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우리 정부는 GSOMIA 문제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는 별개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지난 19일 고노 외무상 담화 이후 상황이 달라진 모양새다. 그가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다룰 중재위 구성에 응하지 않은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후속 대응을 예고하면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GSOMIA 협정 파기 가능성에 대해 “아직 아무 결정이 내려진게 없다”면서도 “우리는 모든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지금은 (GSOMIA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으나 상황에 따라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바 있다. 한·일간 GSOMIA는 8월 24일까지 어느 한쪽이라도 파기 의사 통보가 없으면 자동 연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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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일본과의 GSOMIA 체결 추진 당시 북한의 4·5차 핵실험과 20여회의 미사일 발사 상황에 직면해 우리 능력과 태세를 보강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한바 있다. 일본은 우리보다 많은 국방비 투자와 양적·질적으로 우수한 감시 및 탐지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정찰위성 하나 없지만 일본은 정보수집 위성 5기(예비 1기 포함)에 이지스함 6척, 탐지거리 1000㎞ 이상의 지상 레이더 4기, 조기경보기 17대, 해상초계기 77개 등의 정보 자산을 갖고 있다.
우리 역시 탈북자나 북·중 접경지역의 인적 네트워크(휴민트), 군사분계선 일대의 감청수단(시긴트) 등을 통해 수집한 대북 정보를 일본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GSOMIA 체결 후 한·일간 공유한 군사기밀은 2016년 1건, 2017년 19건, 2018년 2건 등 모두 22건이었다. 그간 GSOMIA가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을 잇는 삼각 안보 협력의 고리로써 역할을 해왔다는 의미다. 일본과의 경제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GSOMIA 파기를 대일 협상카드로 내밀 경우 미국의 개입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일본으로서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간 침묵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GSOMIA 파기 문제가 불거지자 ‘양국이 원하면’이라는 단서를 달아 한·일 관계 관여 가능성을 시사했다. 특히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일본을 방문한데 이어 23일 방한해 강경화 외교장관과 정경두 국방장관을 잇따라 만난다. GSOMIA 관련 논의를 통해 한·일 갈등 사태가 또 다른 국면을 맞을지 주목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