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선전포고였다. 전쟁에서 라가시가 승리를 거두자 그는 곧 칙령을 발표한다. 왕국 내 모든 부채를 탕감한다는 내용이었다. “자식을 어머니에게 돌려주고 어머니를 자식에게 돌려준다. 모든 이자를 폐지한다.” 인류 역사기록에 처음 등장한 부채탕감이다.
그런데 이 배경을 끌어낸 데는 좀 익숙지 않은 논리가 들어있다. 돈보다 먼저 등장한 부채, `빚`이 그것이다. 흔히들 돈의 탄생과 관련해 믿고 있는 상식이 있다. 물물교환의 수고를 덜기 위해 화폐가 만들어졌고 이후 금융과 신용이 발달하게 됐다는 것 말이다. 그러나 그 상식은 “모조리 틀렸다”.
미국 출신 인류학자인 저자의 발언은 강고하다. 경제학을 인류학적으로 들여다봤더니 죄다 뒤바뀌어 있더란 얘기다. 신용이 먼저 있고나서 화폐가 생겼으며 그 다음 물물교환이 화폐사용의 부산물로 나타났다. 이때 화폐는 일종의 차용증처럼 쓰였다. 다시 말해 빚이 돈보다 먼저 생겼다는 설명이다. “돈은 거의 물건과 부채의 증거 사이를 오갔다.”
막연한 추정이 아니다. 메소포타미아 서판에는 외상과 부채, 사원이 정한 배급량, 사원토지임차료까지 적혀 있다. 또 아프리카 티브족을 비롯해 브라질·호주의 현대 원시부족 가운데 물물교환으로 유지되는 공동체는 없었다.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이 화살과 고기를 교환했다는 증거도 찾을 수 없다.
이 근거들은 부족의 삶을 지탱하는 건 교환이 아니라 부채라는 방증으로 쓰였다. 부족들은 감자 한 포대를 `닭 한 마리와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그저 `빌려 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부채가 이후 무엇으로 상환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부채가 사회적 관계가 되는 동시에 공동체 유대를 강화하는 힘이란 사실이다.
경제학자들이 그간 부채의 역할을 깡그리 무시해온 까닭도 분석했다. 개인들이 곡식과 옷, 구두를 교환하는 데 여기에 전쟁, 죽음, 성, 노예 같은 요인이 개입한다면 계산이 합리적으로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란 거다. 저자는 이것을 경제학의 결정적 착오로 봤다. 부채의 개념을 애써 시장에만 국한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가령 갑자기 들이닥친 강도가 있다고 하자. 총을 들이대며 1000달러를 보호금으로 요구하는 행위와 1000달러의 융자를 요구하는 행위가 뭐가 다르냐는 거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가 있다. 세력균형이 이동하거나 강도가 총을 상실하게 되면 융자는 달리 취급된다. 따라서 부채는 정치와 경제, 권력과 착취의 역사여야 맞다고 했다.
한마디로 거꾸로 쓴 경제사다. 인류의 역사는 곧 빚의 역사였다. 저자는 최근 연달아 터지는 금융위기도 결국 “부채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해 발생한 위기”라고 정리한다. 지난 5000년은 부채라는 개념 아래 폭압이 정당화된 시간들이다. 이제 그만 그 부채위기에서 자유로워지자는 간결하지만 단순치 않은 결론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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