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철학자들이 집을 지은 까닭은

오현주 기자I 2011.12.14 10:53:10

철학으로 읽는 옛집
함성호|332쪽|열림원

☞ 이 기사는 12월14일자 이데일리신문 27면에 게재됐습니다.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회재 이언적(1491∼1553)은 조선을 통틀어 가장 독특한 건축가로 꼽힌다. 그는 조선철학을 리(理) 중심으로 파악한 선구적 성리학자다. 하지만 그가 경주 양동마을에 지은 `독락당(獨樂堂)`에선 역설이 유독 돋보인다. `독락`의 뜻 그대로 남 들일 생각이 없었는지 폐쇄적인 대문을 세운 탓이다. 솟을삼문이 없고 중문이 두 개인 건축특성은 그의 정치·사상적 이해를 동반하지 않는다면 그저 기묘한 공간일 뿐이다. 승승장구하던 그가 반대파의 탄핵으로 40세에 벼슬자리에서 밀려난 후 울분을 안고 낙향해 지은 집이 독락당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집을 지었다. 건축가이면서 시인인 저자가 그들의 옛집 이야기를 한다. 이언적, 윤선도, 이황, 김장생 등이 직접 지은 집 9곳을 골라 답사했다. 철학자들이 집짓기에 나섰다는 걸 알린 일부터 생경하지만 그 자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까지 읽어낸 거다.

송시열은 죽은 왕의 집터를 잘못 잡는 바람에 정계에서 쫓겨난다. 괴산 화양리 금사담의 바위에 `암서재(巖棲齋)`를 짓고 은거한다. 하지만 그곳은 다시 벼슬길에 오르기를 기다리는 암중모색의 집이었다. 이황은 가장 많은 건축물을 남겼다. 안동에만 다섯 채를 지었다. 집이 많았던 것은 그의 학문적 추이가 복잡했기 때문이다. 도선서원에서야 그는 가장 완숙한 정신세계를 드러낸다.

건축은 집에 한정되지 않는다. 집을 지은 사람, 그의 삶, 때론 그가 좋아하는 시 한편에 미칠 수 있다. 다 듣지 않고선 그 집을 온전히 안다고 할 수 없다. 책이 그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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