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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투자)세계경제와 시소놀이

하상주 기자I 2006.01.02 12:20:00
[이데일리 하상주 칼럼니스트]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이때쯤이면 이곳 저곳에서 세계경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리한 글들이 나온다. 필자도 새해 첫날에 세계경제를 정리해보려고 한다.

다음은 필자가 세계경제를 보는 방식이다.

두 아이가 운동장에서 시소놀이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시소 중심의 가까운 곳에 앉아 오르락내리락 했다.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두 아이는 조금씩 중심에서 멀어져 갔다. 균형을 잘 맞추어야 했다.

두 아이는 자꾸만 중심에서 멀어져 갔다. 시소는 점점 높이 올라갔다.

그런데 이렇게 중심에서 멀어지다 보니 어느덧 너무 멀리 멀어진 것 같았다. 조금씩 겁이 나기 시작했다. 시소가 높이 올라갔을 때 약간 어지럽기도 하고 잘못하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시소가 내려갔을 때 어느 한 아이가 시소에서 내리면 높이 올라간 아이가 크게 다치는 것은 물론 내리는 아이도 안전하지 않다. 이 두 아이가 위험한 시소놀이를 멈추고 엄마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위의 비유에서 한 아이를 미국으로, 다른 한 아이를 중국이라고 보자. 아주 단순하게 보면 지금 세계경제는 중국이 제품을 생산하고 이것을 미국이 국제거래 통화인 달러를 주고 사서 소비하는 구조다.

그래서 중국은 달러 저축이 쌓이고, 미국은 달러 부채가 늘어나고 있다. 더 쉽게 말하면 미국은 종이돈 달러를 주고 중국이 만든 생산제품과 바꾸고 있다. 세계경제 시소놀이의 한쪽에는 미국이 올라타 소비를 늘리고 있고, 다른 한쪽은 중국이 올라타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세계경제가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말은 중국이 생산한 것을 미국이 소비해주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생산=소비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이는 불안한 균형이다. 미국이 중국의 생산물을 소비하는 힘은 바로 중국에서 싸게 빌린 달러 덕분이다.

다시 말하면 중국은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다시 아주 싼값으로 미국에 빌려주고 있다. 마치 술장사가 술에 취한 술꾼에게 돈을 빌려주고 술을 파는 격이다. 이런 상태에서 세계경제가 성장한다는 말은 술장사가 술을 팔아 번 돈을 다시 술꾼에게 빌려주고 더 많은 술을 판다는 말이다.

시소놀이로 돌아오면 두 아이가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시소의 중심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위험하다. 두 아이가 시소의 중심에서 점점 더 멀어지려면 두 나라의 경제 시스템이 각각 두 아이의 몸무게를 받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은 중국에서 더 많은 돈을 빌려올 수 있을까? 미국이 중국에서 돈을 빌려온다는 말은 미국이 중국에게 결국은 무언가를 판다는 말이다. 주로 미국정부의 국채나 미국기업의 채권이나 주식이다.

지금 미국이 중국에 팔고 있는 것은 미국가계가 주택을 담보로 발행한 채권(모기지)이다. 만약 미국 주택가격이 정체하거나 내려가면 미국이라는 아이는 시소의 끝으로 더 이상 나갈 수가 없다.

사실 미국 주택가격이 더 올라간다고 해도 미국이라는 아이가 안심하고 시소의 끝으로 더 나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주택가격이 올라간다는 말은 미국가계의 빚이 늘어난다는 말이고, 빚이 늘어나면 금리가 더 떨어지지 않는 한 빚의 원리금은 늘어만 간다. 가계의 소득이 늘어나지 않으면 가계는 더 이상 빚을 늘리지 못한다.

이를 미국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가? 미국기업은 지금 엄청나게 돈을 벌고 있다. 과거에는 임금을 많이 주고 물건을 만들어서 팔았는데, 이제는 공장을 중국으로 옮겨 생산비가 엄청나게 낮아졌다.

이를 수입하여 팔고 있다. 미국에서 일자리를 잃어 소득이 없거나 소득이 줄어든 사람들은 올라가는 집을 담보로 빚을 늘려서 미국기업이 중국에서 만든 제품을 사고 있다. 제품에서 인건비의 비중이 낮아지자 기업의 이윤은 높아질 수밖에 없고, 이것은 주가를 올린다.

