예식 등으로 2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교황 수행단 성직자 8명과 각국 주교 60여명, 정진석 추기경을 비롯한 한국 주교단 30여명 등 100여명의 주교단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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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 400여 명과 이주노동자들 등도 왔다. 특히, 교황은 시복식 직전 진행된 광화문 일대 카퍼레이드에서 차에서 내려 단원고 희생자 김유민 양의 아버지인 김영오(47) 씨를 만나 손을 잡고 위로했다. 김씨가 전한 편지도 수행원에게 주지 않고 직접 자신의 주머니에 넣으며 이들의 슬픔을 보듬었다. 시민과도 친근하게 소통했다. 교황은 퍼레이드 동안 수시로 차를 세워 10여 명의 아이에 입을 맞췄다. 교황을 본 시민은 “비바 파파”를 외치며 환호했다. 눈물을 흘리는 이도 여럿 눈에 띄었다. 가족에게 전화해 “교황 봤다”며 감격스러워하는 시민도 있었다. 현장에는 신자 17만명을 포함해 최소 50만명의 시민이 몰린 것으로 경찰은 추산했다.
교황의 퍼레이드 시작은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열었다. 백건우는 헝가리 출신 세계적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의 ‘두 개의 전설’ 중 첫 번째 곡 ‘새들에게 설교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8분 동안 연주했다. 이 곡은 가톨릭 성인인 프란치스코에 영감을 받아 작곡가가 만든 작품이다. 연주를 마친 백건우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프란치스코 성인 모두 자기 자신을 낮추며 예수의 삶을 좇은 분들”이라며 “교황과 프란치스코 성인의 뜻을 따라 우리도 깨끗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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