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상찮은 난세의 흐름
최근 황실과 도성은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다.
서역으로부터 들여온 술과 고기가 역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저잣거리의 민초들이 아침 저녁으로 횃불을 들고 궐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뭄으로 산천초목이 말라 땔감까지 귀해지면서 물건값이 오르고 민심도 흉흉해졌다.
10년전 오랑캐 `아이엄어부(亞以嚴於部)`의 침공(환란) 때도 이처럼 혼란스럽진 않았다.
문중 선비들은 잇따라 상소를 올려 "무림 문파 정리는 뒤로 미루고 성난 민심부터 달래야 한다"며 민생안정 계책을 요구하고 있다.
천자(天子)는 어쩔 수 없이 무림 개혁을 이끌던 곽성(郭城) 문인을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파직시켰다.
무림의 파벌들을 정리해 난세를 바로잡으려던 황실의 계획은 채 피기도 전에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 칠성(七星)의 고민
칠성(七星) 고수는 뒷산 청룡대에 오르면서 "천하가 이렇게까지 격변하는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우리문파를 접수하면서 쫓아보낸 회춘(回春) 대인이 황실의 총애를 얻어 도성수비대장으로 중용될 것은 미리 감지하고 있었다. 절정의 생명력과 귀혼비급을 가진 자가 아니던가.
하지만 자신이 교주 자리에서 끌어내린 천재(千才) 장로가 좌장군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게 될 줄이야…. 어지간히 황실 정보에 밝은 그로서도 의외의 사건이었다.
칠성 고수는 청룡대에서 무심천(無心川)을 굽어보며 되뇌었다. "무림의 일은 변화무쌍한 것, 하늘이 아니면 다 알 수 없으리…"
우리문파는 아직 황실로부터 많은 물자와 병력을 지원받고 있다. 회춘 대인으로부터 군량 등을 지원받으려고 해도 좌장군이 나서주지 않으면 여간 부담스러운게 아니다.
하지만 칠성에게 더 치명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황실에 대한 민심이 크게 동요하고 있는 것이다.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 했다. 역병에 대한 불안감으로 민초들의 `횃불집회`가 황실에 대한 반발로 일부 이어지고 있었다.
칠성은 우리문파 중심의 무림 통합을 수년간 구상해왔다. 황실도 특별히 반대하지 않는 형세여서 모든 게 순탄할 듯 했다.
그러나 든든한 우군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황실이 민심을 잃어가면서, 우리문파가 당장 주변 문파와 황실을 업고 전쟁을 선언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칠성은 문득 두보의 싯구(前出塞)를 읊조리며 마음을 추스렸다.
從軍十年餘(종군십년여) 전장에 나간지 십여년이라
能無分才功(능무분재공) 작은 공적과 재주가 없을 수 없으리
衆人貴苟得(중인귀구득) 사람들이 구차하게 얻음을 귀하겨 여겨 탐하니
中原有鬪爭(중원유투쟁) 중원 땅에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으리라
況在狄與戎(황재적여융) 어찌 적과 오랑캐의 땅에 있을 수 있겠는가
丈夫四方志(장부사방지) 대장부의 사방천하를 경영하려는 큰 뜻
安可辭固窮(안가사고궁) 어찌 곤궁함을 지켜내는 것을 사양할 수 있으리
칠성 고수는 조만간 좌장군과 재상, 도성수비대장 등 우리문파 출신의 조정 중신들을 차례로 만나 무림통일에 대한 뜻을 밝히고 협조를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 만만찮은 산은문파
최근 `산은` 문파 지존에 오른 위성(爲星) 대인은 칠성의 이 같은 천하쟁패 야심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위성 대인은 지금 당장은 우리문파의 세(勢)를 당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주변의 문파를 차례차례 편입시켜 힘을 키울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는 생각했다. 아직은 우리문파와 정면으로 맞설 때는 아니라고.
자칫하면 옛날 `장은` 문파가 `국은` 문파에 흡수당한 것처럼, 제대로 된 진법(陣法) 한번 펼쳐보지 못하고 패퇴할 수 있다.
그는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주변 문파 공략을 타진하는 한편, 오랑캐의 힘을 빌릴 새로운 계책도 세웠다.
위성 대인은 서역 오랑캐들과의 교유가 깊었다. 서역에서 용맹하기로 유명한 마족(魔族) 병사 5000명만 지원받는다면 주변으로부터 추가 병력과 식량을 확보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리라.
산은문파는 최근 `외은` 문파를 통폐합하는 전략도 검토중이다. 외은 문파는 오랑캐 `론수타(論受打)` 족속에 예속된 상태지만 우수한 기재들을 갖고 있어 편입시킬 수만 있다면 큰 힘이 될 게 분명했다.
산은문파는 `기은` 문파도 공략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산은문파와 기은문파의 경우 우리문파처럼 황실의 지원을 받아왔지만, 3~4년내에는 완전히 끊길 운명이다.
위성 대인은 또 우리문파에 비해선 미약하지만 황실 일각의 지지도 얻고 있다. 특히 재상인 전광(前光) 선인은 고향 격인 우리문파의 통폐합주의를 견제하고 있어, 위성이 칠성에게 호락호락하게 당하진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금융九龍列傳)①우리문파 시대 열리다(6월25일 오전11시32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