소득이 줄어든 소비자가 기업의 생산물을 소비하려면 어쩔 수 없이 빚이 늘어난다. 미국에서 빚을 늘려주는 계기는 바로 주택이다. 그러나 주택가격은 계속 올라갈 수 없고, 가계의 빚은 계속 늘어날 수 없다.

이제 시소의 다른 한쪽에 앉아 있는 중국을 보자. 중국은 왜 이미 술에 취한 술꾼에게 자꾸만 더 술을 팔려고 하는가? 사실 술장사는 중국만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일본도 하고 있고, 한국도 하고 있다.

이 나라들은 왜 자꾸만 술을 판 돈을 모으고 그 돈을 술꾼에게 빌려주고 혹시나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는가? 가끔은 가게를 닫고 놀러도 다니면서 생활수준을 높이는 것은 어떤가? 결국 잘살려고 술장사를 하는 게 아닌가?

이 물음에는 아직 콕 찍어 말할 수 있는 답이 없다. 그러나 그중 하나는 세계 중심통화가 달러라는 점과 깊게 관련되어 있다. 술장사가 술을 팔아 번 돈은 바로 술꾼인 미국만이 생산할 수 있는 달러다.

술장사는 기본적으로 비상사태를 대비해서 달러를 갖고 있어야 한다. 술을 만드는 원료를 사려면 다른 종이돈이 아니라 바로 달러 종이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술장사가 항상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손해를 볼 때도 있다. 술장사 동네에서는 가끔씩 여기저기서 외환위기라는 팻말을 내걸고 가게 문을 닫는다. 모두 달러가 없어서다. 술장사 동네도 경쟁이 심하다. 그래서 서로 싸게 팔려고 하고, 기회만 있으면 새로운 술집을 내려고 한다. 이런 위험에 대비하려면 비상금으로 언제나 달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비상금을 미국의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나 기업이 발행하는 채권이나 주식 또는 미국가계가 발행하는 약속증서와 바꾸어서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술장사가 얼마 정도의 비상금을 가지고 있어야 적당한지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달러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술꾼이 빌려간 돈을 갚지 못할 수도 있다. 갚는다고 해도 달러의 값이 떨어질 수도 있다. 비상금 달러 종이를 이자가 나오는 다른 종이인 채권이나 주식에 투자해 두었는데 이들의 가격이 내려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제부터 술꾼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을 수도 없다. 또는 빚을 갚으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또는 갖고 있는 채권이나 주식을 한꺼번에 팔아버릴 수도 없다. 그러려면 술을 적게 팔 각오를 해야 하고, 그 동안 저축한 돈을 다 돌려받지 못할 각오를 해야 한다. 경기후퇴를 각오해야 한다.

이제 다시 시소놀이로 돌아가자. 처음에는 두 아이가 재미로 시소놀이를 시작했지만 점점 시소놀이가 위험해지고 있다. 두 아이 중에서 겁이 더 많은 아이가 시소놀이를 멈추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다칠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바로 멈출 수가 없다. 그렇다고 누가 이기는지 두고 보자고 자존심을 내세울 수도 없다. 어느 경우든지 두 아이가 모두 다치기 때문이다.

과연 언제까지 이 시소놀이가 계속될 수 있을 것인지 알아맞추기는 어렵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시소놀이는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지금까지 시소놀이는 계속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앞으로도 10년은 더 계속된다고 말하고 있고, 2006년에는 터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앞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가끔은 위험한 경우를 당하면서 두 아이가 조금씩 다시 시소의 가운데로 이동한 후 안전하게 시소에서 내려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생각 같아서는 나도 이 중의 어느 한 가지 시나리오를 선택하고 싶다. 그러나 굳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아도 된다면 무리하게 이 중의 어느 시나리오를 선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 세계경제가 굴러가는 구조를 아는 것만으로도 투자의사결정을 내리는 데는 크게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무역적자가 계속 확대되고 있는 한, 미국 무역적자를 통해서 세계로 흘러간 유동성은 세계 곳곳에서 과잉설비와 자산가격 상승을 낳을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는 절대로 계속될 수 없다. 위험을 각오하지 않고는 시소에 탄 두 아이가 계속 가장자리로 멀어질 수는 없다. 이 결과는 주가폭락이다. 그렇다고 두 아이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조심스럽게 시소의 중심으로 되돌아오기도 어렵다. 이 결과는 세계적인 경기후퇴다.

[하상주 가치투자교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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