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한강공원에서 자전거 도로 횡단보도를 건너던 80대 A씨는 자전거 무리로부터 재촉하는 말을 듣고 불쾌감을 느꼈다. A씨는 “평소처럼 산책을 나왔는데 보행자가 우선이어야 할 횡단보도에서 재촉을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같은 날 근처에서 반려견을 산책시키던 김모(30)씨도 “부딪힐뻔한 적도 많다. 사람이 지나가고 있으면 횡단보도에선 좀 멈춰줘야 하지 않느냐”며 걱정을 표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추정한 우리나라 자전거 이용 인구는 1340만명에 달한다. ‘1000만 러닝 시대’라고 불릴 만큼 러닝 인구도 무섭게 증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자전거·러닝 등 취미 생활을 함께 즐기는 동호회(크루·Crew)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다른 시민들을 배려하지 않는 동호회들의 활동으로 도심 곳곳에서 갈등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남들을 배려하는 운동 문화를 정착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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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부터 9일까지 이데일리가 찾은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반포 한강공원, 망원 한강공원 등에선 동호회 인파로 인한 위험한 상황이 여러 차례 목격됐다. 잠수교 인근에서 빠른 속도로 자전거 도로를 달리다가 인도로 넘어온 남성은 사람이 많은 곳을 향해 직진하다가 아슬아슬하게 피해 갔고 망원 한강공원 인근에서는 한강 공원에 가려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탄 채 인도를 질주하자 급하게 한 남성이 자전거에 부딪힐뻔한 어린 딸을 안아 들기도 했다.
이 같은 모습에 공원을 찾는 시민들은 동호회들이 공공예절을 지키지 않아 주변에 불편함을 준다고 토로하고 있었다. 특히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장소에서 동호회가 우선인 듯한 분위기가 불편하다고 입을 모았다. 일산 호수공원과 잠수교에서 혼자 러닝을 즐기는 이진국(46)씨는 “단체의 페이스가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크루들이 지나가면서 혼자 뛰는 사람이 비키는 게 당연한 것이라는 뉘앙스로 말하는 걸 종종 들었다”며 “소리 지르면서 운동하거나 존재감을 과시하는 모습들을 보면 동호회 문화가 조금 변질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공원에서 남편과 자주 산책하는 김모(57)씨는 “10명 이상의 러닝크루가 질서없이 가로로 죽 늘어서서 가는 경우도 있다”며 “질서를 지키는 경우는 괜찮은데 그렇지 않은 경우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쓴소리를 했다. 4살 아이를 키우는 박연정(40)씨도 “공원에 아이랑 산책 나오면 항상 예민해져 있다. 자전거가 횡단보도 앞이라고 멈춰주지 않는다”며 걱정을 표했다.
◇운동 확산은 긍정적… 다만 ‘운동 예절 가이드라인’ 필요해
공원뿐만 아니라 서울 도심에서도 시민들의 불만이 이어졌다. 경복궁, 종로나 강남·용산 등 도심 대로변 코스를 찾는 동호회가 많아지면서다. 서울 종로구에 사는 박영준(30)씨는 “경복궁 인근에서 도심런(도심과 Run(달리기)의 합성어)을 즐기는 동호회를 봤는데 수십 명의 회원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다 신호등이 빨간 불로 변해도 차를 막고 남은 사람을 다 건너게 하더라”며 “60~70명이 모이는 크루가 줄도 안 맞추고 좀비처럼 뛰는 경우도 봤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회원 100명을 이끄는 러닝동호회 운영진 B(33)씨도 “끝에서 달리는 사람들이 횡단보도에서 신호에 걸릴 때 위험하긴 하지만 페이스가 중요해 속도를 줄이기보다는 유지하려다 보니 사고 위험이 있긴 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러닝과 자전거 등 생활체육 문화가 확산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올바른 문화가 함께 만들어져야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동호회 내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예절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강덕모 세종대학교 산업대학원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생활체육의 보급이 확대되는 건 긍정적이지만 운동을 어떻게 향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었다”며 “향유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문화가 확산하다 보니 운동 문화의 폐단을 만들기도 한다”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김학준 경희사이버대학교 스포츠경영학과 교수는 “저녁 6~8시와 같이 산책하는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대에 동호회 활동을 피하는 문화가 자리 잡는 것도 하나의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